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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 포커스] 자기만족은 없다, 음원 거인 자이언티

입력
2017.02.01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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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화대교’로 인기 누렸지만

가정사 알려지며 스트레스

솔뿐 아니라 보사노바ㆍ포크

익숙함ㆍ새로움 함께 내세워

내 시각으로 만든 앨범이라

제목을 안경 닮은 ‘OO’로

음악 작업실에서 포즈를 취한 가수 자이언티. 그는 YG엔터테인먼트 내 흑인 음악 레이블인 더 블랙에서 작곡가 테디 등의 도움을 받아 새 앨범 ‘OO’ 작업을 진행했다. YG엔터테인먼트 제공
음악 작업실에서 포즈를 취한 가수 자이언티. 그는 YG엔터테인먼트 내 흑인 음악 레이블인 더 블랙에서 작곡가 테디 등의 도움을 받아 새 앨범 ‘OO’ 작업을 진행했다. YG엔터테인먼트 제공

“내 노래 유명해지지 않았으면” 한다는 자이언티의 속내

“이 노래는 유명해지지 않았으면 해” 가수 자이언티(본명 김해솔)는 신곡 ‘노래’에서 “사람들이 가사를 못 외웠으면 해”라고 노래한다. 자신이 만들고 부른 노래가 뜨지 않길 바라는 가수라니. 곡이 누군가에 사랑을 받았으면 좋겠지만, 너무 많이 알려져 금세 소비되고 잊혀지지 않길 바라는 어린아이 같은 투정에 풋웃음이 터진다.

1일 오후 서울 마포구 YG엔터테인먼트 내 흑인 음악 레이블 더 블랙의 사무실에서 만난 자이언티는 새 앨범 ‘오오’(OO)의 타이틀곡 ‘노래’에 대해 “저만 알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에 알려져 겪는 아이러니를 생각하며 쓴 곡”이라고 말했다. 2015년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에 소개돼 ‘양화대교’가 큰 인기를 누렸지만, 이로 인해 자신만의 가정사를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며 아는 척하는 묘한 상황에 대한 이야기란 발언이었다.

흑인 음악을 기반으로 랩을 하듯 노래하는 자이언티의 음악에는 ‘허세’가 없다. 반어적 익살이 그의 무기다. 자이언티는 또 다른 신곡 ‘콤플렉스’에서 “내가 아이돌이었음 좋겠어, 사랑 노래만 쓰면 되니까”라며 아이돌이 랩을 하듯 “예, 오 예”라고 너스레를 떤다. 자이언티가 마이크를 잡고 건네는 위악은 유쾌하고, 정감마저 든다. 서슬 퍼런 독기를 내뿜는 래퍼들보단 순하지만, 여느 리듬앤블루스(R&B) 가수처럼 뻔한 사랑 이야기를 노래하지 않는다. 자이언티가 ’OO’에서 보여준, 흑인 음악을 하는 다른 가수와의 차별점이다.

자이언티는 사진과 달리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선글라스를 벗고 인터뷰에 임했다. "안경 쓸까요?" 선글라스를 벗은 그를 취재진이 알아보지 못하자 너스레를 떨었다. YG엔터테인먼트 제공
자이언티는 사진과 달리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선글라스를 벗고 인터뷰에 임했다. "안경 쓸까요?" 선글라스를 벗은 그를 취재진이 알아보지 못하자 너스레를 떨었다. YG엔터테인먼트 제공

‘도깨비 OST’ 철옹성 허문 ‘음원 거인’

자신 만의 음악적 언어를 지닌 자이언티는 ‘OO’로 이날 ‘도깨비’OST가 세운 철옹성을 깼다. 타이틀곡 ‘노래’를 비롯해 수록 곡 ‘콤플렉스’는 멜론 등 8개 음원 사이트에서 1~2위를 휩쓸었다. ’첫눈처럼 너에게 가겠다’ 등 드라마 ‘도깨비’ 열풍을 등에 업고 그간 차트를 장악해 온 OST를 밀어 내고 앨범 수록 곡 6곡으로 ‘차트 줄세우기’를 했다.

음악적 새로움과 익숙함을 동시에 내세운 전략이 통했다. 자이언티는 ‘OO’에서 영미 권에서 유행하는 네오 솔 스타일로 노래를 해 곡에 세련됨을 주면서도, 아날로그 악기를 기반으로 복고풍 멜로디를 깔아 편안함을 준다. 보사노바(‘영화관’)부터 포크 음악(‘바람’)을 연상케 하는 그의 ‘아날로그 실험’은 인상적이다. 자이언티는 “담백하고 싶었다”고 음악적 변화를 준 이유를 들려줬다. “악기처럼 (변화무쌍하게)노래”(래퍼 양동근)하는 자이언트의 개성 강한 창법이 소박한 음악에 얹혀져 묘한 매력을 준다. 박준우 흑인음악평론가는 자이언티의 인기 비결로 “솔 음악을 한국적으로 표현해내는 음색”을 꼽았다.

처음부터 ‘음원 거인’였던 건 아니다. 자이언티는 데뷔 곡 ‘클릭 미’를 만든 뒤 음원 유통사에 직접 전화를 걸어 자신의 음원을 팔았다. 소속사 없이 홍익대 인근 클럽에서 활동하던 2011년의 일이다. 2013년 낸 1집 ‘레드 라이트’로 흑인 음악 마니아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탄 그는 2년 뒤 ‘양화대교’와 ‘꺼내 먹어요’가 연달아 히트하며 이름을 알렸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그는 당시 ‘치유 전도사’로 불렸다. ‘양화대교’로 집안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젊은 가장을, ‘꺼내 먹어요’로 ‘절벽 사회’에 살며 생계에 허덕이는 이들을 보듬은 덕분이다. ‘도도해’와 ‘베이비’ 등 데뷔 초기 사랑노래에 집중했던 이 R&B 가수는 삶의 이면을 들추며 음악의 폭을 넓혔다. 김상화 음악평론가는 자이언티를 “지나친 자기만족에 빠지지 않고 공감을 주는 생활밀착형 가사로 대중적 폭발력을 키운 점”에 의미를 뒀다.

자이언티는 신곡 '콤플렉스'를 쓴 이유에 대해 "모두가 지닌 콤플렉스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CJ E&M제공
자이언티는 신곡 '콤플렉스'를 쓴 이유에 대해 "모두가 지닌 콤플렉스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CJ E&M제공

“랩이 마음에 들지 않아”… 선글라스 쓰고 무대 오른 소심한 청년

노래로 얻은 인기에 대해 자이언트는 “말 못할 심적인 어려움들이 있었다”며 오히려 부담스러워했다. “워낙 내성적인 성격인데, 세상의 관심을 받게 되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는 고충도 털어놨다. 특히 “‘양화대교’ 한 곡으로 자신이 규정되는 게 싫었다”고. “‘양화대교’가 내 또 다른 콤플렉스”라는 말까지 했다. 음악적 다양함을 보여줘 이 틀을 깨기 위해 자이언티는 이번에 싱글이 아닌 앨범을 냈다. 그가 정규 앨범을 내기는 ‘레드 라이트’ 이후 5년 만이다.

자이언티는 예루살렘의 성지의 언덕을 뜻하는 시온(Zion)과 십자가를 은유하는 ‘T’를 조합해 만든 예명이다. 이름에서 엿볼 수 있듯 그는 음악 활동도 교회에서 악기를 다루며 시작했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으로 키보드를 샀고 자신의 방이 없어 거실에 악기를 놓은 뒤 작곡을 시작했다. 17세 때 힙합 음악에 빠져 랩을 쓰기도 했으나, 자신의 랩이 마음에 들지 않아 R&B 가수로 전향했다. “유년 시절 혼자 보내는 시간이 정말 많았던” 성격 탓에 쓸쓸하고 자조가 짙은 곡이 주로 떠올랐다. 남 앞에 서는 것이 두려워 “아버지 선글라스를 끼고” 무대에 오르기 시작한 소심했던 청년은 어느새 흑인 R&B 시장에서 ‘별’이 됐다. “시력은 좋다”면서도 자신을 표현하는 소품으로 선글라스를 꼽은 그는 “제 시각으로 만든 앨범이란 뜻에서 제목을 안경 같은 ‘OO’로 표현했다”고 했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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