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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뉴스] '카이스트의 현인' 지인 돈 날린 사연

입력
2015.06.22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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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트의 현인’ 김봉수 카이스트 화학과 교수. 배우한기자 bwh3140@hankookilbo.com
‘카이스트의 현인’ 김봉수 카이스트 화학과 교수. 배우한기자 bwh3140@hankookilbo.com

괴짜인가, 현인인가

예컨대 이런 식입니다. “가급적 주식 전문기자가 오세요.” “최근 인터뷰를 많이 해 내용이 겹칠 수 있으니 질문을 먼저 보내주세요.” “IMF 외환위기도 2년 전에 예측했어요.” “2000년부터 시작한 나노 연구가 너무 잘 돼서 노벨상 받을 줄 알았죠.” “연구든 주식이든 실패를 모릅니다.”

넘치는 자신감에 살짝 주눅이 들었습니다. 괴짜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돈 많이 벌었다고 너무 잘난 척하는 거 아닌가’라는 시샘이 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이야기를 들을수록 그의 자신감엔 이유가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4억원을 10년 만에 500억원으로 만든 ‘카이스트의 현인’ 김봉수(57) 카이스트 화학과 교수는 이전에 만나본 이른바 재야고수들과는 확실히 달랐습니다. 복잡한 차트와 데이터를 가지고 자신만의 이론을 설파하는 그들과 달리 김 교수는 시종일관 기업의 가치에 대해 논했습니다. 어찌 보면 너무도 당연한 얘기를, 그는 다양하게 여러 사례를 들어가며 설명했습니다.

무엇보다 솔직했습니다. 인터뷰 중간중간 “아 그 얘기는 좀 심한 것 같아, 쓰지 마세요”라는 요청에 썼던 글을 여러 차례 지우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40년간 연구에 몰입한 학자의 자존심, 성취감이 자연과학 연구와 비슷한 방식으로 했다는 주식투자에도 스며든 것 같습니다.

사실 주식을 하는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건 딱 두 가지입니다. “어떤 종목” “얼마까지 올라.” 그나마 하나 더 추가한다면 “왜 좋아” 정도겠죠. 그리고 많이들 실패합니다. 기자 역시 마찬가지고요. 인터뷰 이후 기자는 김 교수로부터 왜 실패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일장 훈시를 들었습니다.

뻔한 얘기 같지만 그는 주식 역시 “공부해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모든 일엔 과정이 있는데도, 유독 주식 투자엔 그런 노력을 하지 않으려 한다는 거죠. 그래서 자신이 5% 이상 지분을 보유했다고 신고한 주식들이 개미들의 추격 매수로 급등하면 “솔직히 겁난다”고 했습니다. “나는 그저 그 주식이 좋아서 사다 보니 지분이 늘어난 건대, 마치 무슨 작전세력 보듯 한다”는 거죠. 더 사고 싶은데 그렇게 올라서 더 못 산 종목도 있다고 하네요.

그의 공부 예찬은 전공 분야와 주식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심지어 결혼도 공부를 해서 했다고 하네요. 맞선 자리에 나가기 전에 결혼에 필요한 14개 항목의 질문지를 작성해 만나는 여성들의 점수를 매겼다고 하네요. 예컨대 ▦건강한가 ▦나를 좋아하는가 ▦나는 좋아하는가 등이었다고 하네요.

그는 누군가가 종목을 추천해 달라고 하면 일종의 강의를 한답니다. 종목이 아니라 어떻게 주식에 투자해야 하는지에 대한 전반적인 얘기 말입니다. 하지만 유심히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고 하네요. 결국 마지막 질문은 “그래서 뭐 사면 돼?”

기껏 돈을 벌게 해줬는데 욕을 먹기도 한답니다. 김 교수가 전해준 사연은 이렇습니다. “아는 분이 제가 보유한 종목을 5,000원대에 샀어요. 그게 몇 년 만에 8만원까지 갔죠. 어느 날 전화가 왔어요. 엄청 화를 내는 거에요. 자초지종을 물었더니 그 종목이 5만원으로 떨어졌다는 겁니다. 여전히 10배 이익을 봤는데도, 손해가 났다고 따지더라고요.” 이런 이유 때문에 더욱 개별 종목 추천은 안 한다고 하네요.

사실 김 교수의 본보 인터뷰(17일자 10면)를 꼼꼼히 읽어보면 길이 보이는 분도 있을 겁니다. 참고로 인터뷰가 나간 다음날(18일), 공교롭게도 김 교수가 지분을 5% 이상 들고 있다고 신고한 종목 6개가 상한가(30%) 1개 포함 모두 상승 마감했습니다. 살 걸 그랬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김 교수가 이랬을 겁니다. “공부하고 투자하라고 했잖소. 추격 매수 하지 말라니까.” 실제 해당 종목 6개는 급등 이후 조정을 받았습니다. 단기 수익을 노리고 무턱대고 샀다면 손해를 봤거나 애를 먹었을 겁니다.

꽤나 긴 인터뷰였지만 여전히 지면에 싣지 못한 내용들(김 교수가 직접 적어준 내용도 있고요)이 있어 더 소개합니다. 주식을 하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3년간 3배 수익’ 목표는 근거가 있나.

“투자를 해보니 기업의 이익창출능력인 자기자본이익률(ROE)이 일정 수준 도달하는 기간이 그 정도 걸리더라. 경영자의 사업능력이 충분히 발현될 수 있도록 기다린다. 좋은 회사를 사서 묻어두라는 얘기다. 실질 주가순자산비율(PBR)이 0.3이면 투자할 가치가 있는 회사다.”

-투자 원칙 중 가능하면 다수의 반대편에 선다고 했는데.

“부산 용호동 땅 1만평을 매입해 아파트를 지으려는 업체가 있다. 사람들은 해운대도 아니고 거기냐고, 분양가도 비싸 안 될 것이라고 얘기하더라. 내가 보니 경치가 너무 좋더라. 미국 샌프란시스코, 일본 나고야에 살아봐서 안다. 해안가 부지가 얼마나 귀한지, 그래서 투자했다. 내 인생도 그렇다. 내가 서울대 77학번인데 자연계열 900명 중 770명이 물리학과를 지원하길래, 난 화학과를 지원했다. 2000년에는 수강하는 학생들이 없어서 나노로 연구 분야를 바꿨다. 그 뒤 연구 성과가 어마어마하다. 그렇기에 이런 삶의 방식을 응용해서 과감하게 주식 투자라는 모험도 시작할 수 있었다.”

-주가가 떨어지면 엄청난 스트레스던데.

“괴롭다. 수익이 나다가 손해를 보면 고통을 3, 4배 더 느낀다. 나도 2008년에 폭락 경험을 했다. 손해보고는 정말 팔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묻어두고 본업에 충실했다.”

-식구들은 좋아하나.

“아내는 지금도 팔라고 얘기한다. 이제 좀 팔아야지 않냐고, 10년 내내 같은 말이다. 우리 두 딸은 아빠는 부자가 됐는데 우리 삶이 변한 게 없다고 불평하더라. 뭘 좀 사고 싶어하길래 아버지가 유명해질 텐데 검소한 모습을 보이라고 했다.”

-주식은 돈 외에 어떤 의미인가.

“지적인 도전이다. 연구랑 똑같다. 돈을 왜 계속 버냐고 할 수도 있지만, 미래를 예측하고 내 예상대로 사건이 진행될 때 성취감과 만족을 느낀다. 연구는 명예를, 주식은 돈을 얻는 게 다를 뿐이다.”

-언제까지 투자할 건가.

“얼마 전 돌아가신 장인이 91세까지 일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일하더라. 아름다웠다. 나도 죽기 직전까지 주식 투자를 하고 싶다.”

-왜 슈퍼개미란 말을 싫어하나.

“단타만 하니까 평생 개미로 남는 거다. 난 합리적인 투자자라는 말을 사랑한다. 그래서 메타세쿼이아로 불러달라고 하는 거다. 그 나무는 콜럼버스도 봤을 것이다. 그만큼 장기적으로 기억되고 싶다.”

-‘봉수 효과’에 대해 어찌 생각하나, 보유 종목에 투자해도 되나.

“이런 효과는 상상하지도 못했다. 개인투자자들이 기업의 가치를 확인하고 장기적으로 투자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최근 급등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저평가된 상태는 확실하다고 생각하지만 단기적인 시야로 접근하는 건 부적절하다. 정말 좋다고 스스로 판단될 때 투자를 해야지 ‘봉수 효과’ 만을 보고 추격 매수하는 것은 자제했으면 한다. 최근처럼 급등하면 급락하거나 조정을 받을 수 있다. 장기적으로 보면 미미한 가격변동이겠지만 초보자들에게는 심리적 압박이 클 수 있으므로 저평가된 상태라고 충분히 판단한 투자자라면 추격 매수는 자제하고 조정 받거나 하락할 때 조금씩 분할 매수하는 게 좋을 듯하다.”

-개미들에게 가르침을 달라.

“급등하는 회사는 절대 사지 마라. 합리성을 잃으면 안 된다. 추격 매수는 절대 안 된다. 안정된 가격에서 사라. 내가 가지고 있다고 막 사지 마라. 납득될 때까지 공부하고 사라. 침착한 장기투자자는 결국 돈을 번다. 결론은 ‘자기가 이해할 수 있는 정말 좋은 회사를 찾아서 3년 이상 투자하라’이다.”

일부 겹치는 내용도 있지만 그 부분이 김 교수가 진정으로 개미들에게 알리고 싶은 핵심임을 명심하길 바랍니다.

고찬유기자 jutdae@hankookilbo.com

에필로그

김 교수가, 기자 잘 쓰면 종목 하나 추천해주겠다고 약속하더니 기사가 나간 날 보내온 문자 메시지(매우 낯 뜨겁지만)는 이렇습니다.

‘정말 흥미롭고 쉽게 잘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역시 전문가시군요! 저도 실제로는 글(논문)을 써서 먹고 살았던 사람인데 고 기자 글은 표현 방식을 잘 연구해 보겠습니다~ 담에 소주 한 잔 같이 하세요!’ 얼떨결에 연구 대상이 된 입장에서 여기다 대고 차마 종목 얘기는 더 못 하겠더군요.

그래서 “저는 소주보다 소폭(소주+맥주)을 더 좋아합니다. 기다리겠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기사가 나간 뒤에 여러분이 묻던데, 종목 관련해 제가 할 수 있는 얘기는 여기까지입니다. 그러니 더는 묻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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