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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원폭 71년만의 미 대통령 방문 현장, 직접 가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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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원폭 71년만의 미 대통령 방문 현장, 직접 가보니

입력
2016.05.27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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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둘러본 오바마 동선, 히로시마 평화공원

히로시마평화공언내 원폭어린이상 앞. 일본 고등학생들이 묵념을 하고 있다. 히로시마=박석원특파원
히로시마평화공언내 원폭어린이상 앞. 일본 고등학생들이 묵념을 하고 있다. 히로시마=박석원특파원

원폭 투하 71년 만에 처음으로 미국 대통령이 방문하는 일본 히로시마(廣島)는 비장하거나 미묘하게 복잡한 감정이 얽혀있었다. 원폭투하 지점에 조성된 히로시마평화기념공원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방문을 하루 앞둔 26일 삼엄한 경비태세로 긴장감마저 감돌았다.

오바마 대통령이 먼저 둘러보게 될 원폭자료관은 1945년 8월6일 피폭 당시의 시간이 그대로 멈춘 듯했다. 피하출혈로 온 몸에 반점이 생긴 채 겁먹은 얼굴로 병상에 누워 있거나 살갗이 벗겨진 채 유령처럼 헤매고 있는 아이들 모습을 되살린 밀랍인형들은 제대로 쳐다보기조차 힘들 정도로 처참했다. 핵공격을 받은 도시의 잔해와 참상을 확인하기 위해 왔다는 폴란드인 마치 페이버(53)씨는 “오바마 대통령의 방문은 어쨌든 좋은 일 아니냐”고 무표정하게 대답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헌화할 위령비 앞에는 ‘편안히 잠드십시오, 다시는 잘못을 반복하지 않도록’이라는 글귀가 적혀있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헌화에 이어 수 분간 평화 메시지를 담은 연설을 할 예정이다. NHK 등에 따르면 전쟁의 참상을 상기하고 2009년 프라하에서 천명한 ‘핵무기 없는 세계’를 재차 호소하는 내용이 될 것이라고 한다. 오바마 대통령을 안내하는 아베 신조(安倍晉三) 일본 총리도 이 자리에서 짧은 연설을 할 예정인데 적국에서 동맹으로 바뀐 미일관계의 극적 변화를 강조하는 내용이 될 것으로 알려졌다. 오바마 대통령은 일본인 피폭자와 일본군 포로 출신 미국인도 만나 잠시 대화를 나눌 예정이다.

미군의 원폭 투하로 1945년 말까지 히로시마 주민 35만여 명 가운데 14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가운데 조선인 약 2만명도 포함돼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헌화할 위령비에서 3분 정도만 걸으면 그들을 추모하는 한국인희생자 위령비를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인희생자들 앞에 머리를 숙일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관람객들에게 피폭 체험을 증언하고 있던 재일동포 박남주(84) 할머니는 “수만 명의 한국인 희생자에게도 오바마 대통령이 한 말씀 해달라”고 애원했다. 또 다른 한국인 피폭자 이종근씨(88)는 “오바마가 일본에 사죄해선 안 된다”면서 “오바마가 한국인위령비도 찾아서 헌화해야 처음으로 원통함이 풀린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찾을 원폭돔은 철골구조만 앙상한 흉물이었다. 고치(高知)현 가미분(上分)초등학교 수학여행단을 인솔해 왔다는 이모토 도시타카(井元俊孝ㆍ56) 교장은 원폭돔 앞에서 “미국 여론은 빨리 전쟁을 끝내기 위해 불가피했다고 생각하지만 히로시마현 주민은 전쟁에 책임이 없지 않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일본의 전쟁책임에 대한 질문에는 말꼬리를 흐리며 얼버무리고 말았다.

종이학을 받쳐든 소년을 형상화한 원폭어린이상 앞에는 단체 추모인파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대표학생이 “평화롭게 살고 있는데 감사하고, 목숨을 소중히 해 친구들과 함께 살아가겠다”는 기도문을 낭독하는 동안 외국인관광객들까지 눈가가 촉촉해질 만큼 분위기가 숙연했다. 히로시마=박석원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한국인위령비 앞에서 남몰래 주변청소를 하고 있는 일본인이 눈에 띄었다. 도시미쓰 마쓰오(利光松夫·68)씨다. 일본인으로써 죄송한 마음에 개인적으로 청소활동을 해왔다는 그는 “전쟁을 일으킨 쪽은 반드시 진다는 교훈을 일본이 얻어야 한다”며 “일본 국민과 아베 총리는 자신들이 일으킨 전쟁은 이야기하지 않고 미국의 원폭 책임만 이야기한다”고 직설적으로 말했다. 히로시마=박석원특파원
한국인위령비 앞에서 남몰래 주변청소를 하고 있는 일본인이 눈에 띄었다. 도시미쓰 마쓰오(利光松夫·68)씨다. 일본인으로써 죄송한 마음에 개인적으로 청소활동을 해왔다는 그는 “전쟁을 일으킨 쪽은 반드시 진다는 교훈을 일본이 얻어야 한다”며 “일본 국민과 아베 총리는 자신들이 일으킨 전쟁은 이야기하지 않고 미국의 원폭 책임만 이야기한다”고 직설적으로 말했다. 히로시마=박석원특파원
원폭피해자료관내부엔 참혹한 당시의 유품들이 널려있다. 히로시마=박석원특파원
원폭피해자료관내부엔 참혹한 당시의 유품들이 널려있다. 히로시마=박석원특파원
원폭돔. 히로시마=박석원특파원
원폭돔. 히로시마=박석원특파원
오바마 대통령이 27일 헌화하게 될 히로시마평화공원내 위령비 주변에 단체 관람객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히로시마=박석원특파원
오바마 대통령이 27일 헌화하게 될 히로시마평화공원내 위령비 주변에 단체 관람객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히로시마=박석원특파원
히로시마평화기념공원내 위령비에 헌화하기 위해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온 미해병대 퇴역군인 조 맥도얄씨가 기자에게 오바마 대통령의 방일을 지지한다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히로시마=박석원특파원
히로시마평화기념공원내 위령비에 헌화하기 위해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온 미해병대 퇴역군인 조 맥도얄씨가 기자에게 오바마 대통령의 방일을 지지한다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히로시마=박석원특파원
히로시마평화기념공원 위령비 주변에 일본 초등학생들이 몰려 있다. 히로시마=박석원특파원
히로시마평화기념공원 위령비 주변에 일본 초등학생들이 몰려 있다. 히로시마=박석원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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