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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10.13 20:00

[세계의 분쟁지역] ‘1000만달러 수배’ 테러범의 정당 출범 막아선 파키스탄

등록 : 2017.10.13 20:00

지난달 17일 파키스탄 펀자브주 라호르 시내에서 경비를 서고 있는 군인 뒤로 미국 국무부가 포상금 1,000만달러를 내건 테러리스트 하피즈 무하마드 사이드의 선거 포스터가 붙어 있다. 하피즈와 연계된 신생 정당 밀리 무슬림 리그(MML)는 11일 파키스탄 선거관리위원회에 의해 정당 등록을 거부 당했다. EPA 연합뉴스

11일(현지시간) 파키스탄 선거관리위원회는 신생 정당 ‘밀리 무슬림 리그(MML)’의 정당 등록을 전격 반려했다.

선관위는 “MML 등록 절차는 내무부의 인가 없이 완결될 수 없다”며 지난달 29일 내무부가 MML의 선거 출마 자격 박탈을 요청한 것을 근거로 들었다. 선관위의 반려 결정은 파키스탄뿐 아니라 NDTV, 타임스오브인디아 등 인도 주요 언론에 긴급 타전됐다. 내무부는 선관위를 향한 요청 당시 “MML의 최근 정치 활동이 외교적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MML이 대체 어떤 정당이길래 이처럼 국제적 사안으로 떠오른 걸까. 논란의 중심에는 MML의 사실상 지도자인 하피즈 무하마드 사이드(이하 하피즈)라는 인물이 있다. 하피즈는 다름 아닌 미 국무부가 1,000만달러의 현상금을 내건 일급 수배자이자 유엔이 지정한 테러리스트로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아왔다. 1990년 이래 인도령 카슈미르,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활동해온 극단주의 무장조직 라슈카르 에 타이바(LeT)가 그의 주도로 만들어졌는데, 2008년 11월 166명의 목숨을 앗아간 인도 ‘뭄바이 공격’의 배후가 바로 이들이다. LeT는 미국과 유럽연합(EU), 인도, 파키스탄에서 테러 단체 또는 금지조직으로 공식 지정됐다.

하피즈를 비롯한 이슬람 극단주의 진영은 LeT에 이어 올해 8월 “인종과 언어 장벽을 넘어 무슬림으로 하나된다”는 표어를 내걸고 MML을 출범, 정치권 진출을 시도하기에 이르렀다. 당 대표는 사이풀라 칼리드라는 종교 지도자이지만 하피즈가 권력의 정점에 있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지난달 14일 파키스탄 펀자브주 라호르에서 신생 정당 밀리 무슬림 리그의 사이풀라 칼리드(오른쪽) 대표가 셰이크 야쿱(가운데) 무소속 후보와 함께 선거 유세를 펼치고 있다. AP 연합뉴스

하피즈는 현재 가택연금 중이지만 LeT 등 하피즈 휘하에 있는 조직들이 위축된 적은 없다. 지난달만 해도 인도 잠무카슈미르주 경찰이 “LeT 소속 테러범 서너명이 인도 국경수비대원의 가정에 침입해 대원을 무참히 살해했다”고 발표했으며, 앞서 7월에도 같은 주르 아난트나그 인근에서 힌두교 순례자들이 탄 버스가 LeT의 공격을 받아 8명이 숨졌다. LeT는 과거 2001년 무샤라프 군부 통치 시절에도 펀자브주 라호르 인근에서 집회를 열고 자신들을 테러리스트로 규정한 영국 정부에 항의 시위를 벌였고, 같은 해 12월에는 인도 국회의사당에 대한 공격까지 감행한 바 있다.

하피즈의 조직들이 그간 국제사회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일부 대중의 지지를 받으며 살아남은 데는 전방위적인 구호활동을 펼친 전략도 한몫을 했다. LeT 연계조직인 ‘자마트 우드 다와’는 재난 대응에 취약한 파키스탄 정부를 대신해 자선 활동을 펼쳐왔다. 대표적인 활약이 2005년 10월 파키스탄령 카슈미르(아자드카슈미르주)에 규모 7.6의 지진이 발생했을 때였다. 당시 현장을 찾았던 필자는 피해가 가장 심한 주도 무자파라바드에서 자마트 우드 다와의 병원을 보고 풍부한 재원과 전문성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미 스탠퍼드대 자료에 따르면 2016년 1월 기준 자마트 우드 다와는 파키스탄 전역에 173개 학교를 운영 중이며 의사 2,000여명을 보유하고 있다.

이밖에도 2010년 대홍수 당시 맹활약한 ‘팔라이 잇사니앗 재단’ 등 구호 기관을 연계 조직으로 둔 LeT는 이제 정치권에도 바람몰이를 할 태세다. 하지만 극단주의 사상이나 폭력 노선에 대한 포기 없이 제도권으로 진출하겠다는 의중이 명확해, 극단주의 테러에 누구보다도 치를 떨어온 파키스탄 사회는 공포에 휩싸이고 있다. 통상적으로 분쟁 당사자였던 반군이 무장 노선을 버리고 정치 투쟁으로 전환하는 여타 사례와는 전혀 다르다는 시선이다.

선관위의 결정으로 파키스탄 정부와 국제사회는 한숨 돌리게 되는 걸까. 답은 ‘아니오’다. MML은 이미 지지 후보들을 무소속으로 출마시켜 작은 성과들을 내기 시작했다. 지난달 펀자브주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MML의 지원을 받은 셰이크 야쿱 ‘무소속’ 후보는 득표율 11%로 정치 엘리트 부토 가문이 장악한 인민당(PPP) 후보를 눌렀다. MML은 오는 26일 치러지는 북부 페샤와르 보궐선거에도 ‘무소속’ 후보 리아카트 알리 칸을 지지하고 있다. 최근 미국 방문 도중 “하지프와 LeT는 우리가 책임져야 할 빚(liability)이다. 우리에게 그들을 제거할 시간을 달라”는 카와자 아시프 파키스탄 외무장관의 말이 당분간 실현되기 어려워 보이는 이유다.

이유경 국제분쟁전문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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