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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분리교육, 누구에게도 답이 아니다

입력
2017.07.07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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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고와 자사고 폐지에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교육개혁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지닌 인물이 교육수장으로 세워졌기 때문이다. 국민 여론도 외고와 자사고 폐지에 우호적이다. 지난달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이들 학교의 존폐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폐지’ 52.5%, ‘유지’ 27.2%, ‘잘 모름’ 20.3%로 집계됐다.

필자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외고와 자사고 폐지를 주장해왔다. 소아적 이해관계를 떠나서 공동체의 미래를 생각할 때 이들 학교의 존치는 득보다는 실이 훨씬 더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특히 외고와 자사고가 표상하는 계층별 분리교육의 심각한 폐해를 떠올리면 폐지 외에 달리 답을 찾기 어려웠다.

외고-자사고-일반고로 이어지는 수직적 서열체계는 이들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의 계층 배경과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다. 외고 학생의 가정배경이 가장 좋고 자사고 학생이 다음으로 유복한 편이며 일반고에는 가정형편이 상대적으로 어려운 학생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이 같은 배경 특성에 따른 분리교육이 계층 간 교육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한편 민주적 시민의식의 함양에도 커다란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저소득층 학생은 다양한 계층 배경의 학생들이 모여 있는 학교에서 좀 더 높은 성취수준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 즉 학생들의 계층 배경이 다양해지면 중산층 학생의 성취수준은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지만 저소득층 학생의 성취수준은 가시적으로 향상되는 게 일반적이다. 이 같은 현상은 국내외에서 수행된 많은 연구들이 매우 일관되게 보고하고 있다. 핀란드가 OECD 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배경도 이런 맥락에서 설명되곤 한다. PISA에 참가하는 57개 국가 중 핀란드 학교들의 계층 다양성이 가장 양호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학교의 평균적 배경 특성이 저소득층 학생의 성취수준에 심대한 영향을 끼치는 상황에서 저소득층 학생에게 분리교육은 재앙이나 진배없다. 분리교육은 저소득층 학생에게 남겨진 실낱 같은 희망마저 앗아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격차해소와 사회통합이 절실한 시대에 하루바삐 분리교육을 청산해야 하는 이유다.

중산층 학부모 입장에서도 분리교육은 재고될 필요가 있다. 대입 경쟁에서 유리한 교두보를 확보하는 것만 생각한다면 분리교육은 분명히 매력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명문대 졸업장의 가치가 예전 같지 않은 상황에서 분리교육을 대학 진학에서의 유불리라는 관점에서만 바라보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분리교육으로는 미래세대가 반드시 갖추어야 할 핵심 역량을 키워줄 수 없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분리교육은 학생들의 인간관계 폭이나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이 편협해지는 결과를 초래하기 쉽다. 아울러 분리교육은 중산층 학생에게 그릇된 선민의식과 우월감을 조장함으로써 계층 간 배타성과 반목을 키울 개연성도 있다. 부모들 세계에서 나타나는 아파트 통로 봉쇄나 담장 치기 등을 자연스럽게 여기는 심리가 학창시절에 배태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사고방식에 젖어 있는 학생들에게서 더불어 살아가는 능력이나 공감능력을 기대하긴 어려울 것이다.

학교는 단지 지식의 전수만을 위해 존재하지는 않는다. 지식 습득은 혼자서도 가능하고 학원에서 더 원활하게 이뤄질 수도 있다. 따라서 학교의 진정한 존재 의의는 자라나는 세대에게 민주주의 사회의 일원으로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사회적 태도를 길러주는 것에서 찾아야 한다.

그런데 이런 사회적 태도는 아무데서나 저절로 형성되는 게 아니다. 자신과는 살아온 환경, 경험이나 사고방식이 다른 사람들과의 일상적인 소통을 통해 자신의 삶, 생각과 믿음을 되짚어 보는 시간과 기회를 가질 때 비로소 체화될 수 있다. 분리교육을 시급히 청산해야 하는 보다 근본적이고도 중요한 이유다.

김경근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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