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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석학칼럼] 이란의 기회

입력
2017.05.28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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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국민이 개혁ㆍ개방 정책을 지속하기로 결정했다. 개혁파 하산 로하니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 것이다. 세계가 개혁파 대통령의 재신임에 환호했다. 이란과의 더 많은 관계 개선 기회가 중동 평화 진전에 도움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로하니는 4년 전 대통령에 처음 당선됐을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1차 투표에서 50% 이상 과반 득표에 성공함으로써 2차 결선투표 없이 당선이 확정됐다. 그는 57.1%를 득표해 검사 출신의 강경 보수파 세예드 에브라힘 라이시(38.3%)를 18.8%포인트 차로 눌렀다.

많은 관측통들은 이번에도 로하니가 유력한 대선 후보일 것으로 여겼지만, 2013년과 마찬가지로 압도적 승리를 거두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어쨌든 1981년 이래 모든 이란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했다. 로하니의 승리는 그럴 만한 일이었으나 투표가 단순히 관례를 따른 건 아니었다.

그의 경쟁자인 보수파 라이시는 열심히 선거운동을 했다.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는 대선 기간에 절대적으로 라이시를 지지했다. 이란에선 최고지도자의 권력이 막강하다. 대통령은 2인자에 불과하다. 그러나 로하니의 승리는 최고지도자와 가까운 후보가 결코 승리를 보장받지 못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증명했다.

이번 선거 투표율은 73%로 높았다. 이란은 지금 역사적 전환점에 놓여 있고 이란 국민도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많은 시민들이 투표를 통해 분명한 정치적 의사를 나타나겠다는 열의로 길게 줄지어 선 것도 이런 시대적 상황과 무관치 않다. 이란 정권의 불투명성에도 불구하고 최고지도자 하메네이의 건강 문제는 대중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하메네이도 가까운 장래에 그의 자리를 이어받을 후계자가 지명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

권력 전환기에 대통령 직에 오른다는 것은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하메네이는 신정(神政) 체제인 이란에서 정치ㆍ종교의 수장인 최고지도자에 오르기 전 대통령을 지냈다. 보수파 후보인 라이시가 당선됐다면 하메네이의 후계자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았을 것이다. 그러나 로하니의 압도적 승리로 라이시의 승계 기회는 거의 사라졌다.

로하니가 이끄는 이란은 앞으로 크게 변화할 것이다. 그가 개혁ㆍ개방 정책을 한층 강화하겠다고 언급한 것은 단순한 정치적 수사가 아니다. 2015년 미국이 주도한 주요 6개국(중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영국) 및 유럽연합(EU)과의 핵 합의는 가장 강력한 증거다. 루하니는 핵 개발 축소를 조건으로 미국과 EU, 그리고 유엔안전보장이사회가 부과한 강력한 경제 제재를 완화하는 핵 합의를 이끌어냈다.

이란 대통령이 최고지도자 밑에 위치한다는 건 분명하다. 핵 합의가 하메네이 승인 없이 이뤄졌을 리 없다. 대선 기간에 후보들이 핵 합의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대통령은 국내 정책을 포함해 중요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로하니와 라이시는 핵 합의가 국내 경제에 미친 효과에 대해 매우 다른 판단을 내림으로써 차별화를 시도했다. 로하니는 핵 합의가 연평균 경제성장률 7%로 도약하는 계기가 됐다고 확신한다. 그러나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최근의 경제 성장이 석유수출 증가에 따른 것일 뿐 모든 계층에 성장의 혜택이 미치지는 않았다고 반박한다. 여전히 많은 국민이 가난과 실업으로 고통 받고 있다는 것이다. 하메네이 역시 로하니의 경제 정책에 매우 비판적이다.

그러나 이란의 변화에 대한 로하니의 판단은 설득력이 있다. 실제 개혁ㆍ개방 정책의 강화는 이란에 엄청난 혜택을 줬다. 물론 만성적인 신용부족 등 국제금융제도에서의 고립이라는 여전한 경제적 장벽이 이란의 발목을 잡고 있다.

악재는 또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선 기간 이란과의 핵 협상을 비판한데다 공화당이 우세한 미 의회가 이란 투자를 반대하는 등 이란 정부에 강경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는 순진하게도 국제사회가 개혁ㆍ개방 정책을 환영할 것으로 믿는 로하니를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정치적 원군이 되고 있다.

이들 회의론자 가운데 보수파 라이시는 서구를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만약 라이시가 대선에서 승리했다면 핵 합의에 대한 그의 지지 표명에도 불구하고 미ㆍ이란 관계는 상호 불신으로 치달았을 것이다.

다행히 로하니의 승리는 트럼프 정부의 대이란 강경책을 완화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불과 몇 주 전까지만 해도 트럼프 정부는 로하니가 핵 합의를 제대로 이행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로하니에 대한 이란 국민의 압도적 지지는 이란이 핵 합의 정신을 계속 지킬 것이라는 것을 보장하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트럼프는 로하니를 편하게 놔두지 않을 것이다. 로하니 정부가 트럼프 대통령이 높이 평가하지 않는 핵 합의를 지켜나가려면 이웃 나라들과의 관계 개선에 좀더 노력해야 한다. 주변국 시리아 등 시아파 지원에 앞장서지 않는다는 점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이란 국민이 투표하던 날, 트럼프는 첫 해외 공식방문국으로 사우디아라비아를 택했다. 그의 짧은 중동 방문이 지역 평화를 진전시키는 우호적 조건을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을 갖자. 이란도 평화 진전을 향한 강력한 사인을 보냈다. 중동 평화를 위한 절호의 기회를 잃어버려선 안 된다.

하비에르 솔라나 전 EU 공동외교안보정책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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