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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령의 길 위의 이야기] 아기옷

입력
2017.01.13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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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방에는 문 두 짝 짜리 붙박이장이 있고 내가 산 아기 옷장이 또 있고 서랍장도 있다. 고작 16개월 아기의 옷가지인데, 이를 모두 채우고도 모자랄 지경이다. 엄마가 옷장을 열어보더니 소리를 빽 질렀다. “가시나가 돌았나! 한 번씩만 입혀도 다 못 입히고 애 학교 가겠네!” 나는 “다 물려받은 건데” 웅얼웅얼 대꾸했다. 진짜다. 내가 직접 산 건 아기의 내복 정도지 나머지는 친구들에게서 몽땅 물려받았다. 나 역시 작아진 아기 옷들은 차곡차곡 챙겨 친구들에게 보내는 중이다. 딱 한 벌만 빼놓았다. 배냇저고리. 부른 배를 안고 뒤뚱뒤뚱 백화점엘 들러 샀던 거다. 손싸개와 발싸개도 집었다. 물론 태어나자마자 입히지는 못했다. 아기는 미즈앤맘 조리원 배냇저고리를 입었고 퇴원날이 되어서야 내가 산 배냇저고리를 입을 수 있었다. 손위시누이가 나에게 말했다.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에 나한테 남겨준 게 있어. 나 아기 때 입었던 치마. 정말 예쁘거든. 그거 내가 줄게.” 무심한 우리 엄마는 그런 것 하나도 남겨놓지 않고 다 버렸다. 일곱 살 때 입었던 빨간 재킷과 멜빵 치마, 내가 참 좋아했던 건데 나중에 내 딸이 다시 입을 수 있다면 얼마나 짠할까. 초등학교 3학년 때 입었던 땡땡이무늬 핑크 원피스도, 5학년 때 입었던 보라색 벨벳 원피스도 말이다. 그 생각이 나서 친구에게 주려던 아기 옷들을 다시 살핀다. 살구색 원피스와 검정색 원피스를 따로 빼둔다. 엄마를 빼닮은 내가 끝까지 간직할 수 있을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챙겨두어야지. 내 딸이 이 다음에 자라 결혼을 한다면 말리고 싶기는 하지만, 그렇게 말을 잘 듣는 아이로 자랄 것 같지는 않고.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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