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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칼럼] 어떤 나라가 ‘잘 나갈 때’의 특징

입력
2015.07.31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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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대선에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가 유력 후보로 떠오르면서, 미국에서는 사상 최초로 ‘부자ㆍ형제 대통령’ 탄생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41’을 읽게 된 것도 이 같은 상황 전개에 따른 직업적 의무감 때문이었다. 43대 대통령을 지낸 아들(조지 W. 부시)이 41대 아버지 대통령(조지 H. 부시)의 일대기를 적은 이 책을 읽어 두면 세 번째 부시 대통령이 나왔을 때 도움이 될 거라는 계산이었다.

그런데 책을 읽던 중 한국 정치풍토들 돌아보게 하는 장면을 만나게 됐다. 바로 초선 의원 조지 H. 부시가 ‘소신 투표’로 정치생명이 위험에 빠졌을 때에 대한 기록이었다. 아들은 책에서 당시 아버지를 이렇게 적고 있다.

조지 H. 부시는 원래 연방정부가 민권법을 추진하는데 반대했다.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공화당원으로서 그런 법률은 주 정부가 맡아야 한다고 믿었다.

그런데 베트남 전쟁이 그를 바꿨다. 1968년 베트남 시찰에서 병사들이 흑백 구별 없이 전우애로 뭉쳐 싸우는 걸 보고 돌아 온 그 앞에 ‘공정주택법’이 기다리고 있었다. 주택 매매ㆍ임대에서 인종 차별을 금지하는 내용인데, 지역구민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백인 유권자들이 반대했다. 의원 사무실에 도착한 편지들은 30대1 비율로 ‘반대 하라’는 여론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러나 68년 4월10일 공화당 소속이면서도 부시 의원은 민주당(린든 존슨) 대통령이 내놓은 이 법에 찬성표를 던졌다. 33명 텍사스 출신 의원 가운데 찬성표를 던진 9명중 하나였다.

역풍은 신속하고 거셌다. 다음날부터 워싱턴 의원 사무실로 분노의 전화가 빗발쳤다. 몇몇 전화는 ‘생명 위협’까지 거론했다. 미 하원 우체국에 따르면 부시 의원은 그 해 전체 의원 가운데 가장 많은 (협박)편지를 받았다. 휴스턴 지역구에 내려간 부시 의원은 더욱 거센 여론에 직면했다. 결국 수백명 지역구민이 모인 회당에서 설명회를 열어야 했다.

청중들은 지역구 의원이 입장하자, 야유를 퍼부었다. 부시 의원은 말했다. “이 법은 ‘아메리칸 드림’은 실현될 수 있다는 약속입니다. 베트남에서 흑인 병사를 만났습니다. 무사히 귀국해 결혼하고 내 집을 마련하는 게 소원이랍니다. 이건 아주 기초적인 문제입니다. 경제력과 교양을 갖춘 성인 남자가 흑인이라는 이유로, 혹은 남미 억양으로 말한다는 이유만으로 문전박대 당해서는 안됩니다.”

아버지는 지역구민의 반대 여론이 강했다는 걸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이렇게 마무리했다.“신념에 따라 투표했습니다. 인기 없는 일이라는 걸 알았지만, 옳다고 생각한 걸 한 겁니다. 제 말은 이게 전부입니다!”

직전까지 야유를 보내던 청중이 모두 아버지에게 기립 박수를 보냈다. 그들 대부분은 그 법에 대한 생각을 바꾸지는 않은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지역구 의원에 대한 마음은 바꾼 게 확실했다. 부시 의원이 용기 있고 정직하다는 걸 알게된 것이다. 7개월 후인 그 해 가을 치러진 선거에서 부시 의원은 압도적 지지율 때문에 경쟁 후보도 나오지 않은 가운데 무투표로 재선에 성공했다.

모든 나라는 흥망성쇠를 겪는다. 한국도, 미국도 마찬가지다. 전성기를 구가하는 나라가 있다면, 그 당시 정치 지도자는 물론이고 국민들도 전성기가 아닐 때의 조상이나 후손과는 확실히 다른 행태를 보인다. 아버지 부시 사연은 1960년대 미국이 왜 초강대국이었는지를 보여준다. 아버지 부시가 한국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봤다. 반대 정파가 발의했는데도, 지역구민이 반대하는 법인데도 ‘옳다고 여겨서 찬성했다’는 정치인이 한국에도 있다면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조철환 워싱턴특파원 chc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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