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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톺아보기] 수를 표기하는 방식

입력
2017.11.23 13:46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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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도시보증공사는 9월 말 기준 전국 민간아파트 평균 분양가를 조사한 결과 ㎡당 307만원으로 전월보다 0.53% 상승했다고 밝혔다.” 한 신문의 기사문 일부다. 그런데 이 기사의 근거가 된 주택도시보증공사의 분양가격 표에는 분양가가 ‘3,070’이라 표기되어 있다. 가격표에서 금액 단위를 ‘천 원’으로 했기 때문이다. 공공기관에서 나온 자료를 보면 이처럼 ‘천’을 기본 단위로 수를 표기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관행에 따라 큰 수일 경우에는 ‘백만, 십억’ 단위로 표기하기도 한다. 이는 서구 사회에서 수를 표기하는 관습과 일치한다.

그런데 한글 맞춤법 제 44항을 보면 “수를 적을 적 때에는 ‘만(萬)’ 단위로 띄어 쓴다”라고 규정하면서 ‘십이억 삼천사백오십육만 칠천팔백구십팔’과 ‘12억 3456만 7898’을 예로 제시하고 있다. 신문에서 ‘3,070’를 자료의 단위에 따라 ‘3백만 70천 원’이라 하지 않고 굳이 ‘307만 원’으로 바꿔 쓴 것은 수를 읽는 우리의 관습과 규범을 의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공공기관에서는 왜 수를 읽는 관습과 규범을 생각하지 않고 서구식 단위를 기준으로 수를 표기하는 것일까.

공공기관에서 수를 표기할 때 서구식 표기 단위를 사용한 것은 정부 수립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이러한 표기 방식은 시간이 지나면서 더 확대되었다. 수 표기의 국제적 통용성을 우선적으로 고려한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공공기관이라면 ‘7만 원’이 아닌 ‘70천 원’을, ‘7천만 원’이 아닌 ‘70백만 원’을 보고 읽어야 하는 시민의 곤혹스러움을 생각해야 한다. 시민의 생활과 밀접한 사항이라면 사회적 관습과 시민의 눈높이를 먼저 생각하고 이에 대한 표기 방식을 정해야 한다는 말이다.

최경봉 원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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