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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기의 원근법] 청춘은 위로받아야 한다

입력
2015.02.16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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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가 시작된다. 가족, 친지가 모처럼 한 자리에 모여 이야기 꽃을 피울 것이다. 나라 걱정부터 어른들의 은퇴와 건강, 아이들의 학업과 취업, 결혼까지가 주요 화제가 된다. 이 가운데 금기 사항으로 꼽히는 게 바로 취업과 결혼 문제다. 요즘처럼 취직도, 결혼도 어려운 상황에선 이를 언급하는 것 자체가 그들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다.

돌아보면, 예전엔 이렇지 않았다. 산업화 시대의 설 명절에는 대학 졸업생이 있는 가족의 경우 취업이 큰 화제가 됐다. 대다수 졸업생들의 취업이 보장된 그 시절, 설 명절은 축하 인사를 전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부모들 역시 ‘그 동안 애써 뒷바라지 했으니 앞으로 가족을 이끌어갈 것’이라는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고교 졸업자에게도 취업의 문이 크게 열려 있던 시절이었다.

민주화 시대의 설 명절 풍경은 다소 변화가 있었다. 세대에 따라 이념적 견해가 맞선 그 시절에는 정치 얘기를 꺼내는 게 금기 사항이었다. 어쩌다 정치로 화제가 옮겨 가는 순간, 가족 내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의 날카로운 논쟁으로 비화되기 일쑤였다. 하지만 그때에도 취업 사정은 나쁘지 않았다. 정치적 사안에선 다소 얼굴을 붉혔지만, 졸업생들의 취업 축하와 앞으로의 기대가 명절 분위기를 밝게 했다.

명절 분위기가 조심스러워진 것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였다. 친지를 만나면 자녀가 취직 했냐고 물어보기가 망설여졌다. 취직뿐만 아니라 4학년을 마쳤는데도 불구하고 졸업을 축하한다는 말을 건네기도 어려워졌다. 대학을 5~6년 다니는 게 일상화됐기 때문이다. ‘삼포(연애·결혼·출산 포기) 세대’라는 말이 유행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최근에는 ‘사포(삼포 + 취업 준비로 인한 인간관계 포기) 세대’, ‘오포(사포 + 내 집 마련 포기) 세대’라는 말까지도 유행하고 있으니 청춘들의 삶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는 청년실업 때문이다. 청년실업의 원인은 세계화의 충격과 정보사회의 진전에 따른 ‘고용 없는 성장’ 같은 세계사의 보편적 조건에서부터, 과잉 고학력화, 구인-구직자 간의 상이한 눈높이로 인한 ‘잡 미스매치’(job mismatch) 같은 한국사회의 특수한 조건에 이르기까지 안팎의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결합돼 있다.

주목할 것은 청년세대가 갖는 이런 고통에 기성세대의 책임이 적지 않다는 데 있다. 세계화 시대에 좋은 일자리를 만들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다른 나라 사례들에서 볼 수 있듯 이 역시 대응하기 나름이다. 정부와 대기업은 물론 노동조합 등 사회의 주요 주체들이 더 많은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 사회적 대 타협을 맺을 수 있는 길은 열려 있다. 과연 우리 사회 기성세대들은 이 대 타협이 어렵긴 하지만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할 수 있을까. 어떤 이들은 중소기업에도 젊은이들이 눈을 돌려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상당수 중소기업은 미래 전망이 불확실하고 일부 중소기업은 갑을관계의 횡포가 두드러지는데, 자기 아이들에게 선뜻 권할 부모가 얼마나 되겠는가.

‘대안이 없다’는 말이 한때 유행한 적이 있었다. 시장만능주의가 절정에 달했을 때 신 자유주의 이외의 다른 대안이 없다는 의미였다. 청년실업에 대해 혹시 우리 기성세대는 대안이 없다며 내심 포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적잖이 우려된다. 대안은 있다. 전공을 포함한 대학의 구조조정, 체계적인 직업훈련의 도입과 청년고용 의무할당을 포함한 법·제도의 정비, 기업의 일자리 창출을 위한 사회적 대 타협 등이 결코 실현 불가능한 프로그램만은 아니다. 문제는 우리 기성세대의 관심과 의지, 그리고 최선을 다하는 노력이다.

긴 설 연휴가 끝나면 졸업 시즌이 시작된다. 어떤 제자는 홀가분하게 대학을 떠나지만, 어떤 제자는 4년이 훌쩍 지났는데도 대학에 계속 머무르게 된다. 친구의 졸업을 축하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캠퍼스를 떠나지 못하는 제자들을 지켜보면 더없이 안타깝고 또 미안하다. 스스로 빛나야 할 청춘이 이렇게 상처를 입어선 안 된다. 청춘은 위로 받아야 한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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