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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저출산 예산의 실체

입력
2018.07.26 13:47
수정
2018.07.26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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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이후 1차에서 3차에 걸쳐 저출산ㆍ고령사회 기본계획을 시행하면서 저출산 관련 예산을 130조원 이상 ‘쏟아 부었는데도 불구하고’ 효과가 없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그런데 이는 비판이 아니라 감정적이며 근거없는 비난에 가까운 선동일 뿐이다. 이러한 선동이 난무하게 된 일차적 책임은 정부에 있다. 실체를 확인하려고 하지도 않고 일단 목소리를 높여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려는 언론의 태도도 한몫을 하고 있다. 왜 그런가?

2006년 이후 지금까지 3차에 걸쳐 시행하고 있는 저출산ㆍ고령사회 기본계획에서 이른바 ‘저출산 예산’을 제시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2006년부터 2017년까지 저출산 예산은 126조4,720억원이다. ‘저출산 예산 130조원’의 근거이다. 그런데 130조원 중 일반적인 교육정책, 주거정책, 노동정책, 사회복지정책과 보건정책 영역 예산이 차지하는 규모가 63조2,215억원이다. 요즘 많이 이야기하는 ‘아이 낳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예산으로 볼 수 있다. 청년 일자리 창출, 신혼부부 주거지원, 교육 환경 개선 등 넓은 의미에서 보편적 사회보장 예산이다. 126조원 중 이 영역 예산 규모가 저출산 예산의 50%이다. 직접적이진 않지만, 보편적 사회보장제도 확대는 아이를 낳고자 하는 결정 가능성을 간접적으로 높일 수 있다. 일종의 출산 ‘결정지원 예산’이다. 126조원의 다른 절반인 63조2,505억원이 임신ㆍ출산ㆍ돌봄을 직접 지원하는 예산이다. 가족복지 예산의 일부이기도 하다. 임산부와 신생아 의료비 지원, 무상보육ㆍ국공립 어린이집 설치 등 보육서비스 확대, 난임시술 지원 등이 있다. 임신ㆍ출산ㆍ돌봄 ‘행위지원 예산’이다. 이 63조원을 결국 저출산 예산으로 볼 수 있다.

저출산 예산 효과를 놓고 비판을 하려면 따라서 126조원이 아니라 63조원을 전제로 해야 한다. 그런데 아이 낳고 기르기 좋은 환경을 하루아침에 만들기 어려운 상황에서 행위지원 예산을 아무리 늘려도 출산 의도를 높이기는 어렵다. 그래서 1,2차 기본계획에서는 보육 인프라 구축 등 행위지원 영역 예산 비중이 높았지만, 3차 기본계획에서 청년 일자리와 주거 등 결정지원 예산 비중을 높이기 시작하였다. 바람직한 정책 전환이다. 그러나 이를 저출산 예산으로 명명함으로써 출산과 상관없이 어차피 한국 사회가 확대하고 있는 사회보장 예산을 섞어버린 결과를 낳았다. 저출산 예산 63조원이 126조원으로 부풀려졌다.

그런데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국가 중 국내총생산 대비 공공사회복지비 지출 비율이 바닥을 헤매는 한국의 상황을 생각해보자. 최근 몇 년간 합계출산율 1.5~2.0 수준을 오가는 회원국 평균이 25% 수준인 반면 한국은 12%이다. 임신ㆍ출산ㆍ돌봄을 결정할 수 있는 간접 지원으로서 보편적 사회보장제도 예산을 획기적으로 늘려야 할 근거이다. 게다가 국내총생산 대비 공공가족복지비 지출 비율이 2013년 현재 회원국 평균 2.43%의 절반 수준인 1.32%이다. 임신ㆍ출산ㆍ돌봄 행위 지원 예산, 즉 저출산 예산도 획기적으로 늘려야 하는 상황인 셈이다. 이른바 저출산 대응정책의 성공 사례로 꼽고 있는 프랑스와 스웨덴이 3.65%와 3.64% 수준을 보이고 있다. 이 나라들 정도 수준으로 ‘쏟아 부었는데’ 지금 이 상황이라면 저출산 예산 효과가 없다는 비판을 해도 좋다. 그런 국가들의 3분의 1 수준을 가족지원에 투입하고 있으면서 ‘백약이 무효인 저출산 예산’ 타령을 할 수 있을까?

정부는 저출산 대응 관련 예산 제시를 지금보다 더 세분화 할 필요가 있다. 언론은 130조원 논쟁을 좀 더 신중하게 전개해야 한다. 한국 사회가 전체적으로 일자리와 주거, 교육, 안전 등 보편적 사회보장제도 확대와 임신ㆍ출산ㆍ돌봄을 직접 지원할 수 있는 ‘저출산 예산’을 포함한 가족복지비 지출 규모를 최소한 경제개발협력기구 회원국 평균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노력을 지속해야 할 때이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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