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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담] 정세균 “국회 청소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이 가슴 뿌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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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담] 정세균 “국회 청소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이 가슴 뿌듯”

입력
2018.05.24 20:00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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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내 여소야대에서 탄핵까지

힘들었지만 할 일 했다고 자부”

[저작권 한국일보] 정세균 국회의장이 21일 국회 의장실에서 이유식 논설고문과 정치 현안을 두고 토론하고 있다. 오대근기자 inliner@hankookilbo.com /2018-05-22(한국일보)
[저작권 한국일보] 정세균 국회의장이 21일 국회 의장실에서 이유식 논설고문과 정치 현안을 두고 토론하고 있다. 오대근기자 inliner@hankookilbo.com /2018-05-22(한국일보)

정세균 국회의장은 20대 총선으로 펼쳐진 여소야대 정국에서 야당 출신 국회의장에 선출됐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로 정권이 조기에 교체되고 여야가 뒤바뀌었지만 여소야대 정국은 변하지 않았다. 도리어 탄핵 정국에서 정당이 사분오열해 국회 운영은 더 힘들어졌다. 현대사에서 흔치 않은 격동의 시기에 국회 수장을 맡은 정 의장은 “여소야대 체제의 국회의장으로서 참 힘들었다”고 회고했다.

_2년 동안 가장 보람된 순간을 꼽는다면.

“청소노동자를 비롯한 용역직 직원을 국회직으로 전환했던 기억이 잔잔한 보람으로 남는다. 작은 일이지만 고용의 질을 높이는 시발점이 됐다는 점에서 가슴 뿌듯하다. 크게는 탄핵 사태를 맞아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입법부가 중심을 잡고 큰 혼란 없이 슬기롭게 마감했다는 사실이다. 국회 구성을 보면 국민의 뜻을 받들기가 어려웠음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국회가 국민의 뜻을 잘 받들어서 탄핵을 가결한 것 아닌가. 그래도 20대 국회 전반기에 국회가 할 일을 했다고 자부한다.”

_가장 힘든 순간은 언제였나.

“교섭단체가 4개로 늘어났고 줄곧 여소야대 상황이 전개되지 않았나. 처음 (의장 임기를) 시작할 때나 정권교체가 된 뒤에도 마찬가지지만, 여소야대 체제의 국회의장은 품이 많이 들어 참 괴로웠다. 노력을 정말 많이 해야 겨우 감당이 되는 국회의 수장으로서 힘이 들었다. 그런 와중에 여야 막론하고 의원들에게 한가지 추가적인 노력을 주문했다. 입법부가 법안 심사에 게을러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국가를 생각해서라도 영국처럼 불이 꺼지지 않는 국회를 만들어 달라고 당부했다. 그럼에도 20대 국회 들어 지난 2년 동안 1만2,500건의 법안이 발의가 됐는데 그 중 3,000건밖에 처리하지 못하고 9,500건은 아직도 심사를 기다리고 있다. 아쉬움을 감출 수가 없다.”

정 의장은 국회 운영 철학으로 삼았던 3가지 원칙(국민에게 힘이 되는 국회, 미래를 준비하는 국회, 헌법정신을 구현하는 국회) 가운데 하나는 확실히 지켰다고 자부했다. 미래를 준비하는 국회를 만들기 위해 ‘국회미래연구원’을 출범시켰다. 국회미래연구원은 국회가 미래의 변화를 예측ㆍ분석하고 국가 중장기 발전전략을 도출하기 위해 만든 국회 출연 연구기관이다. 설립 취지로 보면 국회판 한국개발연구원(KDI)인 셈이다. 28일 개원을 앞둔 연구원의 초대 원장에는 공교롭게도 박진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가 임명됐다.

_국회미래연구원은 옥상옥이라는 이유로 반대도 적지 않았다.

“정부는 장기적 노력을 기울이기가 쉽지 않은 형편이다. 대통령의 경우 매주 단위로 국정수행 지지도가 나오다 보니 당장의 평가에 매일 수밖에 없다. 임기 5년 동안 실적을 내지 않으면 정권 연장이 어려운 구조인 반면 국회는 행정부나 대통령 같은 기관에 비해 장기적인 국가 비전을 고민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런 차원에서 독자적 역량보다는 KDI를 포함한 여러 기관들과의 네트워킹을 통해 장기 비전을 준비하는 목적으로 국회미래연구원을 만들었다.”

김정곤 논설위원 jkkim@hankookilbo.com

<정세균 의장은>

쌍용그룹 상무이사 출신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 특보로 정계에 입문한 뒤 6번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15~18대 총선까지 고향인 전북 무주ㆍ진안ㆍ장수ㆍ임실 지역구에서 4선을 지냈고 19대 총선 때 서울 종로로 지역구를 옮겼다. 수도권에 진출한 첫 총선에서 새누리당 홍사덕 후보를 이겼고 20대 때는 여권 잠룡인 오세훈 전 서울시장을 눌러 6선 고지에 오른 뒤 20대 전반기 국회의장에 선출됐다. 열린우리당 정책위의장과 민주당 대표를 거쳤고 노무현 정부에서 산업자원부 장관을 지냈다. 온화한 이미지에 원만한 대인관계로 당내 폭넓은 인맥(SK계)을 형성하고 있다. 정 의장은 국회의장을 마치고 지역구로 돌아간 뒤 “정치 발전에 쓴소리가 필요하면 쓴소리도 하고 국가가 필요로 하는 인재가 있으면 적극 후원하는 역할을 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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