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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의냐 정부 면피냐… 도마 오른 공론화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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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의냐 정부 면피냐… 도마 오른 공론화제도

입력
2018.08.06 04:40
수정
2018.08.06 07:53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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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입 개편 답 못찾고 갈등만 유발 

 “정부가 정책결정 책임 방기” 비판 

 공론화 과정서 정부 청사진 실종도 

 오송역 명칭ㆍ광주 도시철도 2호선 

 제주 영리병원 등 의제 줄줄이 대기 

 “결정권 위임, 정부 태도 문제” 지적 

 적절한 의제 등 검토할 기구 필요 

김영란(왼쪽) 공론화위원회 위원장이 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대입제도 개편 공론화위원회의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홍인기 기자
김영란(왼쪽) 공론화위원회 위원장이 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대입제도 개편 공론화위원회의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홍인기 기자

대입제도개편 공론화위원회가 2022학년도 대입 개편 방향에 대한 명확한 답을 찾지 못하면서 민감한 정책결정을 시민에게 맡기는 공론화 제도 자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제도개편을 1년 미루면서까지 ‘숙의민주주의’를 거쳤는데도 의견차이가 좁아지긴커녕 교육계 갈등만 부추겼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의견이 첨예하게 맞서는 사안에 대해 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대신 시민 대표들에게 해당 사안을 숙지시키고 토론을 거쳐 의견을 수렴하겠다는 취지는 좋지만 정책결정의 책임을 ‘면피’하는 수단으로 활용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5일 현재 정부 각 부처와 지방자치단체는 사회적 논쟁이 첨예한 10여가지 사안에 대해 시민참여 공론화 과정을 진행하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규제개혁과 관련 공론화를 추진 중이고, 부산 북항재개발지역 오페라하우스 건립 중단여부, 청주 KTX 오송역 명칭 변경 문제, 광주 광주도시철도 2호선 건설여부, 제주의 첫 영리병원인 녹지국제병원 개원여부 등이 공론화 의제로 결정됐다.

이 중 특히 교육분야에서 공론화로 결정되는 사안이 많다. 교육부는 대입개편안 외에도 ‘학생부 신뢰도 제고 권고안’을 일종의 ‘작은 공론화’인 정책숙려제 방식으로 결정키로 했다. 하반기에는 학교폭력 관련 제도 및 방과후 영어수업 금지여부 등을 정책숙려제로 결정할 예정이다. 서울시교육청이 지난달부터 ‘편안한 교복’ 가이드라인에 대한 공론화를 추진하는 등 각 시도교육청 단위의 공론화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정부나 지자체는 각종 정책을 공론화에 부치는 이유로 ‘숙의의 효과’를 든다. 공론조사 제도는 이해관계가 다른 시민들이 의제를 직접 학습하고 토론해 ‘공공의 지혜’를 형성한다고 가정한다. 내용을 잘 모른 채 기존에 갖고 있던 의견만을 밝히는 여론조사보다 한층 진일보한 선택이라는 것이다.

뻔한 이해관계자들이 모이는 공청회와 달리 연령과 직업 등을 인구비례로 고려해 시민대표를 선정하고, 토론 과정에서 시민들이 민주적 의사결정을 경험하는 것도 장점이다. 대입개편 공론화위 시민참여단 김태웅(39)씨는 “’대입제도는 어차피 정권 맘대로 바뀌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나처럼 평범한 사람의 의견도 정책에 반영되는 중요한 기회라 생각해 더 열심히 공부하고 토론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신고리원전 5ㆍ6호기 공론화위원회 참여자도 “일부 전문가들이 부실한 자료를 내놓고 과장된 어조로 호소할 경우 시민들이 날카롭게 질의했다”며 시민의 수준이 높아 놀랐다고 말했다.

그래픽=강준구 기자
그래픽=강준구 기자

그러나 공론화를 거치면서 정부의 청사진이 실종되는 일이 빈번하다. 문재인 정부는 고교학점제와 성취평가제 등 공교육 정상화 정책을 공약했지만, 대입 공론화위 시민참여단은 ‘정시 비중을 늘리고 수능 절대평가는 중장기적으로 시행하자’고 했다. 지난달 발표된 학생부 신뢰도 제고 권고안’ 정책숙려제에서도 시민참여단은 ‘학생부 종합전형에서 수상경력 등을 삭제하겠다’던 교육부의 정책기조와 정반대의 결정을 내렸다.

전문가들은 ‘정책 결정권을 완전히 위임하겠다’는 정부의 태도가 문제를 부른다고 말한다. 공론화는 정책의 보조수단일 뿐인데 정부가 시민에게 최종 결정을 떠맡기는 것은 책임 회피라는 지적이다.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시민참여단에게는 국가의 교육비전과 방향 논의를 맡겨야 하는데 수능전형 비중과 같은 극히 구체적인 사항을 결정해달라고 떠넘기고 이에 따르겠다고 하는 것은 ‘공직자 패배주의’”라고 비판했다. 논의 기간도 짧은데 공론화위의 결정으로 사안이 종결되다 보니, 시민대표들의 토론 내용이 사회적으로 확산되는 2차 공론화 과정 없이 ‘격리된 시민들끼리의 공론화’로 끝나버리는 부작용도 지적되고 있다.

찬반으로 내용이 분명히 갈리는 사안만 공론화에 부치는 등 공론화 대상 의제에 대한 기준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신고리원전 공론화위와 이번 대입제도개편 공론화위에 모두 참여했던 한 전문가는 “신고리원전과 달리 대입제도개편은 시나리오형으로 진행돼 의제가 불분명했고 서로 배타적이지도 않았다”며 “국민들이 공론조사 결과를 합리적으로 수용하려면 쟁점 차이가 명료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상반기에 진행된 지자체 공론화 중 인천시교육청의 ‘청라 A아파트 초등학교 배정문제’는 학부모간 만족한 결론을 내리지 못한 반면 ‘KTX오송역 명칭 변경 찬반’을 가리는 청주시의 공론화는 성공적으로 진행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은재호 한국행정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국가공론화위원회 같은 전담 기구를 만들어 해당 의제가 공론화에 적절한지 검토하고 전체적인 설계의 일관성, 계획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ㆍ전국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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