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따르릉~ 개가수 나가십니다

알림

따르릉~ 개가수 나가십니다

입력
2017.06.28 04:40
0 0

개그맨 김영철은 요즘 자신을 개그맨이 아닌 ‘신인가수’라고 소개한다. 지난 4월 발매한 EDM 트로트 ‘따르릉’이 온라인 음원차트 트로트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하며 인기를 끌고 있어서다. 가수 홍진영이 작곡 작사한 ‘따르릉’은 일렉트로닉, 트로트 장르를 결합해 코믹하면서도 세련된 분위기를 자아낸다. 홍진영은 발매 전 가수를 정하기 위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공개 오디션을 알렸고, 김영철이 개그맨 허경환과 대결을 펼쳐 곡의 주인이 됐다.

김영철 뿐 만이 아니다. 그룹 유브이(유세윤·뮤지)는 그룹 슈퍼주니어의 멤버 신동과 3인조를 이뤄 2일 신곡 ‘메리 맨’을 내놓았다. 1980년대 인기를 끈 그룹 소방차 콘셉트에 특유의 ‘B급 개그’ 코드를 가미해 웃음을 끌어낸다. 개그맨 정형돈과 래퍼 데프콘은 형돈이와 대준이라는 이름으로 대선을 앞둔 4월 ‘장미대선’을, 개그맨 박수홍은 클럽 음악 ‘클러버’를 최근 발표하며 한동안 사그라졌던 ‘개가수’(개그맨+가수) 열풍에 다시 불을 지피고 있다.

요즘 노래하는 개그맨은 웃자고 마이크를 잡지 않는다. 가수 활동이라는, 오랫동안 품어 왔던 꿈을 이루거나, 자기 자신을 더욱 명확히 알리는 수단으로 음악을 활용하는 모양새다. 활동에 임하는 이들의 태도부터 다르다. 한층 더 진중해졌다. ‘개가수’들은 직접 작곡 작사에 참여하고, 음악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정식 가수로서 역량을 드러낸다. 유쾌한 음악과 코믹한 안무로 웃음을 자아내지만, 마냥 우스워 보이지 않는 이유다.

개그맨 김영철은 한국음악실연자연합회에 회원 등록을 하고 22일 정식 가수가 됐다. '따르릉' 뮤직비디오 화면 캡처
개그맨 김영철은 한국음악실연자연합회에 회원 등록을 하고 22일 정식 가수가 됐다. '따르릉' 뮤직비디오 화면 캡처

김영철은 음실련 가입, 박수홍은 페스티벌 개최

무대 위에선 익살스러운 춤사위를 선보이지만, 김영철이 음악을 대하는 태도는 제법 진지하다. 그는 Mnet ‘엠카운트다운’, SBS ‘인기가요’, MBC ‘쇼 음악중심’ 등 여러 음악프로그램의 무대를 돌더니, KBS2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홍진영과 함께 가수 박선주, 김범수의 발라드 ‘남과 여’를 열창하며 대중이 생각지 못했던 모습을 선사했다. 22일에는 한국음악실연자연합회(음실련)에 회원 등록을 해 정식 가수가 됐다. 이벤트성으로 노래를 발표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가수’가 되고 싶은 의지를 분명히 하고 노래에 서툴러도 혼신을 다하니, 과장된 표정을 남발해도 밉다는 반응을 찾아보기 힘들다.

SBS 예능프로그램 ‘미운 우리 새끼’를 통해 ‘클러버’라는 별명을 얻은 박수홍은 아예 클럽 음악을 발매하고 가수가 됐다. 프로듀서 돈스파이크의 도움을 받아 직접 작곡, 작사에 참여해 지난 11일 ‘클러버’를, 18일에는 ‘쏘리맘’을 발표하고 활동 중이다. 그는 가수에 대한 꿈을 오래 전부터 품어왔다. 청년 시절 가수가 되고 싶어 작곡 노트를 만들었고, 1990년 개그맨 시험을 볼 때는 피아노를 치면서 개그를 펼쳤다. 박수홍은 “예전에 가수가 되고 싶은 마음에 매일 날달걀을 먹기도 했다”며 “‘감자골 4인방’(개그맨 김국진 김용만 김수용과 결성한 그룹)과 낸 앨범이 망하고 개그맨 활동을 이어가면서 마음을 접었는데, 너무 하고 싶던 일이라 도전하게 됐다”고 말했다. 박수홍은 더 나아가 대규모 전자 댄스 음악(EDM) 페스티벌 브랜드를 8월 말 선보이며 음악 활동 범위를 확장할 계획이다.

개그맨들끼리 모여 유행어를 조합하고, 동요를 리메이크해 크리스마스 캐롤 음반을 제작하던 행위는 옛일이 됐다. 개그맨들은 여느 가수들에게 뒤지지 않게 짜임새 있는 음악을 만들고 다양한 마케팅을 통해 공격적으로 음악 활동을 펼치고 있다. 트렌디한 감성을 살리고 직접 작곡 작사에 참여하며 음악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내는 것도 최근 ‘개가수’의 변화된 모습이다. 김반야 음악평론가는 “유브이, 형돈이와 대준이 이후 대중도 좋은 음악이라면 개그맨의 음악이라도 진지하게 받아들일 자세가 돼 있는 듯하다”고 분석했다.

개그맨 박수홍은 신곡 '쏘리맘'에 "쟤가 왜 저럴까"라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삽입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티밥미디어 제공
개그맨 박수홍은 신곡 '쏘리맘'에 "쟤가 왜 저럴까"라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삽입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티밥미디어 제공

시국이 만든 제 2의 ‘개가수’ 열풍

유브이, 형돈이와 대준이 열풍 이후 잠잠하던 ‘개가수’들이 다시 두각을 나타낸 것은 시국의 변화와도 무관치 않다.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이어진 박근혜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대통령 탄핵과 새 대통령 선출로 일단락되면서 연예계의 연성 콘텐츠가 대중의 눈길을 끌고 있다. 정석희 대중문화평론가는 “전국적으로 큰 사회, 정치 이슈가 생기면 논란거리에 집중하다가, 사태가 어느 정도 정리되면 머리를 식힐 수 있는 가벼운 콘텐츠에 시선이 쏠리기 마련”이라며 “이전부터 반복돼 온 자연스러운 사회현상”이라고 설명했다.

MBC ‘복면가왕’, SBS ‘판타스틱 듀오’ 등 개그맨이 노래 실력을 과시할 수 있는 음악 예능프로그램이 늘어나고, 반대로 가수가 예능인으로 자리 잡는 등 연예계 영역 구분이 희미해지고 있는 현실도 개그맨 겸업 가수들의 복귀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김반야 평론가는 “개그맨이 웃기는 역할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 가수의 역량이 잠재된 예술인으로 비춰지게 되면서 가수 데뷔에 대한 부담도 줄었다”며 “전문가가 아니라도 정식으로 음원을 발매하는 가수인 만큼 자신의 음악에 대한 정체성이나 책임 의식이 있어야 대중의 공감을 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소라 기자 wtnsora21@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