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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이 마모루 “영화엔 표현의 ‘발명’이 있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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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이 마모루 “영화엔 표현의 ‘발명’이 있어야”

입력
2017.11.28 04:4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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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이 마모루 특별전’이 열린 26일 서울 동작구 아트나인에서 오시이 마모루 감독(왼쪽)과 ‘부산행’ 연상호 감독이 특별 대담을 가졌다. 엣나인필름 제공
‘오시이 마모루 특별전’이 열린 26일 서울 동작구 아트나인에서 오시이 마모루 감독(왼쪽)과 ‘부산행’ 연상호 감독이 특별 대담을 가졌다. 엣나인필름 제공

“늘 해 오던 방식과 이론을 따르면 매번 똑같은 영화밖에는 못 만듭니다. 단 하나라도 좋으니 반드시 새로운 표현이 담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발명’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죠.”

애니메이션 영화 ‘공각기동대’(1995)와 ‘인랑’(1999), ‘이노센스’(2004)로 유명한 애니메이션 거장 오시이 마모루(66) 감독은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면서 여러 번 “발명”이라는 단어를 꺼냈다. 그에게 ‘창작’은 곧 ‘발명’과 다름없는 의미였다. 그만큼 엄격하고 집요해야 하기에 “고통스러운 시간”이 뒤따랐다고도 했다.

일본국제교류기금과 엣나인필름이 주최한 오시이 마모루 특별전 참석을 위해 한국을 방문한 오시이 감독은 26일 서울 동작구 아트나인에서 관객들과 만나 “애니메이션에서는 스태프의 열정이 반드시 화면에 드러난다”며 “그렇기에 노력을 아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런 열정과 노력은 위대한 ‘발명품’ 탄생으로 이어졌고, 세계 영화사에 영향을 미쳤다. 뤽 베송 감독의 ‘제5원소’(1997)와 워쇼스키 자매 감독(촬영 당시 형제 감독)의 ‘매트릭스’(1999) 등 걸작 SF 영화들이 오시이 감독의 대표작 ‘공각기동대’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다. ‘공각기동대’는 스칼릿 조핸슨 주연의 실사영화로 제작돼 올해 개봉하기도 했다. ‘공각기동대’의 속편 격인 ‘이노센스’는 일본 애니메이션 최초로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고, 오시이 감독이 기획과 각본을 맡았던 ‘인랑’은 ‘밀정’의 김지운 감독이 한국에서 실사영화로 제작 중이다.

오시이 감독의 작품들은 주로 최첨단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환상과 실재가 혼재된 이야기를 그리며 존재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그러나 오시이 감독은 영화의 주제의식을 무겁게 받아들이지는 말아 달라고 했다. “감독의 의도가 특정 장면에 담기기는 하지만 관객이 반드시 그걸 알아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어떻게 느끼느냐는 관객의 몫입니다. 다만, 어느 영화를 좋아해서 반복 관람한다면 언젠가 감독의 뜻을 찾아내고 이해하게 될 수는 있겠지요. 저에게도 그런 경험이 있으니까요.”

오시이 마모루 감독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긴 애니메이션 걸작 ‘공각기동대’.
오시이 마모루 감독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긴 애니메이션 걸작 ‘공각기동대’.
오시이 마모루 감독이 가장 좋아하는 작품으로 꼽은 ‘스카이 크롤러’.
오시이 마모루 감독이 가장 좋아하는 작품으로 꼽은 ‘스카이 크롤러’.

오시이 감독의 영화를 본 뒤 인생이 바뀌었다면서 눈물을 비친 한 관객에게 오시이 감독은 “나는 평범한 아저씨일 뿐”이라며 따뜻하게 격려하기도 했다. “여느 아저씨처럼 술을 즐기고 뒷담화도 좋아합니다. 한국에 와서 불고기를 먹으며 술도 많이 마셨어요. 보통 아저씨와 다른 점은 딱 하나, 영화를 만들 때만큼은 다른 시간을 살고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나이 먹은 영화 감독들은 성격 파탄자가 많아요. 특별히 존경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웃음). 제가 만든 영화가 누군가의 인생을 바꿨다고 생각하면 좀 무서워요. 다만, 제 영화를 보는 동안 다른 인생을 살아본 것 같거나 약간의 힘을 받는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기쁩니다.”

가장 애착을 가진 작품으로는 ‘스카이 크롤러’(2008)를 꼽았다. 평화 유지를 위해 전쟁을 쇼로 만들어 버린 근미래 사회에서 영원히 어른이 되지 않는 전투기 조종사의 고뇌를 그린 작품이다. 모리 히로시의 동명 소설이 원작으로,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다. 그는 “애니메이션도 문학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만든 작품”이라며 “기회가 된다면 전투기 장면을 다 편집해서 감독판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관객과의 만남에는 ‘부산행’(2016)의 연상호 감독도 함께했다. 연 감독은 ‘부산행’ 이전에 ‘돼지의 왕’(2011) ‘사이비’(2013) 등을 만든 애니메이션 감독 출신이다. 오시이 감독도 애니메이션뿐 아니라 ‘넥스트 제너레이션 패트레이버’ 시리즈 같은 실사영화도 연출하고 있다. 연 감독은 ‘오시이 감독 덕후’를 자처하며 존경을 표했고, 오시이 감독은 ‘부산행’을 호평하며 훈훈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달리는 열차를 무대로 좀비 영화를 만들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허를 찔린 기분이었어요. 차에 치인 사슴이 다시 일어나는 도입부 장면에선 저도 모르게 자세를 고쳐 앉았답니다. 이런 발상이 바로 ‘발명’ 아닐까요.”

이날 200여명의 관객들은 한파도 녹일 뜨거운 애정 공세로 오시이 감독을 반겼다. 오시이 감독은 “일본에서 특별전이 열리면 대부분 중장년 관객이 오는데, 한국에선 젊은 관객들이 영화를 보러 와 줘 기쁘다”며 감격스러워했다. “남은 인생이 그리 길지 않지만, 영화를 만들고 싶은 의욕은 충만합니다. 신작 애니메이션도 준비 중이니,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덕분에 큰 힘을 얻고 돌아갑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ilbo.com

‘공각기동대’의 속편인 ‘이노센스’는 일본 애니메이션 최초로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다.
‘공각기동대’의 속편인 ‘이노센스’는 일본 애니메이션 최초로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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