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기고] 더 나은 세상을 위한 항공권 속 천원

입력
2017.11.20 14:12
29면
0 0

무명 시절 무더운 어느 여름날, 골목에서 촬영을 기다리던 중 에어컨 실외기가 내뿜는 뜨거운 바람에 공들여 정리한 머리카락이 망가져 버렸다. 건물 안의 사람들을 시원하게 하려고 건물 밖의 사람에게 손해를 안긴 것이다.

산업화의 물결 속에서 개발을 먼저 이룬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에 미치는 영향은 마치 한여름 에어컨 실외기와 같은 형국이다. 인간의 이기심이 낳은 산업발전의 폐해를 아프리카를 비롯한 세계 빈곤층이 고스란히 겪고 있는 셈이다.

2013년 KOICA 봉사를 위해 방문한 아프리카 DR 콩고에서 만난 미보티 마을 주민들의 현실이 이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험준한 비포장도로를 꼬박 이틀 넘게 달려 도착한 그곳에서, 벌레에 물려 자신의 얼굴만큼 크게 부풀어 오른 턱을 안고도 치료조차 받지 못하는 한 아이와 마주했다. ‘처참하다’는 말을 몸으로 풀어낸 듯한 아이의 모습을 보며 ‘해외 원조’, ‘해외 봉사’라는 표현이 너무 거창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17일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미보티 마을 사람들과 함께하며 더 많은 것들을 나누지 못한 미안함과 동시에 지구 반대편 이웃들이 겪고 있는 심각한 빈곤과 질병 문제를 해소하는 데 이바지해야겠다는 의무감마저 생겼다.

미보티 마을 사람들은 하루 1달러도 되지 않는 돈으로 생활한다. 우리에게는 1,000원에 불과한 돈이 이들에게는 하루 생존을 결정하고 있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 금액은 우리나라에서 출발하는 국제선 항공권에 포함된 ‘국제질병퇴치기금’과 같은 액수이다. 국제질병퇴치기금은 2007년부터 10년간 ‘국제빈곤퇴치기여금’이라는 이름으로 한시적으로 운영되다가 올해 1월부터 영구적 기금으로 전환되어 시행되고 있다.

이렇게 모인 기금은 유엔아동기금(UNICEF), 유엔인구기금(UNFPA)과 같은 국제기구와 국내 NGO 등 다양한 국내외 기관과 협력하여 개발도상국의 감염병 예방과 퇴치를 위해 사용된다. 지금도 아프리카에서는 말라리아로 인해 1분에 1명씩 생을 마감한다고 하니 질병과 치열한 사투를 벌이는 이들을 위해 기금이 쓰인다는 것이 더욱 반갑다.

11월 25일 ‘개발원조의 날’은 대한민국이 원조받는 나라에서 원조하는 나라로 서게 된 뜻 깊은 날로, 지난 2009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DAC)의 회원국으로 가입한 이후 개발도상국의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해 힘을 보태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구촌 한편에는 미보티 마을 주민들과 같이 빈곤과 질병으로 인해 기본권이 무너진 삶을 사는 이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과거 지독한 빈곤을 겪었던 우리나라도 국제 원조를 통해 가난을 극복하는 데 많은 도움을 받은 만큼 이들이 최소한의 생활을 보장할 수 있도록 우리의 노력과 도움이 절실하다.

이날의 의미를 상기하며 먼저 개발을 이룬 국가가 해야 할 도리로서 우리의 작은 결실인 ‘국제질병퇴치기금’이 더 나은 삶을 위한 매개체가 되는 데 모두가 기쁜 마음으로 동참해주기를 희망한다. 부푼 마음으로 떠나는 여행이 세계를 향한 아름다운 마음을 담은 여정이 될 수 있도록 ‘항공권 속 천원’의 의미를 다시금 새겨보길 바란다.

송재희 한국국제협력단(KOICA) 홍보대사ㆍ배우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