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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진 칼럼] 국민의 눈물을 못 본 척하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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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진 칼럼] 국민의 눈물을 못 본 척하는 나라

입력
2012.11.20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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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고생의 눈물을 보며 영화 를 새삼 떠올렸다. 지난달 8일 아프리카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돼 있는 제미니호 선원 4명의 가족들이 기자회견을 했다. 아버지와 아들이 피랍된 지 528일째 되는 날이었다. 싱가포르 선적 제미니호가 케냐 해역에서 납치된 것이 지난해 4월 30일. 배에는 인도네시아인 13명, 중국인 5명, 미얀마인 3명을 포함해 25명이 승선해 있었다. 협상에 나선 싱가포르 선사는 배와 선원들을 되돌려 받는 조건으로 돈을 지불했다. 11월 30일 되찾은 배에는 21명만 타고 있었다. 한국선원 4명은 미리 빼돌려져 소말리아로 끌려갔다. 재(再)납치된 셈이다.

우리 정부는 인질협상 원칙에 따라 언론에겐 보도유예(엠바고)를, 가족들에겐 침묵을 요구했다. 국민의 관심에서 멀어져 버렸으며, 가족들은 친척에게조차 함구하며 지냈다. 협상 주체인 싱가포르 선사 입장에선 배를 찾았고, 협상금은 보험으로 충당했으니 적극적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앞서 2011년 1월 21일 우리 청해부대의 '아아덴만 여명작전'이 한국선원 재납치의 원인이 되었으니 자신들의 책임범위를 넘었다는 생각이다.

소말리아 해적에게 억류됐던 우리 선원 21명을 구출한 '아덴만 작전'은 해군의 위상을 세계에 드높였다. 목숨을 걸고 청해부대의 작전을 도왔던 석해균 선장은 국민적 영웅이 됐다. 청해부대는 당시 해적 8명을 사살하고 5명을 체포해 왔다. 그들은 국내에서 복역 중이다. 제미니호 해적들은 사살된 8명의 몸값과 5명에 대한 석방(혹은 보상금)을 요구하고 있다. 싱가포르 쪽에서 제미니호 사건을 '한국의 정치ㆍ외교적 사안'으로 치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 언론은 8월 말부터 제미니호 사건을 일부 보도했으나 '뜨거운 감자'로 여겨 적극적으로 다루지 않았다. 답답해진 가족들은 외교부와 국토해양부 등을 방문하여 협상경과를 묻고 정부의 노력을 애걸했다. 그 동안 가족들이 정부 쪽에서 들었다는 말. "해적과의 협상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것이 원칙이다. 언론에 노출되면 협상에 난항을 겪는다. 싱가포르 측의 협상을 최대한 돕고 있다(초기의 발언들)."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군사작전도 할 수 없고, 협상금 예산도 없다. 정부에 기대지 마라(이후의 발언들)." 정부의 말 가운데 틀린 말은 없다. 기자회견장에서 대국민 호소문을 읽는 동안 선원의 딸은 하염없이 눈물만 쏟아내고 있었다.

협상의 주체인 싱가포르 선사가 '한국의 정치ㆍ외교적 사안'으로 보고 있다는 판단에 동의한다. 정부가 혹시라도 "해적들이 요구조건을 철회할 때까지 기다리는 게 최선이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 문제다. 이제라도 적극적 노력을 해야 한다. 우리국민 4명이 아프리카 소말리아에 억류돼 있는데 국내에선 저절로 풀려나기만 기다린다면 국가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에 이르렀다.

정부가 "이명박 대통령 각하, 우리 아빠를 살려주세요"라는 호소문에 관심을 기울인다면 '정치ㆍ외교적'으로 해결 방법을 찾지 못할 이유도 없다. 싱가포르 선사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싱가포르 정부가 있고, 소말리아 해적에게 압력을 행사할 소말리아 정부도 있다. 쉬운 말로 이명박 대통령이 임기 내에 해결하겠다며 의지를 밝히고 독려한다면 정치ㆍ외교적으로 불가능하지 않다. 혹시 대선을 앞둔 후보들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TV토론 등에서 입장을 밝히며 상대후보에게 질문을 던진다면 그것도 효과적일 것이다. 이렇게 복잡미묘한 문제에 대한 답변을 들어보면 그의 정치력 외교력을 가늠해볼 수 있을 듯하다. 특히 국민의 눈물을 대하는 그의 마음을.

주필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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