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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보기] 음악은 보존이 필요한 문화 자산이다

입력
2017.10.20 13: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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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은 대개 다음과 같은 네 가지 단계를 거치며 확장된다. 처음은 독립적인 소수에 의해 어떤 새로운 문화가 탄생하는 단계다. 이 때까지는 별난 취급을 받을 뿐, 그 문화는 아직 존중 받지 못한다. 두 번째는 낯설고 특이한 것에 호감 갖는 이들이 모여드는 단계다. 최초의 향유자들은 대중 일반에 비해 더 젊고 혁신적이며 ‘힙’하기 때문에, 새로운 문화는 서서히 일종의 지위재화가 된다.

다음은 평론가와 신문, 잡지, 그 밖의 대중매체가 따라붙는 단계다. 이 때 그 문화는 권위를 부여 받는 대신 하나의 형식화된 장르로 박제된다. 마지막은 드디어 대중에 널리 퍼져서 모두가 향유하는 문화가 되는 단계다. 이 때가 되면 한때 새로웠던 그 문화는 기성문화의 일부가 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여기에 반발하는 또 다른 새로운 문화가 다시 싹을 틔운다.

처음부터 대중에게 판매하려는 목적으로 기획된 문화상품을 제외하면, 이제는 흔히 보급된 문화예술 대부분이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쳤다고 해도 좋다. 그 문화는 자생적인 것일 수도 있고 외국의 영향을 받은 것일 수도 있다. 또는 오랜 과거의 문화를 복원한 것일 수도 있다. 어떤 유형이든 시작단계에선 ‘문화예술’ 대우를 받기 어려웠다는 점은 마찬가지다. 비보잉조차 국내 댄스팀들이 외국에서 주목 받기 전까지는 진지한 무용으로 거의 인정받지 못했다.

그런데 모든 문화예술이 마지막 단계까지 확장되어 대중의 품에 안기지는 못한다. 그 이유는 해당 문화집단에 속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문화를 퍼뜨리기를 원치 않았거나, 혹은 여전히 일부 남아있는 검열과 규제 때문일 수 있다. 아니면 단지 알려질 기회를 얻지 못했을 수도 있다. 이유는 다양하지만 한 세대를 풍미했거나 특정 지역을 거의 대표하던 문화예술조차 대중에 알려지기 전 단계에 머물다 사라지는 일은 드물지 않다.

이런 사정은 음악에서 더 두드러진다. 최근 이삼십 년 동안 음악의 유통경로는 연주회에서 음반으로, mp3로, 스트리밍으로 빠르게 변했다. 듣는 방식이 달라지자 보편적인 공감을 얻은 몇몇 음악이 더욱 확산된 반면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획일적인 음악 취향이 들어앉았다. 그 기준에 들어맞지 않는, 즉 상업적인 가치가 떨어지는 음악은 유통망을 타지 못한다. 그러나 음악은 본디 재생할 때마다 매번 같은 녹음본이 아니라 연주하고 따라 부를 때마다 달라지는 무형의 물질이다. 아직 상품이 되지 않은, 새로운 문화적 현상으로 등장한 음악일수록 더욱 그렇다.

과거 갖가지 실험을 했던, 국내보다 해외에 더 많이 알려졌던 독립음악가들의 음악이 그랬다. 옛날 시민들이 함께 부르던 민중가들도 그랬다. 지금은 사라진 지역 스포츠 팀의, 한때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비공식 주제가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런 음악들은 누군가의 기억에만 남아있을 뿐 점차 사라져가는 것처럼 보인다. 심지어 90년대엔 중고등학생들도 듣던 언더그라운드 힙합 음악마저 몇몇 유명곡을 제외하면 다시 듣기가 어려운 지경이다.

이런 음악들은 그것을 듣고 따라 부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특정 부류의 사람들이 모여야만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말하자면 공동체의 음악이다. 그 음악을 공유하던 집단이 바뀌거나 사라지면 음악도 함께 사라진다. 비교적 작은 집단일지언정 사람들을 모이게끔 하는 힘이 있는 음악이 사라져간다는 사실은, 이미 다양하고 수준 높은 음악 생산물들이 있지만 충분히 보존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책은 도서관에서, 영화는 영상자료원에서 보존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음악 자산들은 유지 계승의 대상인 전통음악을 제외하면 그다지 보존되지 않는 것 같다. 옛날 한국영화 중에는 대단한 히트작임에도 필름이 남아있지 않은 작품이 많다. 수집과 보존이 늦어서다. 상업음악이 아닌 음악들도 사회적 차원의 아카이빙이 필요한 시점이다.

손이상 문화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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