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이충재 칼럼] 청와대의 권력 내려놓기 실험

알림

[이충재 칼럼] 청와대의 권력 내려놓기 실험

입력
2018.04.02 16:40
30면
0 0

국정원 국내 정보요원 수백 명 전원 재배치

검찰, 주요 수사상황 청와대 보고도 사라져

권력공생 못하게 국정원ㆍ檢개혁 제도화해야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지난 1월 국정원과 검찰, 경찰 등 권력기관 개혁 방안을 발표하는 모습.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지난 1월 국정원과 검찰, 경찰 등 권력기관 개혁 방안을 발표하는 모습.

수백 명에 달하던 국가정보원 국내정보담당관(IO)이 사라졌다. 이들 전원의 국정원내 부서 재배치 작업이 최근 완료됐다. 국회, 정당, 정부부처, 공공기관, 주요 단체, 대기업, 언론사 등에서 이들의 모습도 자취를 감췄다. 사회 각 분야에서 국정원 요원들의 동향정보 수집이 중단된 것이다. 청와대에 건네졌던 상당량의 국정원 정보가 끊긴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청와대와 검찰 관계도 달라졌다. 검찰은 새 정부 들어 수사에 관한 일체의 정보를 청와대에 전달하지 않고 있다. 청와대의 연결 통로인 법무부에도 알려 주지 않는다. 청와대가 “검찰을 이용하지 않겠다”고 했고, 검찰도 그럴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검찰의 이명박 전 대통령 수사진행 상황을 청와대와 법무부는 전혀 몰랐다고 한다. 문무일 검찰총장이 이 전 대통령 영장청구 협의를 위해 박상기 법무부 장관을 방문하고 나서야 청와대는 법무부를 통해 수사 결과를 보고받았다.

이전 정권에서 청와대 권력을 지탱해 온 두 축은 국정원과 검찰이었다. 국정원의 동향정보는 정치공작과 공직사회 장악의 토대가 됐고, 검찰 수사정보는 권력의 안전판 역할을 했다. 구속된 이명박ㆍ박근혜 전 대통령의 범죄 혐의 상당부분은 국정원과 관련돼 있다. 검찰은 이들의 범죄를 알면서도 눈을 감거나 은폐했다. 두 전직 대통령이 행사한 권력의 원천이 이들 기관이었던 셈이다.

국정원과 검찰을 정권의 도구로 활용하지 않겠다는 문재인 청와대는 실험대에 올라 있다. 과거의 어느 정권도 가보지 않은 길이기 때문이다. 진보 정권인 김대중ㆍ노무현 전 대통령 때도 국정원의 국내정보담당관 폐지는 손대지 못했다. 미행과 사찰이 아니고서는 얻을 수 없는 은밀한 정보의 유혹은 그만큼 강렬하다.

청와대는 아직 낯선 환경에 익숙하지 않은 듯하다. 일부 실무진에선 국정운영이나 주요 정책에 대한 국정원 정보와 분석에 아쉬움을 갖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이 전 대통령 수사와 관련해서도 진행상황을 몰라 답답해했다는 후문이다. 달콤한 관행과의 단절은 그만큼 어려운 것이다. 당장 필요한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다고 손을 벌리다가 과거로 회귀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권력기관 개혁은 순식간에 물거품이 되고 만다.

국정원과 검찰도 달라진 상황에 적응이 쉽지 않은 모양이다. 박정희 정권 시절의 중앙정보부에 뿌리를 둔 IO의 해체는 60여년 만의 변화다. 국정원 권한의 절반 이상을 포기했으니 충격이 작을 리 없다. 기업을 대상으로 합법적 영역인 방산분야의 협조요청을 했는데 “아직도 국정원이 그런 일을 하느냐”며 항의해 당황했다는 직원도 있다.

청와대 직보를 당연시했던 검찰 일각에서도 “이래도 괜찮은 건가”라는 생각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청와대가 언론을 통해 주요 수사 상황을 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청와대와 검찰 수뇌부와의 단절은 이들에게 생경한 모습이다.

다행인 것은 청와대와 국정원, 검찰 수뇌부의 개혁 의지가 확고하다는 점이다. 참여정부 시절부터 국정원, 검찰과 담을 쌓고 지내던 문 대통령은 물론 서훈 국정원장도 그런 뜻을 알기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문 총장도 참모들에게 “나 몰래 청와대에 수사 상황을 보고하면 기밀누설죄로 사법 처리하겠다”고 경고했다고 한다. 무엇보다 달라진 것은 국정원 직원과 검사들의 달라진 인식이다. ‘적폐 청산’ 과정에서 현직들도 예외가 되지 않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 것이다. 이제 조직이나 상관의 부당한 지시를 그대로 받아들일 정도로 어수룩한 사람은 없다.

하지만 공생구조와 기득권 분점으로 얽힌 권력기관의 본질은 쉽게 변하지 않는 법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이 결여된 지도자가 나타나면 권력기관은 언제든 국민 위에 군림하려 들 것이다. 국정원과 검찰의 제도적 개혁은 그래서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권력기관의 민주적 개혁의 주체이자 동력은 시민들의 깨인 의식이다. 끊임없이 감시하고 관심을 갖는 것은 오직 시민들 몫이다.

수석논설위원 cjle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