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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도박장에 내 몰리는 대입 수험생

입력
2017.12.01 10:4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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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 대학수학능력시험 전날 지진이 나고 말았다. 물론, 지진으로 인해 고통을 겪고 있는 이재민들이 느끼는 불안감과 상실감에 비하면 수능이 연기되면서 수험생들이 겪었던 혼란 쯤은 아무 것도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수능 일자에 맞추어 최고의 컨디션을 만들기 위해 지난 일년 동안 노력해 온 수험생들이 느낀 허탈감과 다가올 또 다른 일주일에 대한 불안감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아마도 이번 지진과 이로 인한 수능 연기는 꽤나 많은 수험생들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을 지도 모른다. 일 주일 연기된 수능은 무사히 치러졌지만, 만약 일주일 연기된 수능일에 또 다시 지진이 발생했다면 어떠했을까? 그 혼란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매년 11월이 되면 수능일의 날씨는 우리 사회의 가장 큰 관심사 중 하나다. 수험생을 자녀로 둔 부모의 일상은 일 년 내내 수능에 맞춰져 있다. 주변 지인들도 수험생과 수험생 부모들의 눈치를 보며 행여나 그들이 수능을 준비하는데 방해가 되지 않을까, 혹시 그들에게 상처나 주지 않을까 말 한마디도 조심해서 건넨다. 수능 당일에는 교통 혼잡을 피하기 위해 전 국민이 출근 시간을 늦추고 경찰 순찰차와 퀵서비스 오토바이는 수험생들을 고사장으로 실어 나르는 데 여념이 없다. 전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진풍경이다. 올해는 지진으로 수능 일자까지 연기되면서 전 국민의 시계를 일 주일 되돌렸다.

희망하는 대학 진학을 위해 일 년 아니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후 십이 년 동안 준비해 온 모든 것을 단 하루에 평가 받고 그 평가 결과에 따라 진학할 수 있는 대학과 진로가 결정되는 이 불합리함을 우리는 언제까지 지켜볼 것인가? 같은 시간에 같은 문제로 모두가 시험을 치르는 것이 수험생들의 수학 능력을 평가하는 가장 공정한 방법이라는 왜곡된 믿음에 사로잡혀 언제까지 우리 자녀들을 도박장과도 같은 수능 시험장으로 내어 몰 것인가?

수능 제도는 말 그대로 대학에 진학하고자 하는 지원자가 대학에서 수학할 수 있는 일정 수준의 지적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를 평가하고 국가가 인증해 주는 제도다. 그렇다면 여느 인증 시험처럼 수능 또한 연중 수 차례 시행하고 수험생은 원하는 시기에 원하는 횟수만큼 수능을 치른 후 각 대학의 입학 지원 마감일까지 수능 결과를 제출하도록 하면 된다. 대학은 입학 지원자들에게 지원에 필요한 최소한의 수능 점수를 제시하고 지원자들은 수능 점수와 함께 고등학교 재학 기간 동안의 성적과 함께 자신이 지원한 대학과 학과에 입학해야 하는 이유와 타당성을 설명하는 자료를 제출하도록 하고 나머지의 모든 판단은 대학 측에서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리가 늘 비교하기 좋아하는 OECD 회원국 대부분이 대학 입시를 위해 사용하는 방법이다.

그런데 우리는 대부분의 OECD회원국 국민들과는 달리 입시의 주체가 되어야 할 대학도 입시 관련 자료를 기록하고 대학에 제공하는 고등학교도 믿지 못한다. 그래서 정부가 주체가 되어 입시를 진행하고 입시의 전 과정을 관리 감독하고 있다. 정부는 입시 과정의 공정성에 대한 사회 구성원의 요구와 자율적인 학생 선발에 대한 대학의 요구 그리고 수험생의 역량 평가 방법에 대한 타당성 사이에서 접점을 찾아가는 과정 중에 입시 제도를 누더기로 만들어 놓았다. 해 마다 대학 별로 생겨나는 다양한 입시 전형을 얼마나 이해하고 전형에 맞추어 관련 자료를 어떻게 준비하느냐가 입시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완벽함이란 더할 것이 없을 때가 아니라 뺄 것이 없을 때 완성된다.’고 했던 생 텍쥐베리의 표현에서 입시의 해답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누구나 본질적으로 동의하는 단순한 입시제도의 운영을 위해서는 입시운영 주체가 되어야 할 대학교와 고등학교가 사회 구성원의 신뢰를 얻는 일이 먼저다.

박희준 연세대 산업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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