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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출판사 첫 책] ‘행복한 열살, 지원이의 영어 동화’(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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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출판사 첫 책] ‘행복한 열살, 지원이의 영어 동화’(2012)

입력
2015.11.2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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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영ㆍ남해의봄날 대표

서울을 떠나 통영에서 출판을 시작한 지 4년이 흘렀다. 그 동안 남해의봄날은 15권의 책을 출간했고, 첫 책이 ‘행복한 열 살, 지원이의 영어동화’였다. 우리 책의 계보에서는 좀 엉뚱하다 싶지만 이 책이 초심을 잃지 않게 우리를 붙들어준 중요한 책이라는 것을 아는 독자들은 많지 않다.

영어 작문 시간에 스무 편이 넘는 연작 동화를 써서 ‘해리 포터’의 나라인 영국 선생님에게 출간 권유까지 받은 열 살 한국 소녀의 영어 동화책이 우리의 첫 책이라는 얘기에 지인들은 대박을 노래했다. 내심 솔깃했던 나는 이 사회에 꼭 필요한 책을 만들겠다는 초심을 잃고, 어느 순간 한국의 조기 영어교육 열풍에 편승하여 헛꿈을 꾸기 시작했고, 영어교육의 노하우를 꼬치꼬치 캐묻는 질문을 가득 담아 지원이의 영국 선생님에게 장문의 인터뷰 메일을 보냈다. 그러나 한참 후에 우리가 받은 답 메일은 이러했다.

“나는 이런 질문에 답을 할 만큼 영국의 영어교육을 대표하는 선생도 아닐뿐더러 지원이가 창의적으로 동화를 쓰게 된 것은 어떤 노하우나 스킬 때문이 아닙니다. 그저 그 아이가 자신의 재능을 깨닫고 잘 쓸 수 있도록 독려해준 것 외에 제가 한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 메일을 받자마자 나는 새빨간 홍당무가 되었다. 부끄러움이 온 몸 구석구석을 파고들었다. 그리고 동굴 속에서 며칠을 보낸 후, 이 아이의 소중한 이야기를 어떻게 담아낼까 다시 원점에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얼마나 지났을까, 불현듯 지원이와 영국에서 나눴던 대화가 생각났다.

“지원아, 넌 어떻게 이렇게 재미난 이야기들을 매번 쓸 수가 있었니?”

“그냥 엄마랑 아빠랑, 그리고 친구들이랑 행복했던 때를 떠올리면 글이 써져요. 너무 재밌고, 즐거운 이야기가 많거든요.”

“!”

아, 이거로구나. 이 아이의 창의적인 영감은 행복한 일상이 텃밭이로구나. 엄청난 돈을 들여서 사교육을 시키지 않아도, 아이가 즐겁게 순간순간을 보낸다면 그 아이의 생각은 자유롭게 그 행복을 노래하는구나. 그 순간 지원이의 영어동화는 입시 위주, 과열 경쟁사회에서 유년시절의 행복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깨닫게 하는, 평범하지만 소중한 가치를 담는 책으로 급선회했다. ‘행복한 열 살, 지원이의 영어동화’라는 제목도 그렇게 정해졌다. 물론 판매는? 신통치 않았다. 그러나 남해의봄날이 전할 이야기들의 포문을 여는 첫 책의 역할은 훌륭히 감당했다. 이후 한국출판문화상 편집 대상을 받은 두 번째 책 ‘나는 작은 회사에 다닌다’를 자신 있게 펴낼 수 있는 뿌리가 되었으니 말이다.

지금도 출판이 힘겨워 도망치고 싶을 때마다 우리는 첫 책을 떠올린다. 그리고 이 작은 바닷가 마을에서 접하는 일상의 행복을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소박하게, 지치지 않고 해나갈 수 있는 힘을 얻는다. 그렇게 꾸준히 가다 보면, 언젠가는 우리만의 길을 찾겠지, 라는 행복한 꿈을 꾸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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