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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비정규직… 사회 이슈 연극 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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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비정규직… 사회 이슈 연극 붐

입력
2015.07.30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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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아트센터·서울시극단 등 제작극장·공공단체까지

사회성 짙은 소재 무대에 올려… 대학로 소극장은 '다큐 연극' 늘어

연극 ‘공중의 방’에 출연하는 배우들이 명륜동 연습실에서 수학여행을 떠나는 단원고 학생들이 세월호를 보고 들뜬 장면을 연기하고 있다.
연극 ‘공중의 방’에 출연하는 배우들이 명륜동 연습실에서 수학여행을 떠나는 단원고 학생들이 세월호를 보고 들뜬 장면을 연기하고 있다.

“배 탄대, 선생님이.” “출발하는 거야?” “아니 우선 배에서 밥 먹는데. 가방 싸! 얘들아!”

27일 명륜동 성균관대 근처의 한 연습실. “배 앞에 학생들 모이면 한 장면 한 장면 사진 찍듯 보여주라”는 손상희 연출가의 말이 끝나자 배우들이 수학여행에 달뜬 단원고 학생들로 분한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와 2003년 김주익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 사망을 모티프 한 작품의 제목은 ‘공중의 방’. 극단 토모스 팩토리의 손상희 연출가는 “세월호를 주제로 한 기획초청공연 참여를 제안 받고 고민했다”며 “연극하는 사람이 연극으로 풀지 못하고 페이스북에 ‘좋아요’만 누르면서 1년을 보내 마음이 무거웠다. 애도한다면 제가 가진 무기로 애도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대학로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는 8월 5일부터 29일까지 ‘공중의 방’을 비롯해 세월호를 모티프로 한 연극 8편 단편영화 1편을 선보인다. 9개 팀 100여 명의 연극인이 참여하고, 제작비 마련을 위한 시민 후원 모금을 시작했다. 극단 작은방의 신재훈 연출가는 “동인들이 극장의 공공성과 ‘연극은 무엇인가’를 고민하다 올해 주제를 세월호로 잡고 동인과 외부 극단이 결합한 기획초청공연을 선보이기로 했다. 매해 일정기간 동시대를 담아내는 공연을 올릴 예정”이라고 말했다.

80년대 번성한 사회성 강한 사실주의 연극들이 최근 다시 늘고 있다. 전통적으로 동시대 사회문제를 작품에 담아온 소극장 외에 두산아트센터와 남산예술센터 등 제작극장, 서울시극단 등 공공단체까지 동참하고 있다. 김요안 두산아트센터 수석프로듀서는 “2000년대 후반 공공극장들이 개관하며 국내 연극계가 상업극과 예술극으로 양분화된 결과”라며 “비슷한 시기 ‘다큐멘터리 연극’(사건 당사자를 출연시키거나 당사자의 말을 그대로 인용한 연극)으로 대표되는 사회성 강한 작품이 영국 공공극장을 중심으로 유행한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두산아트센터는 2013년부터 ‘두산인문극장’ 프로그램을 통해 매년 상반기 동시대 문제를 드러낸 연극 3~4편을 선보이고 있다. 올해는 ‘예외’를 주제로 레바논 내전(연극 ‘구름을 타고’)과 천안문 사건(‘차이메리카’), 은둔형 외톨이(‘히키코모리 밖으로 나왔어’) 문제를 다뤘다. 인문극장 시리즈는 아니지만 최근 두산아트센터에서 초연한 연극 ‘신모험왕’도 2002한일월드컵 당시 터키 여행자들의 대화를 통해 한일 관계를 되짚었다. 남산예술센터는 지난해 연극 ‘투명인간’,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 분개하는가’에 이어 최근 ‘햇빛샤워’를 잇달아 제작하며 한국사회 병폐와 소외 문제를 다뤘다. 동양예술극장 역시 3월 개관 기념작으로 아서 밀러의 ‘샐러리맨의 죽음’을 개작해 조기 은퇴문제를 풍자한 ‘아버지’를 올렸다.

서울시극단의 올해 기획공연 두 편은 모두 동시대 사회 문제를 담은 연극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2월 ‘여우인간’), 보스턴 마라톤 폭탄테러(9월 ‘우리는 형제다’)를 모티프로 사회 병폐를 꼬집는다. 김광보 서울시극단 단장은 “고연옥 작가의 ‘우리는 형제다’를 시작으로 매년 가을 창작극을 올릴 계획이다. 사회 일면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작품을 선보여 온 장우재 김은성 작가에게 내년과 내후년 올릴 작품 극본을 의뢰했다”고 말했다.

파업 손해배상 가압류 문제를 그린 연극 ‘노란 봉투’(위), 노무현 대통령 서거를 모티프로 한국 정치현실을 꼬집은 연극 ‘여우인간’. 컬처버스ㆍ세종문화회관 제공
파업 손해배상 가압류 문제를 그린 연극 ‘노란 봉투’(위), 노무현 대통령 서거를 모티프로 한국 정치현실을 꼬집은 연극 ‘여우인간’. 컬처버스ㆍ세종문화회관 제공

애초부터 사회성 강한 작품들을 선보여 온 대학로 소극장에서도 “직접적으로 사회문제를 담은 작품이 유행처럼 늘고 있다”(손상희 연출가)는 반응이다. 다만 80년대 사실주의 연극이 “문제를 부각하기 위해 인위적인 조합을 만든 방식”이라면 최근 작품들은 “탄탄한 관찰을 바탕으로 자연스러움을 살리고 설득력을 얻는 방식”(조형준 안산문화재단 프로듀서)으로 바뀌었다.

특히 다큐멘터리 연극이 늘고 있다. 비정규직 문제를 다룬 극단 유랑선의 ‘검군전, 후’는 주요 장면마다 대기업 내부고발자들의 영상을 배치했고, 노동문제를 다룬 연극 ‘노란 봉투’ ‘구일만 햄릿’ ‘반도체 소녀’에는 각각 파업손해배상 소송 당사자, 비정규직, 산업재해자가 무대로 나왔다. 혜화동1번지 기획초청공연 ‘세월호’에 참여하는 무브먼트 당당의 ‘그날, 당신도 말 할 수 있나요?’ 역시 세월호 희생자 가족과 연극 배우들이 참사 당시 각자의 경험을 증언하는 형식의 연극이다.

사회 이슈를 다룬 작품들이 늘고 있지만, 소재만 차용한 가벼운 연극에 그친다는 지적도 나온다. 극단 토모즈 팩토리의 츠카구치 토모 연출가는 “한국 연극은 미니멀리즘이라는 큰 경향 안에 리얼리즘이 있는 것 같다. 이전보다 방식은 세련됐지만, 패셔너블한 좌파 발언이 소비되는 현실에서 연극이 사회문제를 소재로 소비하는 건 아닌가 회의가 들 때도 있다”고 말했다.

정명주 국립극단 기획홍보팀장은 “관객에게는 최근 한국 정치가 각별한 이슈이기 때문에, 사회성 짙은 연극들이 더 주목을 받고 있다”며 “하지만 아직은 최대 수요가 3,000~4,000명 정도라 중소 극장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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