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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끼줍쇼'의 착각

입력
2017.03.07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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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동(왼쪽부터)과 박보영 이경규가 JTBC ‘한끼줍쇼’에 출연해 저녁 식사를 하지 않은 집을 찾아 다니고 있다. JTBC 제공
강호동(왼쪽부터)과 박보영 이경규가 JTBC ‘한끼줍쇼’에 출연해 저녁 식사를 하지 않은 집을 찾아 다니고 있다. JTBC 제공

방송가에선 ‘예능(프로그램)을 다큐(멘터리)로 받아들이지 말라’는 말이 있다. 그저 한 번 웃기기 위해 만들어진 내용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말라는 뜻이다. 일상 대화에서도 제법 쓰이는 걸 보면 방송의 위력을 새삼 깨닫는다.

하지만 요즘 예능과 다큐의 경계가 허물어졌다. 리얼리티 방송을 표방하면서 연예인이나 보통 사람들의 일상이 고스란히 담긴 예능프로그램이 넘쳐난다. 지상파 방송사를 넘어 종합편성채널(종편)과 케이블채널은 ‘인간극장’(KBS1) 같은 콘셉트를 기반으로 연예인들을 출연시키는 리얼 예능을 쏟아낸다. 예능인지 다큐인지 분간이 잘 되지 않는다.

지난해 10월부터 전파를 탄 JTBC ‘한끼줍쇼’도 예능과 다큐가 혼합된 프로그램이다. 이경규와 강호동을 내세워 예능의 외피를 달았지만 다큐 요소가 가득하다. 서민들의 민낯이 그대로 방영되기 때문이다. ‘한끼줍쇼’의 설정은 단순하다. 이경규와 강호동이 동네 한 곳을 정해 집집마다 벨을 누르며 돌아다닌다. 저녁 식사를 하지 않은 집을 찾으면 숟가락만 들고선 한 끼를 해결한다. 두 사람은 집을 공개하는 가족에 빌붙어 그들 식탁에 숟가락만 얹으면 된다. ‘초간편’ 예능이 따로 없다.

제작진은 아마도 소박한 저녁 식탁을 통해 자연스럽게 서민들의 일상을 엿보고 싶었을 게다. 삭막해져만 가는 우리네 현실을 담는다는 원대한 포부를 지녔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획 의도부터 잘못됐다. 서울 망원동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첫 회부터 ‘한끼줍쇼’의 미래는 판가름이 났다. 어느 곳도 두 사람을 반기지 않았다. 느닷없이 벨을 눌러 “저녁 드셨어요?”를 묻는 사람에게 문을 열어줄 가정이 몇이나 될까.

저녁 식사를 초대한 집에 다짜고짜 들이닥치는 모습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묻지도 않고 카메라를 얼굴에 내미는가 하면 집을 공개한 이들의 신상명세까지 캐묻는다. 굳이 몰라도 될 개인 신상이 적나라하게 까발려진다. 일용직 노동자인 아버지의 직업, 고등학생의 성적, 취준생의 하루 등 밝히고 싶어하지 않을 개인 정보의 공개에도 제작진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민폐가 따로 없다. 시청자가 마음 불편해하고 민망할 상황이 연속적으로 화면을 채운다.

서울 창신동 할머니와 손녀가 사는 협소한 집에 출연자와 제작진 10여 명이 들어서는 장면도 당황스러웠다. 애써 공간을 내어주며 “밥 주는 게 제일 좋다”고 말하는 할머니의 정감 어린 마음은 흔들리는 카메라와 화면 귀퉁이에 잡힌 스태프들의 모습 때문에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집집마다 문을 열어주지 않는 모습은 각박한 사회의 단면이 아니라 눈치 없는 ‘한끼줍쇼’가 자초한 현상 아닐까.

무엇보다 제작진의 시선이 마음에 걸린다. 방송은 도시 안에 존재하는 불균형과 빈부격차를 은근슬쩍 끄집어낸다. 출연자는 비좁은 골목길에 늘어선 집을 보곤 “다닥다닥 집들이 붙어 있다”고 하고, 부촌의 으리으리한 집을 향해 “여기서부터 여기까지가 한 집”이라며 놀란 표정을 숨기지 않는다. 시청자들은 TV가 확인해주는 현실에 더 씁쓸해진다.

제작진은 ‘한끼’를 가볍게 생각했을 지 모른다. 그러나 연예인이나 유명인이 아닌 서민들을 화면에 등장시켰을 때는 얘기가 달라진다. 그저 일회성 코미디로 단정해 넘길 수 없는 현실이 있기 때문이다. 다큐의 형식을 빌려온 ‘리얼’은 더 이상 가짜가 아니다.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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