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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여학생만 속옷 색깔까지 규제하죠?”… 10대들의 교실 내 성차별 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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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여학생만 속옷 색깔까지 규제하죠?”… 10대들의 교실 내 성차별 고발

입력
2017.11.25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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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신촌에서 진행된 '10대 페미니스트 필리버스터' 행사에 참가한 한 청소년이 얼굴을 가린 채 자신이 학교에서 겪은 성차별 사례를 이야기하고 있다. 곽주현 기자
25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신촌에서 진행된 '10대 페미니스트 필리버스터' 행사에 참가한 한 청소년이 얼굴을 가린 채 자신이 학교에서 겪은 성차별 사례를 이야기하고 있다. 곽주현 기자

“한창 더운 여름, 여자 아이들에게만 속옷 위에 한 겹 더 입으라고 강제합니다. 속옷을 안 입으면 민망하다고 혼나고, 속옷을 입으면 비친다고 뭐라고 하죠. 여성의 행실이 문제니 고쳐야 한다는 인식이 바탕에 있는 게 아닐까요.”

천둥 번개를 동반한 겨울비가 쏟아진 25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신촌 홍익문고 앞에서는 10대 청소년들이 학교에서 겪는 성차별 경험을 자유롭게 터놓는 자리가 마련됐다. ‘우리는 매일 사건을 겪고 있다’라는 이름으로 한국여성민우회가 개최한 필리버스터 행사에는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20명 가까운 청소년 지원자들이 참여해 2시간여 동안 학교에서 일어나는 성차별 실태를 고발했다.

청소년들은 여성에게만 복장이나 외모 등을 규제하는 것에서 가장 부당함을 느꼈다. 자유발언에 나선 고모(17)양은 “마치 인형놀이를 하는 것처럼 교복 디자인 자체가 날씬하고 예쁜 것만 강조한다”면서 “여자는 치마를 입으라고 강요 당하고는 ‘속옷 보이겠다, 처신 똑바로 해라’라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학생은 “교복을 바지로 선택했더니 선생님이 따로 불러 ‘혹시 정체성 고민이 있냐’고 물었다”며 “여학생이 바지를 입으면 비정상이라고 생각하는 게 문제”라고 불평했다.

교사의 성차별 발언도 문제로 지적됐다. 여학생들에게만 혼전순결을 강요하거나, 임신과 출산이 여성의 유일한 목표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교사들이 여전히 많다는 것이다. 고등학교 1학년이라고 밝힌 김모(16)양은 “담임 선생님이 ‘너희의 목표는 결혼해서 남편 밥 챙겨주고 우리나라 출산율을 책임지는 것’이라고 하더라”며 “우리의 꿈과 목표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아이 낳는 기계로만 취급한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고 울분을 토했다. 얼굴을 가리고 나온 한 학생은 “선생님이 학생을 집에 데려가 성추행했다고 자랑스레 떠벌리고 다니는 걸 듣고 소름이 돋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발언에 나선 학생들은 입을 모아 “후배들은 이런 일을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한 참가자는 “선생님은 내가 너무 예민하다고 말하지만, 세상은 부당함을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바꾸는 것”이라고 말해 환호를 받았다. 발언을 지켜보던 이모(25)씨는 “학교에서 제대로 된 성교육을 할 필요가 있다”며 “학교에서부터 여성과 남성 모두가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 받아야 한다고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민우회의 ‘2017 성차별 보고서’에 따르면, 응답한 10대 여성 235명 중 31%가 학교에서 성차별을 겪었다고 대답했다. 민우회는 이날 성평등한 학교를 위한 가이드라인으로 ▲성차별적인 복장규정 개선 ▲학생들에게 외모평가 하지 않기 ▲’여자는, 남자는’이라는 말 사용하지 않기 등을 제시했다.

곽주현 기자 z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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