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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석학 칼럼] 성 노동 합법화 사례를 보니

입력
2016.11.20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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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노동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직업’이라고 흔히들 말한다. ‘성 노동’이라는 표현 대신 ‘매춘’을 쓰긴 하지만 말이다. 비하하는 뉘앙스가 덜한 표현으로 바뀐 것은 성 노동자에 대한 태도가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사면위원회가 지난 5월 각국 정부에 성인들의 동의 아래 이뤄지는 성매매를 범죄로 규정한 법률을 폐지하라고 촉구하기로 한 결정에는 이 같은 변화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국제사면위원회의 촉구는 거센 역풍을 맞았다. 반대하는 이들 중 일부는 성 산업 전체와 일부 국가에서 이뤄지고 있는 비극적인 인신매매를 혼동하고 있다. 성 산업 합법화 지지자 중에서 강요ㆍ폭력ㆍ사기 또는 미성년 성 노동 합법화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인신매매 근절 운동을 하는 몇몇 단체들은 성 노동이 불법일 경우 성 노동자가 노예 취급을 당하거나 폭행 또는 사기를 당할 때 당국에 호소하는 데 있어서 위험부담이 훨씬 커진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런 이유로 국제여성인신매매반대연합은 성 노동을 범죄로 보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국제사면위원회의에 박수를 보냈다.

일부 페미니스트 단체가 국제사면위원회의 결정에 반대하기도 했다. 국제사면위원회가 ‘포주와 성매매 남성의 권리’를 보호하려 든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 다. 그들은 ‘성매매 수요를 근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어떻게 근절시킬 수 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유성생식을 하는 종에게 성욕은 매우 분명한 이유로 가장 강렬하고 널리 퍼져 있는 욕망이다. 인간도 이런 관점에서 예외는 아니다. 모든 현대 사회에서 인간은 자신이 욕망하는 것을 돈이나 다른 값비싼 재화로밖에 얻을 수 없다면 그렇게 해서라도 가지려고 한다. 많은 사람이 다양한 이유로 자신이 원하는 만큼 자유롭게 섹스를 하지 못하고 있거나, 충분하지 않거나, 자신들이 원하는 섹스를 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태가 바뀌지 않으면 성매매 수요는 계속 이어질 것이다. 수요가 완전히 사라질 수 있도록 바꾸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성매매 수요가 계속 이어진다면 공급은 어떻게 할 것인가. 성 노동을 범죄로 규정하지 말자는 제안에 대한 또 다른 반응은 성매매가 일어나게 만드는 환경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는 생계유지 수단이 없는 사람만이 돈을 벌기 위해 성 노동에 종사할 것이라는 가정에서 나오는 주장이다.

이러한 가정은 근거 없는 통념이다. 값비싼 마약을 하느라 돈이 필요한 성 노동자는 차치하더라도 성 노동이자 중 일부는 공장이나 패스트푸드 식당에서 일자리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공장이나 식당 주방에서 하루에 여덟 시간씩 단조롭고 반복적인 일을 하기보다 성산업이 내거는 고소득과 짧은 근무시간을 선호하는 이들도 있다. 많은 사람이 이런 선택을 하진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런 선택을 하는 사람들을 범죄자로 만들어야 할까.

성매매에 대한 고정관념과 달리 합법적인 사창가에서 일하는 것이 건강에 특별히 위험하거나 해롭지는 않다. 일부 성 노동자는 자신의 직업이 다른 직업에 비해 숙련된 기술과 심지어는 인간미가 더 필요한 일이라고 여긴다. 성매매가 아니라면 섹스를 할 수 없는 환경에 처한 사람들에게 육체적으로 즐거움을 줄 뿐만 아니라 정서적인 도움까지 줄 수 있는 자신들의 능력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기도 한다.

성 노동이 금세 사라지지 않는다면, 성 노동자의 인권은 물론 건강과 안전을 염려하는 사람은 성 노동을 완전히 합법적인 산업으로 만들려는 움직임을 지지해야 한다. 이는 대부분의 성 노동자가 원하는 것이기도 하다. 성 노동을 범죄로 규정하면 안 된다는 주장은 지난 5월 국제사면위원회의 공식 방침이 됐다. 호주에서 가장 인구가 가장 많은 주인 뉴사우스웨일스의 보수적 지방 정부는 최근 성 산업을 합법화하면서 더는 규제하지 않기로 했다. 호주의 성 노동자협회인 스칼렛연합의 대표 줄스 킴은 성 노동 비범죄화가 성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두드러진 성과를 낳았다면서 안도하며 이 소식을 반겼다.

미국 성 노동자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 활동하는 사회단체인 ‘성 노동이자 봉사 프로젝트’는 성 노동 비범죄화가 성 노동자를 더욱 건강하게 할 것이고 보험과 노동위생ㆍ안전 프로그램, 공정무역 규정 등 노동시장의 표준 혜택을 적용받을 수 있도록 할 것이라는 데 동의했다. 대부분의 호주 사람들은 지금 성 노동을 합법화하거나 비범죄화한 주에서 살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최근 몇 년간 정부가 성인들이 동의ㅀ 하는 행위를 범죄로 규정하지 말아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점과 궤를 같이 한다. 동성애 금지법은 종교 국가가 아닌 대부분의 나라에서 폐지됐다. 의사 조력 사망은 점점 더 많은 나라에서 합법이 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마리화나 합법화가 광범위한 지지를 받고 있다.

구속적인 법률을 폐지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 확대를 포함해 실질적인 이득이 있다. 미국 콜로라도주가 마리화나 산업을 합법화하기로 한 가장 큰 동기는 세금을 거두기 위해서였다. 뉴사우스웨일스가 성 산업을 합법화하도록 자극을 준 것은 경찰의 부패였다. 경찰 내부의 부패를 조사해 보니 경찰이 받는 뇌물의 주 원천이 성 산업이었던 것이다. 합법화는 단 한 번의 일격으로 이를 끝장냈다.

성 산업을 범죄로 규정하는 나라는 국제사면위원회처럼 그런 법률이 일으킬 수 있는 해악을 고려해봐야 한다. 종교에 기반을 두든 이상적인 페미니즘에 기반을 두든 도덕주의적 편견은 한쪽에 제쳐놓고 성 노동자와 전체 대중에게 최대의 이익을 줄 수 있는 것을 해야 한다.

피터 싱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ㆍ윤리학

번역=고경석기자 ⓒProject Syndic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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