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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영원한 밤... 미스터리 인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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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영원한 밤... 미스터리 인생들

입력
2017.06.30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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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명이 보낸 기이한 밤들이 있다. 각자의 밤, 아니 세계를 관통하는 건 화가 기시다 미치로의 동판화 뿐이다. 게티이미지뱅크
다섯 명이 보낸 기이한 밤들이 있다. 각자의 밤, 아니 세계를 관통하는 건 화가 기시다 미치로의 동판화 뿐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야행

모리미 도미히코 지음ㆍ김해용 옮김

예담 발행ㆍ275쪽ㆍ1만3,000원

“지구는 파랗다.”

부정할 수 없는 이 명제는 인류최초의 우주 비행사, 유리 가가린의 것이다. 그는 1961년 4월 12일 우주선 보스토크 1호를 타고 지상 301㎞ 높이에서 지상관제소에 이렇게 말한 후, 1시간 48분 동안 지구 궤도를 한 바퀴 돈 뒤 착륙했다. 하지만 우주로 나간 첫 번째 인간이 정말 충격을 받은 것은 그 배경에 있는 우주의 어둠이었다. “그 어둠이 얼마나 어두운지, 얼마나 공허한지 직접 눈으로 보지 않으면 절대 알 수가 없다.” 가가린이 말한 이 끝 모를 공허를 ‘문학적으로’ 변주하면 이런 명제가 도출될 것이다. “세계는 언제나 밤이에요.”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밤은 짧아…’)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일본 작가 도리미 도미히코의 신작 ‘야행’은 5명의 밤을 통해 두 개의 세계를 그리는 이야기다. 각각 따로 떼 읽어도 완결되는 연작들을 차례로 읽다 7부 능선을 넘어가면,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1Q84’ 속 ‘두 개의 달’을 연상시키는 반전을 맛볼 수 있는 독특한 구성의 연작 소설, 액자형 소설이다.

10년 전 영어회화 학원 동료 여섯 명은 밤의 불 축제인 ‘구라마 진화제’를 즐기러 교토를 찾지만, 일행 중 하세가와가 홀연히 사라진다. 나머지 다섯 사람은 그녀의 행방불명 후 10년 만에 같은 축제에서 다시 모인다. 조금 일찍 도착한 오하시는 약속 시간을 기다리다가 실종된 하세가와와 꼭 닮은 사람을 발견하고 뒤를 쫓고, 그녀를 따라 한 화랑에 들어가지만 종적을 놓친다. 화랑에서는 기시다 미치오라는 작가의 동판화를 전시 중이다. 이후 동료들과 숙소에서 식사를 하면서, 오하시는 좀 전의 기이한 경험을 이야기한다. 동료들은 하나같이 ‘야행’ 동판화 연작과 관련된 체험담이 있다.

집 나간 아내를 찾아 오노미치로 떠난 나카이, 회사 동료들과 오쿠히다로 여행을 떠난 다케다, 남편과 야간열차 여행길에 나선 후지무라까지 책의 절반을 넘게 차지하는 세 사람의 사연은 시시하기 그지없다. 인내심을 갖고 네 번째 이야기로 접어들면 이 책의 진가가 발휘되기 시작한다.

다섯 명 중 가장 연장자인 다나베는 어느 날 덴류코 행 기차를 타고 그곳에서 한 여고생과 삭발한 중년의 스님을 만난다. “사람의 마음을 읽는다”는 그 스님은, 알고 보니 다나베와 함께 한때 기시다 미치오의 아틀리에에 뻔질나게 드나들었던 사에키란 인물이었다. 사에키를 만나며 다나베의 20대 시절이 펼쳐진다. 일본 각지의 밤과 그 밤 한 가운데에 서 있던 여인의 모습을, 오직 밤에만 동판에 새겨 넣었던 기시다는 사실 일본 어디도 여행한 적이 없다. 밤마다 ‘기시다 살롱’에 모여든 인사들의 여행기를 들었을 뿐. 끝나지 않는 영원한 밤, ‘야행’ 연작 작업을 하며 기시다는 한번뿐인 아침을 새긴 동판화 ‘서광’을 함께 만들었다고 말하지만, 기시다가 죽은 후에도 ‘서광’을 본 이는 없다.

텁텁한 여름 밤 ‘킬링 타임’용으로 읽기에는 초반 몰입감이 상당히 떨어진다. ‘밤은 짧아…’의 재미를 아는 독자라도 인내심을 가져야 정복할 수 있다. 전체 분량의 3분의 1을 반전에 할애하고 있으니 너무 억울해하진 마시길. 마지막 다섯 번째 이야기, 주인공 오하시가 구라마에서 보낸 밤이 이 아라비안 나이트 같은 이야기의 하이라이트다. 알 듯 말 듯 환상적인 이야기를 퍼즐 맞추듯 모으면 ‘밤의 비밀’이 풀린다.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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