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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키운 8할은] 한국형 팝 발라드의 시작을 연 유재하

입력
2017.04.15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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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유재하의 솔로 1집 앨범 표지. 유재하는 단 한 장의 앨범만을 남긴 채 1987년 11월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가수 유재하의 솔로 1집 앨범 표지. 유재하는 단 한 장의 앨범만을 남긴 채 1987년 11월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유재하는 한국형 팝 발라드의 시작을 연 음악가다. 피아노, 현악기를 활용한 다양한 변조와 화성, 시적인 가사로 한국 대중가요에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는 평을 받았다. 국내에서 드물게 작곡·작사·편곡을 스스로 다 한 싱어송라이터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부터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유재하는 클래식과 전자악기를 모두 접하며 음악적 소양을 쌓았다. 그는 자라면서 대중가요에 관심을 보였으나 당시 대중가요 교육 체계가 잘 갖춰지지 않아 1981년 한양대학교 작곡과에 입학한 후 클래식을 공부했다. 학과 동기들과 기타를 연주하고 음악에 대한 견해를 나누며 정체성을 찾아가던 그는 대학을 졸업할 무렵, 클래식을 대중가요에 접목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1984년 가수 조용필과 밴드 위대한 탄생의 키보드 연주자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그의 대표작인 ‘사랑하기 때문에’는 조용필의 7집 앨범에 먼저 실렸다. 1986년 밴드 봄여름가을겨울의 객원 멤버로 활동하던 유재하는 이듬해 자신의 돈 800만원을 들여 솔로 1집 앨범을 제작했다.

앨범에는 여자친구와의 첫 만남부터 이별, 재회의 순간까지 자신의 사랑 이야기를 녹였다. 그는 서정적인 가사와 말을 하듯 담백하게 흐르는 창법으로 진실함이 담긴 전달력을 보였다.

유재하는 드럼과 베이스를 제외한 모든 악기를 스스로 연주해 녹음했는데 팝 스타일의 멜로디에 첼로, 바이올린, 오보에, 클라리넷 등 다양한 클래식 악기의 선율을 녹여 예술성과 대중성을 함께 추구했다.

하지만 앨범 발매 당시 평단의 반응은 차가웠다. 클래식과 팝의 결합, 다양한 코드의 변화는 이전 음악에서는 볼 수 없는 형식이라 “노래 구성이 이상하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일각에서는 엇박자로 시작하는 그의 노래를 두고 “박자도 못 맞추고 음정이 불안정하다”는 평이 나오기도 했다.

그 해 11월 유재하는 친구와 술을 마시러 나갔다가 25세의 나이에 교통사고로 숨을 거뒀다. 실험정신으로 가득 찬 유재하의 앨범은 그가 떠나고 나서야 재평가됐다. 유족과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뜻을 모아 유재하 음악장학회를 설립했고 매년 유재하음악경연대회를 통해 대중음악계의 신예들을 양성했다. 가수 조규찬, 유희열, 이한철, 심현보, 루시드폴 등의 싱어송라이터들이 이 대회를 거쳐 가요계라는 바다로 나아갔다.

이소라 기자 wtnsora2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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