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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석학 칼럼] 어떤 자유세계 질서인가

입력
2017.03.05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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끔찍한 2016년 한 해가 지난 뒤 대부분의 정치분석가들은 자유세계의 질서가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최근 뮌헨안보회의에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 왕이 중국 외교부장,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 등이 이 문제를 놓고 논의했으나 자유질서를 어떻게 규정해야 하는지조차 합의하지 못했다.

서구, 특히 미국이 세계를 지배할 때 자유질서는 무엇이라 규정됐든, 상당히 견고했다. 다른 나라들도 불만을 갖고 대안적 접근법을 주장했지만, 기본적으로는 서구가 정의한 규칙에 순응했다. 그러나 지구적 세력판도가 서구에서 ‘그 외’로 바뀌면서 자유세계 질서도 서구적 관점에 도전하는 떠오르는 강국들, 예를 들면 러시아 중국 인도 등에서 뜨거운 논쟁의 주제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뮌헨에서 메르켈이 러시아의 크림반도 침공과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 지원을 비판하자 라브로프는 서구가 이라크를 침략하고 코소보의 독립을 승인함으로써 국제법상 주권을 무시했다고 응수했다.

자유세계 질서가 전적으로 모호한 개념은 아니다. ‘자유질서 1.0’이라고 불리는 최초의 틀은 2차대전의 잿더미에서 평화와 지구촌 번영을 견인하기 위해 태어났다. 이 틀은 나중에 세계은행(WB)으로 변신한 국제부흥개발은행(IBRD)과 국제통화기금(IMF), 지역안보체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등의 국제기구를 버팀목으로 삼았다. 유엔을 통한 다자주의를 강조하고 자유무역을 증진시켰다.

그러나 자유질서 1.0은 주권국의 국경이란 한계를 갖고 있었다. 미국과 소련의 지정학적 투쟁이 계속되는 상황이어서, ‘세계질서’라고 불리기 어려웠다. 초강대국의 경쟁구도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각국은 기본적으로 비즈니스를 행했다.

그러나 소련 붕괴 후 승리감에 젖은 서구는 자유세계 질서의 개념을 실질적으로 확장시켰다. 그 결과 자유질서 2.0이 각 국가의 국경선 안으로 침투해 그 나라 국민의 인권을 의식하기에 이르렀다.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개별 주권을 지켜야 한다는 것과 달리 확장된 질서는 주권을 공유하고 각국 정부가 지켜야 할 공유된 규칙을 확립하는 데 힘썼다. 여러 면에서 자유질서 2.0은 세계무역기구(WTO)와 국제형사재판소(ICC)와 같은 국제기구, 그리고 보호책임(R2P)이라는 새로운 규범에 의지했고, 서구 이미지에 맞는 세계를 구현하려 애썼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러시아와 중국 등 주권의식에 사로잡힌 국가들이 그 이행을 저지했다. 길어진 이라크 전쟁, 지구적 경제위기와 같은, 서구 정책입안자들이 책임져야 할 재앙적 오류가 자유질서 2.0의 퇴행을 확고히 했다.

그러나 지금은 신생강국들이 썼던 바로 그 주권의 논리로써 서구 스스로가 자신이 만든 질서를 거부하고 있다. 위기에 처한 ICC나 R2P만이 아니다. 영국이 유럽연합(EU)를 거부하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유무역협정과 파리 기후변화협정을 비난하면서 자유질서 1.0의 근본 틀이 흔들리고 있다.

혹자는 서구가 자유질서 2.0을 구축하는 데 과도하게 개입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트럼프의 미국조차도 자유질서 1.0과 그것을 지탱하는 다자주의를 필요로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미래의 기술과 과거의 기구가 결합된 새로운 형태의 세계화에 직면할지 모른다.

이런 시나리오에서 보면 군사개입은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코소보나 시에라리온에서의 대량학살에 대한 서구의 반대가 보여주듯, 질서 구축 목적의 초현대적 형태의 개입은 아니다. 대신 현대적이고 전근대적 형태가 확산될 것이다. 러시아가 시리아에서 행한 것 같은 정부의 압제, 혹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이 중동 전역에서 벌였듯 인종ㆍ종파적 대리전을 지원하는 형태다.

인터넷, 이주, 교역, 그리고 국제법 등은 지구적 규칙에 의해 효과적으로 활용되기보다는 새로운 분쟁에서의 무기로 변질될 것이다. 국제분쟁은 지위에 대한 갈망, 국제기구에 대한 불신, 그리고 편협한 민족주의에 의해 규정되는 국내정치가 촉발한다.

유럽국가는 이런 새로운 형태의 지구적 무질서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확신하지 못한다. 이에 대응할 세 가지 전략이 제기된다.

첫 번째는 독일처럼 국제적으로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어 자신을 책임 있는 이해당사자라고 생각하는 나라가 자유세계 질서의 주된 후견인으로서의 역할을 맡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 시나리오라면 독일은 전세계적으로 자유질서 1.0을 지지하기 위해서, 그리고 유럽 내에서 자유세계 2.0을 지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두 번째 전략은 레젭 타입 에르도한 터키 정부가 실증했듯, 이윤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터키는 현 질서를 뒤집으려 하지 않지만 그것을 지키는 데도 책임감을 느끼지 않는다. 그 대신 터키는 EU와 NATO처럼 서구가 이끄는 국제기구로부터 최대한 많은 것을 얻어내려 하는 한편 그런 국제기구를 종종 훼손하려는 러시아 이란 중국 같은 나라와도 우호적 관계를 지켜나가려 한다.

세 번째 전략은 단순한 위선이다. 유럽은 책임 있는 이해당사자처럼 말하지만 이윤을 극대화하는 것처럼 행동할 수 있다. 이것은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가 미국 워싱턴에서 트럼프를 만났을 때 취했던 방식이다. 그는 NATO와 EU, 그리고 자유무역에 대해 올바른 말만 했지만, 그런 프레임 밖에서 미국과 특별한 거래를 해줄 것을 요청했다.

앞으로 몇 개월 후 많은 지도자들은 자유질서가 살아남을 수 있을지에 대해, 그리고 그런 결과를 가져오기 위해 자원을 투자해야 하는지에 대해 판단할 필요가 있다. 서구는 집단적으로 자유질서 1.0을 지탱할 힘을 갖고 있다. 그러나 서구 강국들이 이 질서에서 얻고자 하는 것에 대해 합의하지 못한다면, 또 이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그들의 책임감이 어떠해야 하는지, 의견 일치를 보지 못한다면 그들은 그런 질서를 지탱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

마크 레너드 유럽외교관계협의회 집행이사 번역/ 황유석 논설위원

번역=황유석 논설위원 ⓒProject Syndic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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