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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라고 性이 다 엄숙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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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라고 性이 다 엄숙했을까?

입력
2017.07.02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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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중앙연구원 특별전

‘옛 사람들의 사랑과 치정’ 개최

신윤복의 그림 월하정인. 성리학적 금욕주의는 조선의 참 얼굴이 아닐 수도 있다.
신윤복의 그림 월하정인. 성리학적 금욕주의는 조선의 참 얼굴이 아닐 수도 있다.

“여자 가는 길을 사나이 피해 다니듯이 / 사나이 가는 길을 계집이 비켜 돌듯이 / 제 남편 제 계집 아니거든 이름도 묻지 말라.” 1580년 강원도관찰사였던 송강 정철이 지은 시다. 제목도 백성을 교화하겠다는 ‘훈민가(訓民歌)’이니 요즘으로 치자면 이런저런 어용 단체들이 내거는 ‘착하게 살자’는 식의 구호와 비슷하다.

조선은 성리학적 남녀유별에 따라 엄숙하고 정숙하기 이를 데 없었다는 고정관념이 강하다. 그러니 저런 시도 나왔을 것이다. 짐작하듯 저런 시는 쓴 사람의 자기만족 외엔 그 어느 누구에게도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한다. 그러면 진짜 감흥은 어디에서 오는가.

한국학중앙연구원은 2일 장서각 특별전 ‘옛 사람들의 사랑과 치정’을 12월 16일까지 진행한다고 밝혔다. 옛 기록 가운데 ‘남녀상열지사’에 해당하는 부분만 뽑아 모아둔 것이다. 당연하게도 방점은 사랑보다 ‘치정’이다.

진짜 시는 ‘청구영언’에 실린 이런 시다. “지난 밤에 자고 간 사람 아마도 못 잊어라 / 와야 놈의 아들인지 진흙에 뽐내듯이 / 두더지 영식인지 샅샅이 뒤지듯이 / 사공의 정령인지 상앗대로 자르듯이 / 평생에 처음이오 흉하고도 얄궂어라/ 전후에 나도 무던히 겪었지만 정말 맹서하지 / 그 놈을 차마 못 잊어 하노라” 하룻밤 사랑을 보내고 난 뒤 어느 여인이 지은 것으로 전해지는 이 시에서 “평생에 처음이오 흉하고도 얄궂어라”라는 대목에서는 웃음이 팍 터진다.

19세기 소설 ‘가심쌍완기봉’은 이보다 더 우리의 상상을 뒤집어엎는다. 이 소설의 주인공 방관은 여자다. 여잔데 “어찌 세속 여자들처럼 남자 섬기는 일을 하겠는가”라고 선언한 뒤 남장(男裝)여자로 살아간다. 그뿐 아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영소저와 결혼, 그러니까 동성결혼을 감행한 뒤 입양으로 아이를 얻어 완벽한 가정을 꾸린다. 나라에 큰 공을 세운 뒤 죽기 직전 임금에게 자신의 정체를 털어놓기까지 한다. 고리타분한 조선에서도 상상력은 끝이 없었다.

"그 놈을 차마 못 잊겠다"는 한 여인의 절규가 고스란히 실린 청구영언. 조선시대가 성리학 시대였다는 것은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한중연 제공
"그 놈을 차마 못 잊겠다"는 한 여인의 절규가 고스란히 실린 청구영언. 조선시대가 성리학 시대였다는 것은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한중연 제공

가면을 벗은 양반들도 많다. 고려 말 대표적 문신 이규보는 ‘동국이상국집’에다 일흔넷의 나이에도 젊은 여인이 자신을 유혹하는 꿈을 꿨다고 한탄하는 글을 남겼다. 19세기 지식인 심노숭도 자신의 일기 ‘남천일록’에다 서른 즈음에 미친 듯이 성욕에 몰입했던 자신의 모습을 담담하게 기록해두기도 했다.

아름다운 사랑의 장면들도 믈론 있다. 18세기 전라도 선비 황윤석은 30여년을 함께 한 부인이 48세에 죽자 애뜻한 나머지 틈만 나면 부인을 기리는 시를 남겼다. 아내 삼의당 김씨와 남편 하립이 신혼 첫날밤 결혼의 성사를 축하하면서 주고받은 시도 있다. 조선시대에 연애결혼은 없었다. 중매로 결혼했다. 그러나 한 동네에서 같은 해, 같은 달, 같은 날에 태어나 소꿉친구처럼 자란 이 부부는 중매라는 방식을 통해 자연스레 연애결혼을 성사시켰다. 남들과 다른 결혼에 감흥도 남달랐으리라.

한형조 장서각 관장은 “아름다운 사랑과 만남, 가슴 아픈 이별과 복잡한 치정관계 등을 다룬 여러 장면을 보면 우리가 알던 조선과는 사뭇 다른 풍경을 마주할 수 있다”면서 “이번 전시를 통해 전통시대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이 좀 더 넓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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