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박재원
학부모 대변인

등록 : 2017.04.25 15:42
수정 : 2017.04.25 16:34

[삶과 문화] 사교육은 교육이 아니다!

등록 : 2017.04.25 15:42
수정 : 2017.04.25 16:34

사교육은 망국병! 누가 아니라고 할까. 하지만 '진단과 처방'은 제각각이다. '우리나라에 사교육이 없다면?' 꼭 필요한 질문이다.

맥킨지 보고서는 중산층 재무위기의 원인으로 과다한 사교육비를 꼽고 있다. 결혼 기피, 저출산, 불안한 노후 등 사회의 존립기반 자체를 흔드는 여러 문제의 배후에 하나같이 사교육이 자리잡고 있다.

허구한 날 사교육의 심각성을 외치는 사회지만 문제 해결을 향해서는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사교육의 치명적 결과, 바로 사교육이 우리 교육의 질서를 파괴했다는 사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조기교육은 나이라는 질서를, 선행학습은 학년이라는 질서를 무너뜨렸다. 질서가 무너진 교육은 전쟁이다. 더 일찍, 더 많이 사교육 시키기 경쟁은 아수라장이다. 경제력과 정보력을 무기로 상류층 부모들이 먼저 포문을 열면 모든 국민이 공포 분위기에 휩싸인다. 태내수학까지 하는 옆집 엄마 때문에 조급해졌는데 어떻게 멀리 볼 수 있단 말인가. 영어유치원에 다니는 옆집 아이를 보고 불안해졌는데 어떻게 함께 가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 수능 수학을 공부하는 초등학생을 보면서 어떻게 꿈을 꾸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 전쟁터 같은 상황에서 ‘학부모’로 살 수밖에 없도록 해놓고 ‘부모’로서의 품위를 지켜 평화롭게 살라는 말, 말이 안 되는 소리를 한다. 수십조 원을 사교육비로 쓰는 가정 경제는 흔들리고 부부싸움에 아이들에게 신경질을 부리기까지 삶의 질은 곤두박질친다.

독일이 선행학습을 커닝과 같은 부정행위로 판결하는 이유를 생각해봐야 한다. 질서의 파괴와 혼란을 원천 봉쇄하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야구장 패러독스란 말이 있다. 앞줄에 앉은 사람이 일어서 앞을 가리니 모두가 일어선 상황, 어느덧 서있는 모두가 피로감을 느껴 앉고 싶지만 혼자 앉으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 계속 서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 피로감 정도가 아니라 이미 죽을 지경인데도 앉지 못하는 현실.

"제발 한 날 한 시에 모두 그만 두었으면 좋겠어요." 한 엄마의 절규에서 사교육 문제 해결의 방향을 찾아야 한다.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조기교육 금지(영유아 인권법), 학원 휴일휴무제와 선행교육 금지 등의 공약 채택을 요구하고 있지만 법적인 규제에 반대하는 분위기다. 공교육 정상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사교육 문제가 해소될 수 있도록 하자는데, 순진하고 한심하다. 나는 사교육 규제, 교육적 질서 회복의 절박한 필요성을 인정한다면 ‘사교육은 교육이 아니다’라고 법에 규정해 마땅하다고 주장한다.

학원 휴일휴무제만 시행돼도 당장 생계가 어려워지는 사람이 많아질 것이다. 하지만 전쟁을 멈추고 평화를 되찾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는 사실을 헤아려주기 바란다. 함께 연착륙 정책을 마련해야지 무산시키려고 하면 안 된다. 붕괴된 질서의 회복이라는 관점을 취하지 않는 한 사교육 대책은 계속 빗나갈 것이다.

‘해방 안 될 줄 알았다’는, 일제의 밀정이 된 자의 심정, 지금 대한민국 학부모들의 심정과 비슷하지 않을까. 온갖 반칙과 편법이 난무하는, 극도의 무질서 상태에서 각자도생하느라 희망을 포기한 학부모들이 이제는 함께 자리에 앉아 안정을 취할 수 있도록 국가가 적극 나서야 한다. 그래야 법적 규제를 피해 몰래 사교육을 시키고 싶은 욕망에서 벗어나 나이에 맞는 배움, 학년에 맞는 교육이라는 질서 회복에 동참하지 않겠는가. 사교육 규제는 헌법정신에도 맞다. 또 간절한 바람이 있으니, 제발 학부모들에게 학원 보내라고 말하는 학교 선생님이 없어지기를! 요즘 내 주변에는 질서를 되찾아 살림살이도 나아지고 아이들과 웃으면서 지내는 가정이 늘고 있다. 교육에 질서가 잡히면 누구나 누릴 행복이다.

박재원 학부모 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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