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프랜차이즈 거리 제한 자율화, 영세 가맹점주들 족쇄로

알림

프랜차이즈 거리 제한 자율화, 영세 가맹점주들 족쇄로

입력
2016.04.21 04:40
0 0

공정위 “기업 활동에 위축” 이유

본사ㆍ사업자 간 협의에 맡겨

가맹본부들 기준 주먹구구

“인근에 못 내게” 약속 뒤집어

횡포ㆍ꼼수에 법정 분쟁 줄이어

2014년 10월부터 서울 노원구에서 프랜차이즈 브랜드인 A 화장품 매장을 운영해 온 박모(45ㆍ여)씨는 요즘 월 수익이 70%나 줄어 골머리를 앓고 있다. 박씨가 사업을 시작한 지 5개월 만에 걸어서 5분 거리에 같은 브랜드 매장이 생기면서 매출은 급감했다. 그는 본사에 항의했지만 ‘계약서대로 영업장 30m 밖에 위치해 문제가 없다’는 답변만 돌아 왔다. 사업을 접으려 해도 계약 기간이 아직 3년이나 남아 위약금 5,000만원을 물어줘야 하는 진퇴양난 상황이다. 박씨는 20일 “계약 당시 본사가 제시한 가맹점 간 최소 거리가 너무 가깝다고 느꼈으나 같은 장소에서 영업을 하면 서로 장사가 안될 텐데 설마 누가 개업을 할까 싶어 넘어갔다”며 “대기업의 꼼수에 완전히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규제 개혁 일환으로 폐지한 프랜차이즈 가맹점 간 영업지역 설정 기준이 계약당사자 간 합의로 바뀌면서 오히려 가맹점주들을 옭아매고 있다는 비판이 비등하다. 대형 프랜차이즈의 들쭉날쭉한 거리 기준에 영세 사업자들은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12년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프랜차이즈 유통 질서를 바로 잡기 위해 ‘모범거래 기준’을 만들어 편의점, 치킨집 등 가맹점 사이의 출점 거리를 제한했다. 그러나 공정위는 돌연 2년 뒤인 2014년 5월 ‘기업활동이 위축된다’며 출점 기준을 없앴다. 대신 ‘가맹본부가 계약 체결 시 영업지역을 설정해 계약서에 기재한다’는 조항이 신설됐다. 거리 제한을 프랜차이즈 본사와 사업자 간 자율 협의에 맡긴 것이다. 공정위는 당시 “영업지역을 계약서에 명시하면 보다 엄격한 규제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가맹사업법 개정 2년이 지난 지금 가맹본부들이 정한 영업 기준은 천차만별이다. A사와 비슷한 품목을 취급하는 화장품 브랜드 B사의 영업지역은 A사의 10배인 300m다. 다른 업종도 상황은 비슷하다. C어학원은 영업지역을 거리가 아닌 500세대로 명문화했다. 어떤 어학원 브랜드는 영업지역을 1,000세대로 규정하거나 행정구역상 1개 동(洞)을 지역 기준으로 삼는 프랜차이즈도 있다. 서울 동대문구에서 C어학원을 운영하는 정모(39)씨는 “다른 학원보다 가맹점이 많아 영업지역을 넓혀달라고 제안했지만 본사는‘가까운 곳에 개원하지 않도록 신경쓰겠다’는 약속만 하고 세대 기준은 바꾸지 않았다”고 말했다. 특히 가맹본사와 가맹점주 간 계약에서 ‘을’ 입장인 가입자들이 목소리를 높이긴 사실상 어려운 상황이라 어려움은 가중되고 있다.

이런 주먹구구식 기준 탓에 법적 다툼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4월 서울 강서구의 한 마트 안에 유명 헬스트레이너의 이름을 딴 헬스장을 연 김모(42ㆍ여)씨는 최근 프랜차이즈 대표 홍모(45)씨를 사기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계약 당시 거리 기준이 없어 ‘영업지역 인근에 다른 가맹점을 신설할 경우 기존 가맹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모호한 조항에 동의한 게 화근이었다. 가맹본부는 김씨가 개업한 지 불과 한 달 후 직선거리로 700m 떨어진 다른 마트에 같은 헬스장을 오픈했다. “다른 점포 개점에 합의한 적이 없다”는 김씨와 “개업 사실을 알렸다”고 주장하는 본사는 6개월 째 분쟁 중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공정위는 계약 위반이 아닌 이상 업체들의 자율 기준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만 고수하고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영업지역이 좁더라도 계약서를 쓸 때 해당 내용을 사업자가 인지했다면 제재할 방법은 없다”며 “기준은 가맹본사의 경영적 판단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종열 길 가맹거래사무소 대표는 “가맹사업자들은 본사가 제시하는 계약 조건을 거부하기 어려운 ‘을’의 위치에 있는 만큼 정부가 최소한의 권고 기준이라도 마련해 피해를 미리 방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신혜정기자 aret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