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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는 파격적 기행만으론 안 돼 꼼꼼하고 성실하게 일하는 분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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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는 파격적 기행만으론 안 돼 꼼꼼하고 성실하게 일하는 분들이죠”

입력
2018.09.04 04:4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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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강석경 ‘일하는 예술가들’ 

 연극배우 故백성희 인터뷰 추가 

 출간 32년 만에 개정증보판 내 

'일하는 예술가들' 저자 강석경 작가. 예술가의 파격이 아니라 성실함을 봐달라는 게 강 작가의 바람이다. 열화당 제공
'일하는 예술가들' 저자 강석경 작가. 예술가의 파격이 아니라 성실함을 봐달라는 게 강 작가의 바람이다. 열화당 제공

“증보판을 내겠다는 연락을 받고는 저도 깜짝 놀랬어요. 아니 이 책을 다시? 예술에 관한 좋은 책을 어떻게든 유지시키겠다는 출판사 열화당의 의지와 뚝심에 정말 경의를 표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3일 전화로 연결된 강석경(67) 작가의 목소리는 무척 흥분되어 있었다. ‘일하는 예술가들’ 개정증보판을 내게 돼서다. 책의 운명이란 참 기이한 것이다. 이 책은 베스트셀러이기는커녕 그 동안 총 판매부수가 1만부를 채 넘기지 못한 책이다. 성적표치곤 초라한데 그 기간이 더 놀랍다. 첫 출간은 1986년이었으니 그 이후 30여년간 계속 생명력을 유지한 셈이다. 가늘게 가늘게 이어져온 책이다.

어떤 매력이었을까. 책 자체는 간결하다. 황병기(1936~2018), 김중업(1922~1988), 유영국(1916~2002), 장욱진(1917~1990), 이매방(1927~2015), 박생광(1904~1985) 등 흔히 일가를 이뤘다는 예술가 14명에 대한 인터뷰집이다. 개정증보판을 내면서 연극배우 백성희(1925~2016)를 추가했으니 모두 15명으로 늘었다.


책의 포인트는 제목에 들어간 ‘일하는’이다. “술 취해 주사부리는 그런 기인 같은 존재, 이상한 언행을 일삼는 남다른 천재, 지금도 그렇지만 그 때는 예술가에 대해 그런 고정관념이 정말 강했거든요. 그걸 깨주고 싶었어요. 예술가란 엄청 꼼꼼하고 성실한 노력파라는 사실을 알려드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일하는’이라는 표현을 제목에다 넣었지요.” 영감, 천재 따윈 별 내용 없는 이들이 스스로를 요란하게 포장할 때나 쓰는 허무맹랑한 소리다. 그래서 예술가에 대한 책인데, 예술세계에 대한 ‘썰’ 혹은 예술가에 대한 ‘아부’가 없다. 대신 그들이 왜 이런 작품을,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낼 수 밖에 없는가에 대한 얘기들이 가득하다.

처음엔 가벼운 마음이었다. 문학잡지에서 예술가들 인터뷰 연재를 의뢰 받았다. 조소과 출신인 강 작가는 평소 존경하던 미술가들을 만날 욕심에 응낙했다. 그런데 만나다 보니 그들의 성실함이 눈에 들어왔다. “파격적 기행만 강조하면 그건 일종의 데카당스죠. 예술계는요, 아무리 천재라도 노력 없으면 2~3년이면 끝이에요. 그 분들 작업방식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정말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물론 ‘예술가들의 자유로운 영혼’을 부인하는 건 아니다. 지금이야 흔한 얘기라지만 1980년대엔 그게 뭔지도 잘 모를 시절인데 이매방 선생은 “동성애 끼가 있으니까 내가 춤추는 거여”라고 대놓고 말하기도 한다. 백성희 선생만 해도 무대에 한번 서는 게 너무 고통스러울 정도로 준비에 준비를 거듭하는 사람이었지만 무대 밖에선 파격이었다. “전해들은 얘기이긴 한데요, 어느 파티에서 어울려 놀다가 갑자기 옷을 벗더니 올 누드로 수영을 하시더래요. 일흔의 나이에! 그 성실하고 꼼꼼하신 분이!”

그래서 ‘일하는 예술가들’에 대한 가장 유명한 일화는 채시라가 나왔던 1991년 광고다. 지금 ‘최인아 책방’을 운영하는 최인아 전 제일기획 부사장이 제일기획에서 일할 당시 이 책을 보고 감명 받아 ‘그녀는 프로다, 프로는 아름답다’는 카피를 뽑아냈다. 광고계 ‘최인아 신화’의 출발점이었다.

이 책의 운명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많이 팔린 책이 아니라서 제가 먼저 뭐라고 말하기는 그렇네요.” 강 작가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하지만 ‘일하는 예술가들’의 생명은 당분간 이어질 것 같다. 이수정 열화당 기획실장은 “많지 않지만 계속 내주길 간절히 바라는 독자들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면서 “수록 예술가분들이 한 분씩 돌아가시면서 역사적 기록의 가치도 있는 만큼 전자책 발간 등으로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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