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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차용증 ‘점 하나’… 산산이 부서진 60년 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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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차용증 ‘점 하나’… 산산이 부서진 60년 우정

입력
2018.08.08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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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 0.5% 이율 덧칠해 지워 5%로 

 변제액 부풀린 80대 여고동창생 

[저작권 한국일보]삽화 우정 차용증_신동준 기자/2018-08-07(한국일보)
[저작권 한국일보]삽화 우정 차용증_신동준 기자/2018-08-07(한국일보)

반세기 우정도 돈 앞에선 무용지물이었다. 60여 년 전 여고 1년 선후배로 만난 A(80)씨와 B(79)씨는 졸업 뒤에도 끈끈한 우애를 이어갔다. 사랑 상담으로 설레던 20대, 결혼 생활과 자녀 양육 등 고충을 나누던 30, 40대, 자녀 결혼과 손주 얘기로 시간가는 줄 몰랐던 50, 60대를 지나 70대에 접어들면서는 보다 안정적인 노후 생활을 위한 부동산 투자에 함께 눈을 돌렸다.

A씨는 자신보다 앞서 부동산 투자공부를 하고, 실제 재미를 쏠쏠하게 봤던 B씨에 대한 믿음이 컸다. 그러던 A씨에게 재작년 9월 실투자 기회가 왔다. 투자 가치가 있어 보이는 아파트를 점 찍어 구매하기로 마음먹고, B씨로부터 빌린 6,000만원을 보태 계약을 끝냈다. 당시 B씨는 차용증을 수기로 작성한 것은 물론 금리도 연 0.5%로 사실상 원금만 갚으면 될 정도로 적극 도움을 줬다.

1년 반 정도가 지나면서 사달이 났다. A씨가 빌린 돈을 제때 갚지 못했고, 결국 지난 3월 주택담보대출을 받는 식으로 빚을 내 빚을 갚기로 했다. 그런데 대출을 받으려 은행 창구를 찾은 A씨는 뜻밖에도 “주택이 가압류돼 있어 대출이 불가능하다”는 답을 받았다. B씨가 그 무렵 법원을 찾아가 가압류 신청을 한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것이다.

그뿐 아니었다. 웬일인지 변제금액 또한 생각했던 것보다 규모가 컸다. 약속한 0.5% 이율대로라면 6,000만원에 몇 십 만원 정도 이자만 붙어야 했지만, 가압류를 풀기 위해 갚아야 할 금액은 6,500만원이 넘었다. 가압류서류를 꼼꼼히 읽던 A씨는 둘 사이 수기로 작성된 차용증에 적힌 금리가 0.5%가 아닌 5%로 바뀐 걸 발견했다. 그는 “볼펜으로 숫자 ‘0.5’에서 ‘0.’을 덧칠해 지운 흔적이 뚜렷했다”고 했다. 더 줘야 할 돈은 500만원 정도지만 A씨는 배신감에 친구를 경찰에 신고했다. 순간의 악감정과 수백 만원 이자 때문에 반세기를 훌쩍 넘기도록 쌓아 올린 여고동창생의 공든 우정이 와르르 무너져 버린 것이다.

서울 동작경찰서는 B씨를 사문서위조 등 혐의로 불구속 입건해 조사 중이라고 7일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두 사람 진술이 엇갈리고 있어 조사를 더 진행해 봐야 사실관계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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