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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석학 칼럼] 두 가지 현실 이야기

입력
2018.05.06 18:33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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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디킨스의 소설 ‘두 도시 이야기’에 나오는 도입부는 오늘날까지도 통하는 데가 있다. 디킨스는 “최고의 시기지만 최악의 시절이었다. 지혜의 시대이면서 어리석음의 시대이기도 했다. 믿음의 봄이었지만 불신의 겨울이었다”고 소설을 시작했다.

프랑스혁명 시기 런던과 파리를 무대로 한 디킨스의 고전소설은 구체제(앙시앙 레짐) 독재의 불의와 프랑스혁명의 과도함을 동시에 비판하고 있다. 두 세기도 더 지난 뒤 저우언라이(周恩來) 전 중국 총리는 프랑스혁명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에 “답하기에 너무 이르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저 재치있는 답변이 오해의 소산인지는 몰라도, 디킨스가 글을 쓰던 시기의 모순을 완벽하게 포착하고 있다.

루이 16세에 맞서 프랑스를 봉기시킨 계몽사상은 미국 혁명도 촉발시켰다. 그리고 두 사건은 산업화의 시작이라는 시대 사조의 변화를 낳는 배경이 된다. 보다 자유로운 정치체제와 혁신적인 과학발전의 결합은 인류 역사의 가장 번영된 시기를 열어젖혔다.

영국 경제학자 앵거스 매디슨은 1인당 GDP가 AD 1년에서 1820년까지 두 배 이상 늘지 않았지만 1820~2008년 사이에는 10배 이상 증가했다고 추정했다. 그리고 눈부신 성장은 광범위한 사회ㆍ경제 지표의 개선을 동반했다. 일례로 전세계의 평균수명은 단 2세기 만에 31세에서 73세로 늘어났다. 2세기 전만 해도 과학계나 의학계는 질병의 세균 이론을 인정하지 않았고, 소고기 냄새가 비만을 유발한다고 믿었다. 과학적 이해의 급격한 진보가 이뤄진 요즘은 그런 믿음이 기괴하게 보인다. 우리는 이제 인간게놈을 읽을 뿐아니라 편집하고 쓸 수 있는 방법까지 배우고 있다.

하버드대 심리학과 스티븐 핑커 교수는 이런 성취를 “계몽이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설명한다. 나아가 핑커 교수는 지난 몇세기 동안 거시경제 지표가 반영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윤리적 진보가 이뤄졌다고 주장한다. 그는 개인과 집단의 권리 보호 확장 및 전체 폭력 감소 등을 예로 들고 있다.

계몽주의의 성취는 저평가되는 경향이 있는데 우리가 일상적이고 전형적인 진보보다 재난을 기억하고 정상화하는데 익숙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편견은 의사결정에 해로울 뿐아니라 지나치게 자기만족적이다. 결국, 사람들이 미래를 불안해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계몽주의의 부산물이기도 하다.

노벨 경제학자인 앵거스 디턴은 2013년 저서 ‘위대한 탈출’에서 지난 250년 동안 빈곤과 기아, 조기사망률을 줄이는 진보가 있었지만 그 과정에서 여러 사회 집단이 어떻게 낙오했는지를 보여준다. 최근 중국 같은 국가의 경제성장으로 세계적 수준의 불평등은 크게 완화했지만 많은 연구에서 국가 내부 불평등은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미국 같은 국가에서는 상당수 인구가 적절한 의학적 치료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고 심지어 민주주의조차 악화하는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당선을 포함해 전세계에 등장한 포퓰리즘은 세계화의 혜택을 놓친 사람들과 연결시킬 수 있다. 트럼프 정책의 상당수는 부유층 감세가 아니라 경제 엘리트의 특권을 영속화시키는 데 있다. 트럼프는 낙오자들의 두려움을 전혀 고심하지 않는 대신, 전형적인 유인판매 상술로 이를 위장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중국을 미국 경제위기의 요인으로 꼽았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 전략 및 외국 문물 공포는 국제협력을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18세기 후반을 강타한 사회 혁명의 잠재적이고 해로운 유산 가운데 하나인 민족주의가 국수주의와 외국인 혐오증에 이어 부활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계몽주의의 과학기술적 유산 또한 완전히 긍정적이지 않다. 1938년 아인슈타인의 이론과 핵분열의 발견은 원자력 발전을 가능케 했지만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핵무기 투하는 물론 체르노빌과 후쿠시마의 재앙을 초래했다. 기술적 진보는 주요한 국가기반시설을 사이버공격에 취약하게 노출시켰고, 2008년 위기는 금융공학 자체에 위험요소가 탑재돼 있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이런 모든 위험은 인류가 직면한 최대 위협인 기후변화로 이어진다. 이 위협의 특징은 단일 충격으로 갑작스런 형태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도리어 그 위협은 누적적 현상이고, 우리가 여전히 완화할 수 있다. 기술의 진보가 우리를 곤경에 빠뜨렸던 것처럼 그들이 우리를 구할 수도 있다. 기술 혁신은 세계가 오존층 침식을 멈추게 하는 방법을 찾는 데 있다. 87년 몬트리올의정서를 채택하려는 국제적 노력도 동반돼야 한다.

다행히 과학은 그 합리성으로 인해 과도한 영역을 개선하기 위한 도구를 만들 수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오늘날 정치지도자들은 이런 도구에 손댈 생각도 없다. 세계는 공동경영과 국제협력을 통해 과학기술의 혜택을 극대화하려는 지도자들을 갈구하고 있다. 이런 리더십이 없다면 계량적으로 최선의 시기가 최악이 될 수도 있다.

하비에르 솔라나 전 EU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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