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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이름값 못하는 롯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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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이름값 못하는 롯데

입력
2015.08.02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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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꾼의 아들로 19살 때 무일푼으로 일본에 건너가 신문팔이, 우유배달 등을 하며 학업을 병행한 신격호 롯데 총괄회장은 원래 문학청년이었다. 하숙방에서 세계명작들을 모조리 독파한 신격호가 유난히 감명을 받은 작품이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다. 이 책을 몇 번이나 탐독한 그는 여주인공 ‘샤롯데’의 미모와 인자하고 우아한 인품에 흠뻑 빠졌다. 자신이 막 창업한 회사 작명을 고민하던 신격호는 무릎을 쳤다. 그는 “롯데라는 이름이 떠올랐을 때 충격과 희열을 느꼈다”고 회고했다.

▦ 신격호의 샤롯데에 대한 연모는 기업 이름에 머무르지 않았다. 롯데호텔 샤롯데룸, 샤롯데 초콜릿, 샤롯데씨어터, 샤롯데 카드 등 건물과 브랜드, 서비스 명칭엔 늘 샤롯데가 붙는다. 롯데 영플라자 옥상공원에는 샤롯데 동상이 세워져 있고, 롯데호텔 객실에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비치돼 있다. 신 총괄회장은 직원들에게도 베르테르의 사랑처럼 일과 삶에 대한 정열을 강조했다. “베르테르는 여인 샤롯데에 대한 정열 때문에 즐거웠고 때로는 슬펐으며, 그 정열 속에 자신의 생명을 불사를 수 있었습니다. 일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열이 있으면 어떠한 어려운 일이라도 즐겁게 이겨낼 수 있습니다.”

▦ 롯데 직원들은 회사 성장에 이 독특한 브랜드 이미지가 한 몫을 했다고 여긴다. 롯데라는 좋은 이름 덕분에 연 매출 83조 원에 임직원 10만 명, 80여 개 계열사를 거느린 국내 5대 기업집단으로 클 수 있었다는 것이다. 신 총괄회장은 “롯데라는 이름은 내 일생일대의 최고 수확이자 최고의 선택”이라고 늘 흡족해했다고 한다.

▦ 롯데그룹 ‘형제의 난’이 이런 그룹 이미지에 먹칠을 하고 있다. 베일에 가려졌던 흉한 몰골이 형제간 진흙탕 싸움으로 생생하게 드러나고 있다. ‘광윤사’라는 정체불명의 일본 기업에 그룹 전체의 운명이 달린 후진적 지배구조, 오너의 말 한마디로 이뤄지는 인사, 일본말로 대화를 나누는 신격호 부자의 모습은 기업 이미지를 한 순간에 실추시켰다. 롯데는 소비재, 유통 등 내수로 큰 기업이다. 그렇게 국민의 쌈짓돈으로 축적된 부를 놓고 볼썽사나운 다툼을 벌이고 있으니 더 실망스럽다. 순결ㆍ순수ㆍ정열을 상징하는 ‘샤롯데’에 대한 일반의 심상(心象)도 덩달아 훼손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이충재 논설위원 cj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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