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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위인은 오지 않는다

입력
2017.07.19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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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이 바뀌고 개각 때마다 열리는 청문회를 보고 있으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연상된다. 옥스퍼드 대학의 수학자가 쓴 이 난해한 동화에서는 수많은 풍자와 더불어 다혈질의 여왕이 살아있는 고슴도치를 홍학을 막대로 삼아 공처럼 치는 크리켓 경기 장면이 나온다. 규칙은 수시로 바뀌고 여왕은 당장 처형하라고 소리친다.

만약 여기다가 새로운 청문회 경기를 추가해 보면 어떨까? 축구공이 된 후보자를 페널티 라인에 올려놓고 야당은 승부차기처럼 열심히 차 넣고, 골키퍼가 된 여당은 부지런히 막아낸다. 한 골이 들어갈 때마다 정권의 지지율은 떨어지게 되어 있다. 행여라도 골키퍼가 슛을 다 막아내면 협치는 실종되고, 한두 명이라도 낙마시키지 못한다면 승부차기에서 실축한 패배자가 된다. 정권을 잡은 승자니까, 몇 골은 먹어주는 게 패자에 대한 예의이고 배려가 된다. 그 과정에서 축구공은 바람이 빠지고 너덜거려진다.

앨리스가 묻는다. “저 공... 저 사람은 괜찮아?” “응, 도덕적이면 괜찮아. 할 수 없어. 우리는 도덕적이어야 하니까.” “그래도 꼭 저렇게 해야 하니?” “우리보다 더한 데도 있어. 미국도 그래. 우린 아직 멀었어.” “그런데 어느 공을 선택해야 하지?” “아무라도 돼. 도덕적이기만 하다면. 바쁘다 바빠.” 말하는 토끼는 앨리스에게 일러주고 분주하게 사라진다.

한국은 유난히 위인이 적은 나라이다. 존경하는 사람을 써보라면 늘 손에 꼽는다. 행여 이순신 장군도 전장에서 숨을 거두지 않았다면 말년에 어떤 풍파를 겪었을지 모를 일이고, 인사청문회라도 거치셨다면 무슨 파렴치범이 되셨을지 모를 일이다. 위인이 적은 것은 사람이 부족해서만이 아니라 지도자를 대하는 문화에 기반하고 있기도 하다. 유교적 사고에 기반한 지도자에 대한 엄격한 윤리적 기준이 한 축이라면 강한 평등의식과 더불어 민주화 과정에서 나타난 권위에 대한 부정 역시 다른 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

고위 공직자의 윤리성 강화에 대해서 이견이 있을 수 없다. 하지만 그 원칙이 활용되는 방식에 있어서는 개선이 필요하다. 가진 자원이라고는 사람 밖에 없는 나라에서 사람을 다루는 방식은 너무도 초라하다. 누가 하든 거기서 거기이고, 사람은 차고 넘친다는 전제는 타당하지 않다. 전문성과 도덕성이라는 두 가치 사이의 균형을 현실적으로 찾아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무섭게 부각한 중국과 주변 강대국 사이에서 한국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전문성과 유연성이 뒷받침돼야 한다. 사람을 활용하는 용인술이 유일한 경쟁력이자 생존술이다.

모든 제도는 보상구조를 낳고 수혜를 보는 계층이 있게 마련이다. 청문회를 운영하는 국회는 행정부에 대한 견제와 더불어 도덕성 검증을 통해 존재감을 드러내고, 미디어에는 끊임없이 자극적인 기사거리가 제공된다. 윗분들에 대해 호통을 쳐대는 과정에서 국민들은 사이다 같은 통쾌함을 느끼기도 한다. 이런 보상구조가 있는데도 하지 말라는 것은 초콜릿 상자를 열어두고 아이에게 먹지 말라는 것과 같다. 하지만 제도 개선을 원한다면 이런 보상구조를 재편해야 한다.

인사검증과 공직윤리는 분명 중요하고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전문성에 대한 진지한 고려와 후보자에 대한 기본적인 배려 또한 수반되어야 한다. 인사청문회 제도를 통해서 많은 투명성 제고가 이루어졌지만 그 운영 과정에서 종종 본질을 벗어나 정치적 수단이 되어버린 적폐도 쌓아왔고, 왜곡된 보상구조와 선택 방식을 낳았다. 여야가 교체되는 과정에서 그간 서로 수많은 업보를 쌓아왔다. 이제 그걸 풀어야 할 때가 되었다. 그 중심에 사람을 존중하는 원칙을 놓고 제도의 개선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 청문회장이 한국의 생존을 지켜낼 새로운 전사를 만들어 내는 출정식이 된다면 너무나 지나친 바램일까. 위인은 찾아오지 않는다. 그 사회에서 만들어 낼 뿐이다.

이재승 고려대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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