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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살며] 한국 미국 베트남 그리고 베트남전

입력
2016.08.05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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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퓰리처상을 받은 베트남 작가 베트 탄 누엔의 소설 ‘동조자(The Sympathizer)’는 베트남전(베트남에서는 미국전쟁으로 칭해지는) 막바지에 미국화된 한 베트남 스파이의 이야기를 그린 소설이다. 이 작품에서 여러 가지 의미 있는 요소들을 찾아볼 수 있다. 사실주의적 전쟁소설이면서 미국 문화를 풍자하고 미국에 사는 베트남 이민자들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소설이기도 하며, 긴장감 넘치는 스파이 스릴러 소설이기도 하다. 익명으로 등장하는 화자는 미국에서 교육을 받은 베트남인이며 그는 그가 베트남 억양이 없는 미국식 영어를 배웠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인물이다. 그는 미 중앙정보국(CIA)에서 고문하는 법을 훈련받았고 전쟁 중에는 미국인들과 남 베트남의 육군대장과 함께 일했다. 그러나 그는 비밀리에 북 베트남 사회주의자 그룹의 스파이로 활동하고 있었다. 미국인들이 베트남전에서 철수하기로 했을 때 그는 미국으로 이주하여 북 베트남을 위한 스파이활동을 계속했다. 그는 이중적인 성격을 가진 모순된 인물이다. 한편으로는 미국에서의 삶을 사랑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베트남에서 싸우고 있는 그의 친구들처럼 사회주의를 따르고 있다. 이 모순적인 화자를 통해 소설은 정체성과 망명, 인종 간의 편견이라는 주제를 탐구한다.

누엔은 소설과 기타 논픽션 글들을 통해 베트남전(또는 미국전)은 패자들이 역사를 기록하게 된 유일한 전쟁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는 할리우드 영화 ‘지옥의 묵시록’과 ‘플래툰’ 등에서 발현된 미국의 엄청난 문화적 힘 때문에 베트남 전쟁에 대한 베트남인들의 관점은 가려졌고 잊혔다고 주장한다. 영화 지옥의 묵시록의 경우 베트남전에서 참전한 미국인들의 경험에 전적으로 집중하고 있다. 베트남전을 다룬 할리우드 영화 중 어느 작품에도 그 시절의 진짜 베트남인을 반영한 인물은 등장하지 않는다. 누엔은 미국 문화의 힘이 베트남전(또는 미국전)의 경험을 완전히 미국화시켰다고 이야기한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화자는 라오스의 영화관에 방문하는데 이곳에서 전 세계 사람들이 미국인들 입장에서 묘사된 역사물들에 중독되어있음을 깨닫게 된다.

나는 영국에서 성장하며 베트남전을 다룬 할리우드 영화를 다수 접했다. ‘지옥의 묵시록’은 고전으로 여기기도 한다. ‘동조자’를 읽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베트남전 중 베트남인의 입장에서의 경험을 다룬 미국 영화는 본 적이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베트남인의 시각에서 그려진 베트남전을 마주해볼 수 있었던 유일한 길은 한국 소설을 통해서였다.

황석영의 ‘무기의 그늘’에서는 베트남에 파병되어 미군과 함께 싸운 30만명의 한국 군인 중 한 명이었던 한국 소설가의 경험을 다룬다. ‘동조자’처럼 이 소설은 미국의 간섭주의를 통렬히 비판한다. 또한 미국문화에 대한 중독이 낳을 수 있는 파괴적인 결과에 대해서도 강조한다. ‘무기의 그늘’은 베트남전에 동참한 한국의 이야기를 담은 굉장히 이례적이고 비인습적인 전쟁소설이다. 전쟁 구역을 배경으로 한 장장 600페이지에 달하는 이 소설 속에서는 전투 장면은 매우 적게 등장한다. 대신 이 소설은 전쟁의 결과로 다낭에서 벌어지는 암시장 거래들에 집중한다. 전쟁의 어두운 그림자로 나타난 암시장의 속에서 여러 한국인, 미국인 그리고 베트남인 인물들은 서로 겹쳐져 각자의 이익을 좇는다.

‘동조자’의 익명의 화자는 남과 북, 미국과 베트남 그리고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라는 이데올로기적 분열을 내재하고 있는 인물이다. 황석영 작가의 소설 ‘무기의 그늘’은 이러한 분열을 세 명의 인물을 통해 표현한다. 전방에 배치되었다가 암거래를 조사하는 범죄수사부로 옮겨진 젊은 한국군 안용규, 베트남 민족해방전선에 자원하여 미국군에 맞서 싸우는 베트남 청년 팜 민 그리고 미군과 연합한 베트남군의 지휘관인 팜 민의 형이다. 그리고 또 다른 등장인물은 다낭 지역 그 자체라고 말할 수 있다. 황석영 작가는 전쟁의 현장이 된 다낭이라는 해안 도시의 모습 그리고 베트남전의 소리와 냄새를 소설 속에서 선명하게 살려낸다.

이 두 소설은 미국문화의 소비자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관점에서 베트남전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굉장히 중요한 작품들이다. 뿐만 아니라 매우 흡인력 있는 전개를 갖추고 있어 많은 독자가 역사적 사건을 새롭게 이해하도록 인도해주는 큰 의미를 가진 작품들이다.

배리 웰시 서울북앤컬쳐클럽 주최자ㆍ동국대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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