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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어둠을 그린 영화 4

입력
2016.11.12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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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저녁 박근혜 퇴진을 위한 2차 국민행동이 열린 광화문 광장의 모습. 고영권기자youngkoh@hankookilbo.com
지난 5일 저녁 박근혜 퇴진을 위한 2차 국민행동이 열린 광화문 광장의 모습. 고영권기자youngkoh@hankookilbo.com

12일 서울 광화문과 종로, 서울시청 일대에 촛불이 켜진다. 최대 100만명이 모일 것이란 예상이 나오고 있다. 구호는 ‘하야’와 ‘퇴진’이다. 성난 민심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한가롭게 영화나 보고 있을 때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영화를 보고 나면 현실이 더 영화 같다는 사실에 기분이 한층 착잡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영화에서 얻은 교훈이 현실을 밝히는 작은 촛불 하나가 돼 줄 지도 모른다. 정치권력, 더 정확하게는 대통령의 어두운 이면을 다룬 영화들을 골랐다. 영화 속 대통령들은 전횡을 부리다 결국 몰락한다. ‘사필귀정’이다. ‘최순실(혹은 박근혜) 게이트’의 결말도 사필귀정이길 바라본다.

영화 제목 ‘맨츄리안 캔디데이트’는 꼭두각시를 뜻한다.
영화 제목 ‘맨츄리안 캔디데이트’는 꼭두각시를 뜻한다.

‘맨츄리안 캔디데이트’(2004)

제목만 봐도 씁쓸하다. ‘맨츄리안 캔디데이트(Manchurian Candidate)’는 꼭두각시, 세뇌된 사람이라는 뜻이다. 애써 떨쳐내려 해도 어떤 얼굴이 떠오르는 걸 막을 수가 없다.

영화에도 배후 조종자가 등장한다. 군산복합체 기업인 맨츄리안이다. 이 기업으로부터 후원을 받고 있는 정치인 엘리노 쇼(메릴 스트립)가 자신의 아들 레이몬드 쇼(리브 슈라이더)를 미국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정치공작을 펼치는 이야기가 그려진다. 엘리노는 레이몬드를 걸프전에 참전시켜 영웅으로 이미지 조작을 하고, 그렇게 유력 정치인으로 성장한 레이몬드는 부통령에까지 당선된다. 물론 그 과정에서 방해가 되는 세력은 모두 제거된다. 미국이 어떻게 전쟁 미치광이가 됐는지, 그 이면에 숨겨진 정치권력과 군산복합체의 유착관계를 보여준다.

이 영화에서 특히 흥미로운 건, 이미지 조작의 방법이 ‘세뇌’라는 사실이다. 레이몬드의 부대원은 물론이고 레이몬드까지도 엘리노에 의해 세뇌 당한다. 이 영화의 제목이 ‘맨츄리안 캔디데이트’인 이유다. 세뇌로 정치권력을 차지한다는 설정이 황당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2016년 대한민국에는 영화가 아닌 ‘현실’이다. 최태민 목사 때부터 40년간 이어져온 최씨 일가와 박근혜 대통령의 기이한 관계를 두고 ‘세뇌’라는 단어가 종종 등장하고 있다. 둘을 비교하며 곱씹을수록 기분이 참담해진다.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수백억을 갖다 바치고도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던 대기업들도 수사를 받고 있다. 영화에서 부패한 정치와 검은 돈이 공모자이듯 현실에서도 둘이 공모한 정황이 짙다. 지금 대한민국은 그 자체로 블록버스터급 정치스릴러다.

이 영화는 1962년 존 프랑켄하이머 감독의 동명 영화를 ‘양들의 침묵’(1991)의 조나단 드미 감독이 2004년 리메이크했다. 현실만큼은 리메이크되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여러모로 반면교사 삼을 만한 영화다.

‘닉슨’은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하야한 미국 대통령 닉슨의 삶을 그린 전기영화다.
‘닉슨’은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하야한 미국 대통령 닉슨의 삶을 그린 전기영화다.

‘닉슨’(1996)

최순실씨의 국정 농단 사태는 ‘최순실 게이트’를 넘어서 ‘박근혜 게이트’라 불리고 있다. 여기서 ‘게이트’가 바로 미국 최대의 정치스캔들로 불리는 ‘워터게이트 사건’에서 비롯된 접미사다. 최순실(또는 박근혜) 게이트와 워터게이트 사건은 40여년의 시간차에도 동일선상에서 비교되며 정치권력에 대한 근본적 의문을 던지고 있다. 닉슨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사기꾼이 아니다.” 박 대통령도 말했다.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이 됐나.” 여러모로 닮은꼴이다.

워터게이트 사건은 1972년 미국 워싱턴의 워터게이트빌딩에 입주한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에 도청장치를 갖고 침입한 괴한 다섯 명이 체포되는 사건에서 비롯된다. 그 배후에 당시 재선을 준비 중이던 공화당 대권주자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있다는 의혹이 불거진다. FBI가 수사에 뛰어들고 닉슨과 그 주변 사람들은 사건을 은폐하려 애쓴다. 그 와중에도 닉슨은 재선에 성공하지만, 상원 청문회에서 닉슨의 보좌관이 대통령 집무실 대화가 기록된 비밀 테이프의 존재를 폭로하면서 사태가 급변한다. 테이프를 공개하라는 여론이 빗발치고, 이에 맞서 닉슨은 워터게이트 사건을 조사 중인 특별검사를 해임하는 초강수를 두지만 연방대법원의 판결로 새로 공개된 테이프에서 닉슨의 연루 사실이 밝혀진다. 사면초가에 몰린 닉슨은 결국 1974년 하야한다. 대통령이 임기 중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난 건 미국 역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이 워터게이트 사건을 다룬 영화가 바로 ‘닉슨’이다. 하지만 사건 자체보다는 닉슨이라는 문제적 인물의 내면에 초점을 맞춘다. 압도적인 지지율을 얻고 있는 상황에서 왜 무리한 정치공작을 저질렀는지, 많은 이들이 의구심을 품었던 문제를 사적 접근을 통해 탐구한 영화인 셈이다. 그래서 시나리오 단계부터 찬반논쟁을 불러오기도 했다. 영화는 회상장면을 통해 닉슨의 심리를 드러낸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대통령이 되기까지의 행로를 살펴보면서 그의 열등감과 자괴감, 과도한 승부욕 등 어두운 이면을 포착한다.

현 시국과 관련해 박 대통령의 심리 상태에 대한 분석이 쏟아지고 있다. 총탄에 부모를 잃고 사회와 단절돼 살아오면서 최씨 일가에 대한 심리적 의존이 커졌을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이 심리 분석이 국정농단에 대한 면죄부는 결코 될 수 없지만, 사태의 해법을 찾아가는 데 하나의 단초는 될 수도 있다. ‘닉슨’은 거대한 정치적 사건에 맞닥뜨린 한국사회가 앞으로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 하는지 참고사례 삼아 볼 만한 영화다.

저널리즘의 본령을 보여준 영화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의 한 장면.
저널리즘의 본령을 보여준 영화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의 한 장면.

‘대통령의 음모’(1976)

‘대통령의 음모’는 ‘닉슨’과 묶어서 같이 보면 좋다. 마찬가지로 워터게이트 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접근법은 다르다.

이 영화는 3년간 끈질기게 워터게이트 사건을 추적한 미 유력 일간지 워싱턴 포스트 기자 밥 우드워드(로버트 레드포드)와 칼 번스타인(더스틴 호프먼)의 분투를 그린다. 도청장치를 지닌 괴한들에 대한 재판에서 수상한 징후를 발견한 이들은 의혹을 파헤치기 위해 취재에 착수한다. 괴한들의 주변에서 시작해 닉슨의 최측근까지 취재 대상을 좁혀가는 과정에서 ‘딥 스로트’(Deep Throat)라 불린 정체불명의 정보원으로부터 도움도 받는다(이 정보원이 당시 FBI 부국장이었던 마크 펠트였다는 사실이 2005년 밝혀진다). 두 기자가 조각난 진실의 퍼즐을 맞춰가는 과정은 웬만한 스릴러 못지않게 긴장감이 넘쳐 손에 땀을 쥐게 한다.

하지만 영화는 닉슨의 하야를 보여주진 않는다. 워터게이트 사건이 불러올 엄청난 파장을 예감케 하면서 끝을 맺는다. 그리고 영화는 실제 현실과 맞닿으며 연속성을 지니게 되고 관객들에게 더 큰 울림을 안긴다. 영화는 두 기자가 워터게이트 특종 취재기와 그 비화를 엮어 발간한 책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All the President’s men)을 토대로 로버트 레드포드가 제작과 주연을 맡아 만들어졌다.

정치권력의 위협과 방해에도 흔들리지 않는 워싱턴 포스트의 저널리즘의 정신은 2016년 대한민국 언론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때 일부 언론들은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형광등 100개를 켜놓은 듯한 아우라”라고 치켜세우는 등 낯뜨거운 용비어천가를 부르기도 했다. 편파 보도와 왜곡 보도는 언론의 일상 풍경이었다. 하지만 청와대의 비선과 그들의 만행을 추적해 세상에 드러낸 것 또한 언론이었다. 검찰이 사태를 무마하려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올 만큼 늦장을 부리는 사이 언론이 수사를 대신하다시피 했다. 그 과정에서 태블릿 PC에 담긴 문서들이 나왔고 핵심 관계자들의 증언도 쏟아져 나왔다. ‘대통령의 음모’는 이번 사태의 진실이 드러날 때까지 감시하고 추적해야 하는 임무를 맡은 우리 언론이 꼭 봐야 할 영화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오른쪽)가 연출과 주연을 맡은 ‘앱솔루트 파워’는 권력의 추악한 이면을 들춘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오른쪽)가 연출과 주연을 맡은 ‘앱솔루트 파워’는 권력의 추악한 이면을 들춘다.

‘앱솔루트 파워’(1997)

정치권력의 추악한 이면을 낱낱이 드러낸 영화다. 제목마저 ‘절대 권력(Absolute Power)’이다.

30년 동안 보석 도둑으로 명성을 날린 루터(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말년을 편안히 보내고자 한탕을 계획한다. 워싱턴의 거부이자 정계의 막후 실력자 설리번(E. G. 마셜)의 빈 집에 잠입한 루터는 우연히 대통령(진 해크만)과 설리반의 젊은 아내 크리스티(멜로라 하딘) 사이의 성관계를 목격한다. 대통령의 변태적 행위에 크리스티가 저항하다 비밀요원에 의해 사살되고, 현장은 강도의 행각으로 위장된다.

이후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흘리며 반드시 범인을 잡겠다고 공언하자, 루터는 분개한다. 뒤늦게 현장에 목격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비밀요원들이 루터의 뒤를 쫓고, 이에 맞서 루터는 작전을 꾸미기 시작한다. 변장술에 능한 루터의 신출귀몰한 면모가 스릴러의 맛을 더한다.

이 영화는 대통령을 호색한에 거짓말쟁이로 묘사한다. 또한 살인을 저지른 범법자이고, 막후 실력자에게 조종 당하는 꼭두각시이기도 하다. 평생을 범법 행위를 하며 살아온 도둑이 개탄하면서 진실 규명에 나설 정도로 도덕과 윤리를 내팽개친 인물이다. ‘의적’ 같은 루터의 활약이 통쾌하게 다가오는 건 현실이 오버랩 됐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청와대는 고립무원이다. 콘크리트 같이 견고하던 지지층마저 등을 돌렸다. 5% 지지율도 위태롭다. ‘앱솔루트 파워’ 즉 절대 권력이라는 반어적 제목엔 대통령의 권력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담겨 있다. 지금 국민들이 청와대를 바라보는 시선도 마찬가지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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