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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학교의 지식교육과 소프트 스킬

입력
2014.12.3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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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수업은 학생들이 배워야 할 지식 내용이 체계적으로 정리된 교과서를 매체로 한다. 교과서 내용은 기초적인 지식과 기본적인 개념들이 반복 또는 보충적으로 제시되면서 높은 수준의 지식으로 확산된다. 수업 과정에서 교사들은 기본 개념을 철저하게 이해시키고, 중요한 사항이나 원리들은 상위 단계의 학습에서 쉽게 응용할 수 있도록 암기시키기도 한다. 이것이 지식교육을 중시하는 학교교육의 모습이다.

그런데 학교 밖에서 기대하는 학교 교육의 모습은 다른 것 같다. 교과서 중심의 체계적인 지식교육을 비판한다. 중요한 개념과 원리를 암기시켜서라도 확고하게 주입시키려는 교사들에 대해 21세기 인재육성 방향과 역행하는 입시위주 교육을 한다고 비난하기도 한다. 이런 비판들은 특히 세계 저명인사들의 발언을 잘못 이해한 데서 오는 것이 많아 안타깝다.

세계적인 미래학자이며 뉴욕대 로스쿨에서 경제학을 가르친 엘빈 토플러는 2006년 한국에서 창의적인 인재육성의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한국 학생들은 미래에 필요하지도 않은 지식과 존재하지도 않을 직업을 위해 하루 10시간 이상을 허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를 근거로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가 인정하는 우리의 초ㆍ중ㆍ고교 지식교육을 깎아내리면서 창의력 교육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지식교육을 비판하는 또 다른 단면은 학교교육이 취업에 필요한 소프트 스킬을 중시해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다. 펜실베이니아대 경영대학원에서 리더십과 커뮤니케이션 기술을 가르치는 페기 클라우스의 저서 소프트 스킬에 대한 불편한 진실이 2009년에 번역서로 출간된 뒤 우리 교육에 대한 비판의 강도는 더욱 높아졌다. 취업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그리고 성공적인 직장생활을 하기 위해 지식과 기술을 뜻하는 하드 스킬보다 자기관리, 인간관계, 의사소통, 리더십 등을 뜻하는 소프트 스킬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비판들은 대학ㆍ사회 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지식 습득이 주된 책임인 보통교육과 전공 영역을 중시하는 대학교육을 구분하지 않는 데서 오는 오해다. 이를 테면 법학대학원이나 경영대학원 수준의 학생들에게 적용해야 할 교육과 초ㆍ중등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을 동일 범주에서 비판한 것들이다.

엘빈 토플러는 기본적인 지식교육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페기 클라우수도 하드 스킬이 필요조건으로서 매우 중요하며 다만 충분조건이 아니기에 소프트 스킬의 보완이 필요하다고 언급하고 있다. 하드 스킬과 소프트 스킬의 관계에 대한 논쟁 중에는 소프트 스킬을 향상시키기 위해 하드 스킬은 불가결한 것이며 초ㆍ중ㆍ고에서 중점적으로 지도하는 언어 능력과 계산 능력이 소프트 스킬 향상에 필수적이라는 분석도 있다. 학교교육에서 지식교육이 중요하지 않다거나 심지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는 비판론자들이 참고해야 할 관점이라고 여겨진다.

지난 4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12년 시행된 PISA의 문제 해결력 평가 국제비교에서 한국이 싱가포르에 이어 2위를 차지했고, 3위는 일본이라는 결과를 발표했다. 이 분석을 바탕으로 영국의 피어슨 교육연구소는 지식위주 교육과 암기학습이 고차원적인 문제 해결력과 소프트 스킬 향상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심층연구 결과를 발표했고, 대표적인 국가로 한국을 꼽았다. 연구 책임자였던 마이클 바버 박사는 교육자들이 ‘더 이상 지식은 필요 없다. 필요한 것은 소프트 스킬이다’라는 상투적인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주문했으며 두 가지는 조화를 이뤄야 한다고 했다.

지금 학교 교육에 대한 논의와 정책 방향에서 지식교육은 경시되고 상대적으로 창의력과 문제 해결력만이 지나치게 강조되는 경우를 흔히 본다. 학교는 여기에 소프트 스킬을 배양해야 한다는 부담까지 추가적으로 요구받고 있다. 기본적인 지식 기반이 갖춰진다면 창의력과 소프트 기술은 효과적으로 길러질 수 있다. 그런 차원에서 이해와 암기의 지식교육은 중요하다. 기본적인 지식교육만큼은 학교에서 책임져야 한다는 교육적 신념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 선생님들의 사기를 꺾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승호 전남 목상고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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