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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푸들’ 경찰청장

입력
2016.06.3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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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신임 검찰총장에 김수남 대검차장이 내정되자 강신명 경찰청장의 조기 퇴출설이 돌았다. 대구 청구고 4년 선후배 사이라는 게 근거였다. 위계 질서가 강하고 결집력이 끈끈한 고교 동창을 사정기관의 양대 축인 검ㆍ경의 수장에 앉히지는 않을 거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청와대는 이런 관측을 보란 듯이 깨버렸다. 같은 시기에 같은 고교 출신 인사 중용을 피해온 역대 정부의 인사 원칙이 단박에 무너졌다.

▦ 편중 논란에도 불구하고 강 청장이 자리를 지킨 데는 박근혜 대통령의 신임이 절대적으로 작용했다. 박근혜 정부 초대 청와대 사회안전비서관을 맡으면서 ‘4대악’ 척결을 입안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그 후 서울경찰청장으로 재직하면서 박 대통령이 강조한 불법 집회ㆍ시위 엄단 기조를 충실히 수행해 일찌감치 차기 경찰청장으로 거론됐다. 경찰청장 취임 일성은 불법 집회 무관용 원칙이었다. 집회 도중 경찰의 물대포에 맞고 쓰러져 7개월 넘게 사경을 헤매고 있는 농민 백남기씨가 대표적 희생자다. 지난해 민중총궐기 대회 때 빚어진 폭력사태에는 30년 간 사문화했던 ‘소요죄’를 적용하려다 망신을 샀다.

▦ 강 청장의 과잉충성은 경찰 내부에서도 눈총을 산다. 황운하 경찰대 교수부장은 최근 “강 청장이 정권 눈치를 보느라 제대로 한 일이 없다”고 쓴 소리를 날렸다. 강 청장의 경찰대 1년 선배인 그는 “경찰대 출신 경찰총수가 나오면 뭔가 다를 것이라는 기대를 가졌던 경찰과 시민에게 실망과 좌절을 안겨줬다”고 질타했다. ‘착하고 말 잘 듣는 푸들형’이라는 묘사도 덧붙였다. 동아일보가 실시한 현장 경찰관 100명 인터뷰에서는 “강 청장이 잘한 일은 8월 말로 예정된 임기를 무사히 마친 것뿐”이라는 답이 가장 많았다.

▦ 경찰 수장이 대통령만 쳐다보는 사이 경찰의 기강은 엉망이다. 학교전담경찰관들의 성추문 사건에서 일선 경찰서와 부산경찰청, 심지어 경찰청까지 은폐ㆍ축소에 가담했다. 경찰 발표대로라면 강 청장은 언론 보도를 보고서야 알았으니 ‘바지저고리’를 자처한 꼴이다. 그가 경찰 신뢰 회복과 수사력 제고, 처우 개선 등 경찰 발전을 위해 한 일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다. 강 청장은 자신의 정권 눈치보기가 “저럴 거면 경찰대가 왜 필요하냐”는 비난을 낳아 애꿎게 모교를 욕보이고 있다는 걸 알기나 할까.

이충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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