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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도 매혹된 ‘동물의 기품 있는 죽음’

입력
2016.09.09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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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왕 로보는 사람보다 당당하게 위엄을 지키며 숨을 거둔다. 회색 곰 와프는 쇠락하자 제 발로 죽음의 골짜기로 들어간다. 바우솔 제공
이리왕 로보는 사람보다 당당하게 위엄을 지키며 숨을 거둔다. 회색 곰 와프는 쇠락하자 제 발로 죽음의 골짜기로 들어간다. 바우솔 제공

시튼 동물기

고은 시ㆍ한병호 그림ㆍ안선재, 이상화 옮김

바우솔 발행ㆍ40쪽ㆍ1만2,000원

‘시튼 동물기’를 읽으면 ‘시튼 동물기’가 읽고 싶어진다. 물론 둘은 다른 책이다. 앞엣것은 고은 시인의 시에 그림책 작가 한병호가 그림을 그려 꾸민 그림책, 뒤엣것은 동물학자이자 작가인 어니스트 톰슨 시튼이 쓴 동물문학의 고전이다.

그림책은 이렇게 시작된다. “차령이는 책 읽는 걸 좋아해요/ 잠자기 전에도/ 책을 읽어요/ 그런 책 가운데/ 시튼 동물기가 있어요” 화면에는 책이 한 권 서 있다. 표지에는 여우와 부엉이와 토끼와 곰이, 나뭇등걸과 풀밭과 호수가 빼곡하다. 벌어진 책장 사이로 살쾡이가 고개를 배죽 내밀고 늑대가 훌쩍 뛰어들고 나뭇가지가 넌지시 돋아난다. 책장을 넘기니 날카로운 눈매의 늑대들이 활기차게 숲길을 달린다.

엄마는 아이에게 같은 책을 왜 자꾸 읽느냐고 묻는다. 아이가 대답한다. “엄마 나는 여기가 참 좋아요/ 이리 왕 로보의 당당한 죽음/ 회색 곰 와프의 죽음이 좋아요” 늑대 로보는 존엄성과 영원한 사랑의 상징이다. 무리를 이끌며 드넓은 목장 지대를 휩쓸던 천하무적 늑대가 사람들에게 제 짝을 잃고는 슬픔을 못 이겨 파멸의 길에 들어섰다. 덫에 걸린 로보는 물도 먹이도 마다하고 “사람보다 당당하게” 위엄을 지키며 숨을 거둔다. 회색 곰 와프는 일찍이 사냥꾼의 총에 가족을 잃고 온갖 시련을 겪으면서 온전히 제 힘으로 자신의 왕국을 세웠다. 그러나 외톨이 꼬마 곰을 숲의 지배자로 만들어준 시간이 다시 그를 병들고 쇠약한 존재로 바꾸어놓자, 제 발로 독가스를 내뿜는 죽음의 골짜기로 걸어 들어가 지난날을 회상하며 “아주 새록새록” 죽어간다.

‘시튼 동물기’ 속 동물들은 제 몫의 삶을 제 의지대로 살아가는 매혹적인 존재다. 그들은 거칠고 당당하며 자유롭고 시련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는다. 시인은 그들의 삶을 동경하는 아이, 그들의 죽음이 저마다 파란만장한 삶의 완성이며 슬프고도 찬란한 순간이라는 걸 이해하는 아이를 보여준다.

간결하고 리드미컬한 시어 속에 담긴 세계는 깊고 아련하다. 화가는 서사를 촘촘히 쌓아 올리기보다 시가 연상시키는 어떤 느낌, 어떤 정서에 주목하여 우리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을 아름다운 순간들을 담백한 석판화로 그려냈다. 우리는 책을 읽으며 느끼고 책을 읽으며 생각하고 책을 읽으며 세상을 배운다. 이 그림책은 백여 년 세월을 가로지르며 여전히 깊은 감동과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시튼 동물기’에 대한 흥미로운 독후감이다.

최정선 어린이책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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