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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남쌀은 맛이 없다?” 굳어진 미각의 편견일 뿐

입력
2016.08.15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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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심을 사랑하는 우리는 자포니카 쌀로 밥 한 그릇 뚝딱 해치우곤 든든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인디카 쌀을 먹는 사람들에게 우리 밥은, 무척 부담스러운 밥이다. 게티이미지뱅크
밥심을 사랑하는 우리는 자포니카 쌀로 밥 한 그릇 뚝딱 해치우곤 든든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인디카 쌀을 먹는 사람들에게 우리 밥은, 무척 부담스러운 밥이다. 게티이미지뱅크

미각도 거짓말을 한다. “안남미는 맛이 없다”는 한국인 사이에 널려 퍼져 있는, 음식을 둘러싼 미각의 거짓말을 대표하는 예이다.

몇 가지를 확인하면 이렇다. 전세계 70억 인구 가운데 35억이 밀을 주식으로 삼는다. 나머지 35억은 쌀을 주식으로 삼는다. 주식까지는 아니라도 오랫동안 쌀을 재배하고 익숙하게 먹어온 지역이 지구 곳곳에 있다. 쌀은 서쪽으로는 이집트에서 시작해, 동쪽으로 한국과 일본에 이르기까지, 아득한 예로부터 오늘날에 이어진 주식 또는 별미 음식의 재료이다.

벼는 단 하나의 계통만이 아니다. 벼를 찧어, 벼의 껍질을 까면 쌀이 된다. 이때 상대적으로 짧은 쌀이 있다. 이것이 우리에게 익숙한 단립종, 자포니카 품종이다. 상대적으로 긴 쌀도 있다. 이것이 장립종, 인디카 품종이다. 한국인이 흔히 ‘안남미’라 부르는 쌀은 바로 인디카 품종 벼에서 나온 쌀이다. 뒤에 살펴보겠지만, 한국사의 특수한 역사적 경험 때문에, 한국인은 인디카 쌀이라면 인도차이나산 쌀이 아니라도 산지를 구분하지 않고 ‘안남미’라 통칭한다.

생산 비율로 보면 전세계에서 나는 쌀 가운데 10%쯤이 자포니카 쌀이고, 90%쯤은 인디카 쌀이다. 자포니카 쌀이 식생활의 중심이 되는 곳은 한국, 일본, 대만, 중국 둥베이(東北) 지역이 전부다. 그러니까 오직 한국, 일본, 대만, 중국 둥베이(東北)에 사는 3억3,000만명만이 자포니카 쌀 중심의 식생활을 하고 있다는 말이다.

안남미는 한국 밥상에 흔한 자포니카 쌀보다 길쭉하고 찰기가 없다. ‘그래서 맛이 없다’는 편견은 특수한 역사적 경험을 통해 한국인의 미각에 고착됐다. 게티이미지뱅크
안남미는 한국 밥상에 흔한 자포니카 쌀보다 길쭉하고 찰기가 없다. ‘그래서 맛이 없다’는 편견은 특수한 역사적 경험을 통해 한국인의 미각에 고착됐다. 게티이미지뱅크

안남미는 전세계 쌀 생산의 90%

“안남미는 맛이 없다”는 감각에 따르면, 31억7,000만명은 불행히도 ‘맛없는 쌀’을 먹고 살아온 셈이다. 더구나 벼의 원산지가 동남아시아 어디쯤, 베트남 메콩강 유역 어디쯤이라는 학설을 떠올리면 인디카 쌀을 먹는 인구가 한층 더 안됐다. 그러나 31억7,000만명의 불행이라니? 31억7,000만명이나 되는 인류가, 벼의 재배가 시작되고 오늘날까지 1만년 넘게 미각의 불행 아래서 살아 왔다고?

“맛없는 안남미”와 관련해 내 머릿속에 반짝하는 일화가 있다. 벼와 쌀을 공부하다 막히면 찾아가 지식을 빌리는 고마운 분,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 김태호 교수로부터 들은 일화다.

김 교수의 인도인 동료가 일본에서 지낼 때다. 이 인도 출신 학자는 일본 쌀밥을 먹기 싫어서 점심 때마다 밥 먹자는 동료 일본인들을 피해 다녔단다. 숙소에 숨어 있기도 했단다. 아니 왜? 인디카 쌀밥을 먹고 살아 온 그에게, 차진 자포니카 쌀밥은 목구멍에 들러붙어 넘어가지도 않는, 숨이 막혀 죽을 것만 같은 느낌을 주는 밥이었다. 게다가 먹고 나면 몰려오는 더부룩한 느낌까지 너무너무 싫어서, 이 “불행한” 인도인은 한동안 점심 끼니를 포기해야만 했단다.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저 너머에 잠들어 있던 기억이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나는 이와 똑같은 경우를, 이미 여러 갈래로 들은 바 있다.

중국 장난(江南)과 인도네시아, 필리핀을 포함해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월급쟁이 생활을 한 누이가 거의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기술 교육과 음식 개발을 위해 해마다 유럽과 아시아를 가로지르는 내 주변의 제과사나 요리사 여러분들에게서도 똑같은 말씀을 들었다. 평범한 월급쟁이나, 음식 전문가나 한결같이 살짝 웃으며 감각의 “차이”를 콕 집어냈다.

한국인은 인디카 쌀밥을 먹으면서 ‘밥이 풀풀 날리고 힘이 하나도 없다, 그래서 못 먹을 만큼 맛이 없다’고 한다. 반면 그들은 자포니카 쌀밥을 먹으면 ‘입천장에서부터 목구멍까지 너무 들러붙는다, 그래서 입안에 넣기조차 두렵다’고 한다. 한국인은 자포니카 쌀밥을 먹고 나서 든든하다고 한다. 밥심을 칭찬한다. 그들은 인디카 쌀밥을 먹고 나서 가뿐하다고 한다. 알곡 그대로 지은 밥의 개운함을 칭찬한다.

맛 없다는 건 감각의 거짓말

또 하나, 한국인은 인디카 쌀에서 묘한 향 또는 냄새가 난다고 한다. 그래서 거슬린다고 한다. 저네는 자포니카 쌀은 아무런 향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너희 쌀은 좋은 향이 없는 싸구려 쌀이다’라고 한다. 누군가에게는 차진 밥이 누군가에게는 숨 막히는 밥이 될 수 있다. “든든하다”를 뒤집으니 “더부룩하다”가 됐다. “냄새 난다”와 “향기롭다”가 나란하다. 일화에는 과장이 깃들게 마련이지만, 이 점만은 분명하다. 자포니카 쌀은 자포니카 쌀의 속성과 맛이 있고, 인디카 쌀은 인디카 쌀의 속성과 맛이 있다!

낯선 재료 앞에서, 낯선 음식 앞에서 허턱 내뱉은 “맛이 없다”는 감각이 시킨 거짓말일 수 있다. 이 때의 “맛이 없다”는 “내게 익숙지 않다”라든지 “나는 인디카 쌀, 그리고 인디카 쌀로 밥 짓는 방법, 그리고 다른 인디카 쌀로 만든 음식을 잘 모른다”로 고쳐 생각할 필요가 있다.

반론도 있을 수 있겠다. 한국인이 오래 전부터 안남미 또는 인디카 쌀을 경험했고, 맛이 없다고 판단했고, 그래서 버렸다고. 그렇다. 한국인은 100년도 더 전에 안남미를 만났다. 쌀과 콩은 자꾸만 일본으로 넘어가고, 풍년과 흉년을 자연이 결정하던 시절에 안남미는 한국에 들어왔다.

1905년 10월 10일 황성신문에 실린 안남미 수입판매 광고. 국립고궁박물관 제공
1905년 10월 10일 황성신문에 실린 안남미 수입판매 광고. 국립고궁박물관 제공

안남미는 1901년에 이미 한국에 들어와 보통 사람들에게 풀렸다. 대한제국은 식량 확보와 쌀값 안정을 위해, 쌀의 이출을 금하는 방곡령을 내림과 동시에 무관세 쌀 수입 조치를 병행하기도 했다. 안남미는 외국 상사가 탐낼 만한 수입품이었다. 쌀만큼 확실히 팔릴 상품이 또 어디 있겠는가.

대한제국이 망하고는 더했다. 조선은 노골적으로 일본을 위한 쌀 생산지가 됐다. 부족한 쌀과 기타 곡물은 만주에서 수입한 좁쌀과 동남아시아에서 수입한 안남미로 때웠다. 당시 언론에 따르면 1924년 현재 만주산 좁쌀은 3년 전보다 약 40배가 더 수입되었고, 안남미 수입은 약 25배 더 늘어났다. 그만큼 조선 쌀과 조선 콩이 일본으로 빠져나간 것이다.

이렇게 들어온 안남미는 소작민에게 돌아가는 쌀이기도 했다. 소출의 대부분을 지주에게 뜯긴 조선인 소작농은 자신이 쥔 얼마 되지 않는 조선 쌀을 시장에 내다 팔았다. 대신 조선 쌀에 견주어 4분의 1 아래이던 안남미를 사 먹었다. 만주산 좁쌀도 섞어 먹었다.

식민지의 도시민은 도시민대로 안남미의 장난에 맞닥뜨려야 했다. 1920년대부터 1930년대는 안남미를 둘러싼 도시 미곡상의 농간이 극에 달한 20년간이기도 했다. 수법은 뻔하다. 조선 사람이 좋아하는 조선 쌀에다가 안남미를 섞어 파는 것이다. 도시민 안정이 곧 체제 안정과 직결됨을 잘 아는 일제는 부정 미곡상 단속에 순사가 아니라 형사를 동원했다. 조선어 언론은 못된 미곡상을 가리켜 “간상(奸商)”, 곧 “간악한 장사치”라는, 언론이 쓸 수 있는 극한 표현을 가져다 붙였다.

조선사가 안남미 맛을 해쳤다

해방되고 나서도, 모자란 쌀은 역시 베트남-버마-태국 쌀로 메꾸는 수 밖에 없었다. 이들은 꼭 베트남 쌀이 아니어도 그냥 ‘안남미’였다. 가끔 들어오는 대만 쌀이 안남미보다 인기가 있었다. 대만 쌀은 자포니카 쌀이니까. 대만은 일제시대 전통적으로 먹던 인디카 쌀밥이 자포니카 쌀밥으로 바뀐 곳이다. 한국전쟁 이후 1960년대도 안남미 도입 양상은 비슷하다. 1970년대에는 정부가 정부미에 미국 캘리포니아산 쌀을 섞어 방출하기도 했다. 이때의 캘리포니아산 쌀 또한 요즘과는 달리 인디카 쌀이었다. 그 당시 소비자들은 정부미도 싫었고, “캘리포니아산 안남미”도 싫었다. 한국인이 육종하고도, 한국인이 맛없다고 버린 통일벼 또한 인디카의 형질을 지닌 벼다.

한국인은 그 동안 맛을 볼 틈 없이 안남미를 먹기만 했다. 품질 낮은 싸구려 인디카 쌀과 인디카 쌀 조리법에 대한 무지가 함께였다. 다만 살아남기 위해 안남미를 먹었다. 내 쌀을 제국 본토에 빼앗기고 먹는 쌀이 안남미였다. 1990년대까지도 2000년대까지도 그 잔상이 이어졌다.

나쁜 효과는 엉뚱하게 나타났다. 이 쌀은 이 맛, 저 쌀은 저 맛이 아니라 “맛이 없다”고 해버리고 나서는 다시 돌아보지 않는다. 그러고는 익숙한 내 감각에 고착된다. 이윽고 새로운 감각, 미각에 몸을 열 기회를 스스로 포기한다.

오늘날 이 땅에 들어온 이방인, 이웃이 된 외국인은 또 얼마나 많은가. 내게 익숙한 쌀 맛은 그것대로 그들에게 잘 설명하고 소개해야 하며, 내 이웃의 쌀 미각도 다시금 돌아볼 때가 됐다. 한국 쌀밥과 쌀 음식을 남에게 제대로 설명할 사람은 내 이웃의 미각과 그 반응을 이해하는 사람일 수밖에 없다. 감각의 고착이 시킨 거짓말에서 벗어난 다음에야 세계 이해의 폭과 깊이가 근본적으로 달라질 수 있다.

지난 경험이 고착시킨 감각의 거짓말이 낳은 “맛없다”를 벗어남은 더 넓은 세계로 창을 내는 아주 구체적인 행위이다. 미각에 깃든 거짓말 하나를 뿌리까지 반성하다 보면, 내가 맞을 세계를 더욱 넓힐 수가 있다. 내가 나아갈 세계가 더욱 넓어질 수도 있다.

고영 음식문헌연구자

공동기획: 한국일보ㆍ인문학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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