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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代에 이만한 얘기, 용기일까 만용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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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代에 이만한 얘기, 용기일까 만용일까

입력
2015.02.09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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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만에 돌아온 설치작가 양혜규

리움서 '코끼리를 쏘다…' 전시회

자연과 인간 존엄 회복 메시지

독일 예술가 오스카 슐레머의 ‘삼부작 발레’ 무용수를 조각으로 재해석한 ‘소리 나는 인물들’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양혜규 작가. 양씨는 “나에 대해 궁금증을 어느 정도 해소하는 전시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리움 제공
독일 예술가 오스카 슐레머의 ‘삼부작 발레’ 무용수를 조각으로 재해석한 ‘소리 나는 인물들’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양혜규 작가. 양씨는 “나에 대해 궁금증을 어느 정도 해소하는 전시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리움 제공

양혜규(44)가 돌아왔다. 5년 만이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 이태원로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12일 개막하는 ‘코끼리를 쏘다 象 코끼리를 생각하다’는 그가 고국에서 여는 세번째 전시회다. 세계적인 설치작가, 백남준을 잇는 차세대 기대주, 노마드 작가라는 수식어가 그를 따라 다니지만 이제 양혜규는 이름 석 자 외에 굳이 수식어가 필요하지 않을 만큼 성장했다. 2014년 독일 국제미술시장 정보업체 아트팩트넷 선정 ‘세계 300위 이내 작가’에 백남준, 김수자와 함께 꼽히기도 했다. 대학 졸업하고 베를린으로 유학을 떠난 이래 한국보다는 외국에서 주로 활동해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이름은 아니지만 동시대 작가군 중에서는 단연 우뚝하다.

인천 사동의 한 폐가에서 열린 2006년 첫 개인전 이후 2009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대표로 선정된 양씨는 개인의 삶 속에 배태된 사회 정치적 맥락을 짚는 작업과 공감각적인 블라인드 설치 작업으로 단번에 스타로 떠올랐다. 이번 전시는 2010년 서울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린 두번째 개인전 이후 세계 주요 미술관을 돌며 전방위적 역량을 뽐내던 그의 성과를 오랜만에 확인할 수 있는 반가운 자리다. 2001년 이후 발표한 대표작부터 새로운 오브제까지 총망라했는데 한층 넓고 깊어진 작품 세계 속에 중견 작가로서의 진지한 고민도 엿보인다.

35점이 설치된 전시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는데 어디에서도 전시 제목인 코끼리를 찾아볼 수는 없다. 조지 오웰의 수필 ‘코끼리를 쏘다’와 로맹 가리의 소설 ‘하늘의 뿌리’에서 가져온 소재 코끼리는 인간에 의해 파괴되는 순수하고 약한 존재이면서 강인하고 잔인한 자연 그 자체를 의미하는 상징일 뿐이다. 상실된 자연과 인간의 본질적 존엄 회복이라는 추상적인 메시지를 전한다. 작가는 “생물학적으로 이 나이밖에 안 되는 작가가 이 정도 얘기를 해도 되나 의심해 봤다. 만용이라면 만용이고 용기라면 용기다”라면서도 “꼭 하고 싶었던 얘기”라고 했다.

인공 짚풀을 엮어 사원과 인체를 연상시키는 조각을 만든 신작 ‘중간유형’. 리움 제공
인공 짚풀을 엮어 사원과 인체를 연상시키는 조각을 만든 신작 ‘중간유형’. 리움 제공

아래층 그라운드 갤러리에는 블라인드와 방울에 이어 작가의 새로운 오브제로 선택 받은 짚풀을 이용한 신작 등 토속적인 상상력이 주를 이룬다. 이번 전시를 통해 국내외 처음 선보이는 ‘중간 유형’은 여러 문화권에 흩어져 있으면서 다른 특징으로 발전된 짚풀을 통해 각 문화 간 차이 너머의 어떤 보편성을 이끌어 낸다. 고대 마야의 피라미드 ‘엘 카스티요’나 인도네시아 불교 유적 ‘보로부두르’, 러시아의 이슬람 사원 ‘라라 툴판’을 닮은 대형 구조물 3점과 토템처럼 보이는 인체를 형상화한 조각 6점이 흩어져 있는 이 공간은 관람자로 하여금 미술관을 코끼리가 뛰어다닐 만한 광활한 어떤 장소에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보안코드가 새겨진 콜라주 연작을 거대한 형상처럼 키워 설치한 ‘그 위에서 내려다보는 사자춤’이나 건강염려증에 또 외모지상주의에 빠진 서울 사람들의 모습을 해학적으로 표현한 ‘서울 근성’, 괴목에 바둑판을 박아 넣은 ‘정지’ 역시 기복을 비는 주술과 토템의 일종으로 읽힌다. 그런가 하면 작가 자신의 토템도 끌어냈다. 전시장 한 켠 작가의 오늘이 있게 한 23점의 초기작들을 운송업체 포장 상태 그대로 쌓아 놓은 작품 ‘창고 피스’를 두고 작가는 “젊은날의 초상 같은 의미”라고 했다. “보관할 곳이 없어 짐이 되어버린 초창기 작품들을 궁여지책 작품으로 엮은 것으로 마지막 한 번만 전시하고 죽이자 했는데, 2007년 독일의 미술품 수집가 악셀 하우브록에게 팔려” 보존이 가능했다.

위층 전시장 블랙박스에는 전형적인 양혜규 블라인드 설치작인 ‘성채’와 반짝이는 놋쇠 도금 방울로 뒤덮인 여섯 개의 조각 ‘소리 나는 인물들’과 3단으로 부착된 8개의 선풍기 ‘바람이 도는 궤도’로 구성된 ‘상자에 가둔 발레’가 전혀 다른 분위기로 관람객을 맞는다. 작품에 포커스를 맞춘 조명 없이 일렬조명과 자연광으로 무심한 듯한 자연 그대로의 분위기를 만든 그라운드 갤러리와 달리 컴컴한 가운데 집중도를 높인 이 공간에 들어서면 300m²가량의 압도적인 블라인드 구조물이 관람객을 유인한다. 작가는 성채 내부를 걷는 관람객으로 하여금 8가지 향과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 유동하는 빛의 공감각적 느낌을 공유하게 해 잠시나마 공동체에 속하게 한다. 물론 성채를 벗어나는 순간 해체되는 임의적이고 느슨한 집단이다. 공동체와 이웃을 다룬 또다른 작품으로는 그라운드 갤러리에 설치된 ‘VIP 학생회’가 있다. 여러 인사들로부터 의자와 탁자를 기부 받아 흩트려 놓고 관람객들의 쉼터로 구성했는데, 대여자, 관람객, 작가, 미술관이 임시적인 공동체를 이루게 하려는 구상이다.

이번 전시는 앞으로의 양혜규에게 어떤 파격과 도전이 뒤따를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만든다. 로비에 설치된 미니멀리즘 조각가 솔 르윗의 입방체 조각을 거꾸로 뒤집어 23배 키운 구조물 ‘솔 르윗 뒤집기’는 그 신호탄 같은 의미다. 태현선 리움 수석큐레이터는 “단일한 모듈의 반복되는 작가의 개성과 주관을 최소화한 미니멀리즘 방법론으로 재료의 미학적 특성이 수렴된 작품으로 구성이라는 의무로부터 해방을 꾀했다”며 “작가의 기존 블라인드 작업의 새로운 전환으로 읽힌다”고 평가했다. 전시는 5월 10일까지. (02)2014-6901

채지은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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