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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 분투기] 맞춤형이 아니라 편 가르기 보육

입력
2016.06.02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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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일하고 있는 시민단체에 들어오기 전 몇 달 동안 나는 오랫동안 근무하던 법률사무소를 퇴사하고 아이를 돌보며 미래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었다. 일자리도 알아보고,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서 상담도 하다가, 결국 시민단체에 지원하고 채용절차를 거쳐 입사하게 되었다. 또 둘째 출산 후 육아휴직을 쓰는 동안에는 두 아이를 돌보는 동시에 사무실에 출근하지는 않았지만 업무와 관련된 일들도 처리하고 복귀를 준비했고, 쓰던 책을 마무리하고 시간강사로 매주 학교에 강의하러 나가기도 했다.

그런데 정부가 이번에 발표한 맞춤형 보육 시행계획에 따르면, 내가 퇴사 후 재입사를 위해서 준비하고 채용절차를 거치는 기간이나 육아휴직을 하며 복귀를 준비하던 기간은 아이를 어린이집에 종일 맡길 수 없게 된다. 정부는 0~2세 보육을 종일반과 맞춤형으로 나누고 부모취업, 돌봄필요가구 등 사유를 입증해야만 어린이집 종일반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맞춤형 보육을 7월부터 시행하겠다고 발표하고 신청을 받고 있다. 그러나 모든 부모를 종일반과 맞춤형이라는 두 가지 기준에 맞추려다 보니, 기준도 복잡하고 부모들도 보육현장도 혼란스럽다. 맞춤형이라는 말과는 달리 실은 끼워 맞추기식 이분법 보육정책이 되는 것이 아닌지 걱정도 된다.

나의 경험을 돌이켜보아도, 과연 아이를 어린이집에 충분히 맡길 수 없었다면, 내가 구직활동을 하고 내가 원하는 새로운 분야의 일을 시작할 수 있었을까, 육아휴직을 하면서도 복귀를 위한 준비를 잘할 수 있었을까 의문이다. 그리고 아이들을 키우며 만나게 되는 주변의 엄마들을 보아도 전업맘, 취업맘이라는 이분법에 끼워 맞추기에는 사정이 다들 복잡하다. 일하는 부모들도 매일 야근에 때론 주말이나 야간에도 일해야 하는 엄청 바쁜 사람들부터 비교적 출퇴근이 자유로운 일자리, 시간제 근무나 프리랜서까지 일하는 형태도 다양하다. 당장 소속된 직장이 없어도 가족을 돌보거나 새로운 일자리를 준비하기 위한 자격증 준비부터 구직활동, 때로는 가족이나 친지의 사업을 돕기까지 매우 바쁘게 지낸다.

정부는 맞춤형 보육의 도입 이유로 어린이집에서 이용시간이 짧은 아이를 더 선호해 취업여성 가구의 아이가 늦게까지 남아 있을 경우 부모의 마음이 불편할 수 있다는 걸 이유로 들고 있다. 그러나 맞춤형 보육을 실시해 일부 아이들을 일찍 집에 보낸다고 하여 마음의 불편함이 사라질지 의문이다. 부모가 아이들을 장시간 보육시설에 맡겨야만 하는 노동의 현실을 개선하지 않고 보육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것이 바람직한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전업맘들이 아이를 맡기는 바람에 취업맘들이 피해를 입고 있는 것처럼 묘사하고 있는 것도 현실과는 다르다. 일하는 엄마로 지내면서 종종 같은 어린이집에 다니는 전업엄마들이 우리 아이들도 같이 돌봐주는 것이 그리 고마울 수가 없었고, 그중에 다시 재취업하게 된 엄마에게는 일하는 엄마의 노하우도 전수해 줄 수 있었다. 전업엄마들도 알고 보면 육아휴직 중이거나 재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경우도 있고 언제든 다시 일하거나 새로운 일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 엄마들도 많다. 어린이집에서 만나는 엄마들은 아이들을 함께 키우며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동료이자 육아 고민을 함께 나누는 지원군이다. 우리는 일하는 엄마, 일하지 않는 엄마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 일하는 장소가 가정이든 직장이든 모두 노동을 하는 사람들이다. 전업맘과 취업맘을 양분하고 편 가르기 하는 것은 오히려 정부가 아닌가. 노동시간 단축, 육아휴직 강제화와 같은 일가정양립, 성평등을 위한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정책을 제대로 추진하지 않고 차등적인 복지로 편 가르기를 하는 방향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 맞춤형 보육을 앞두고 일하는 엄마의 고민은 더 깊어진다.

김남희 참여연대 복지조세팀장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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