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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진
패션 칼럼니스트

등록 : 2017.10.18 04:40
수정 : 2017.10.18 18:57

[박세진의 입기, 읽기] 오버사이즈 패션의 귀환, 그 숨은 까닭은

등록 : 2017.10.18 04:40
수정 : 2017.10.18 18:57

셀린느의 2018 봄ㆍ여름 컬렉션

얼마 전 마무리 된 2018 봄ㆍ여름 패션위크에선 오버사이즈 옷이 여전히 많이 등장했다. 루이 뷔통은 블라우스에 오버사이즈 티셔츠를 껴입는 패션을, 프라다는 오버사이즈 웨이스트코트와 가죽 베스트를 선보였다.

이자벨 마랑, 톰 브라운, 발렌시아가도 마찬가지였고, 특히 셀린느의 옷은 대부분 어딘가 부풀어 있었다.

한동안 슬림한 옷이 주류였고 스키니진도 사이즈를 낮춰 입던 시절이 있었다. 몇 년 전부터 오버사이즈 옷이 다시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 패션은 원래 돌고 도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간단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 볼 것이 있다.

오버사이즈라는 트렌드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이런 옷이 등장한 몇 가지 이유를 만날 수 있다. 역시 세계 대전이 큰 영향을 미쳤다. 대규모 전쟁과 이에 동반된 기술 발전으로 여성은 기성 영역에서 나와 보다 사회적 활동을 하게 됐다. 특히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여성복은 대대적 변화를 겪었다. 여성들은 코르셋이나 호블 스커트(발목 길이의 통이 좁은 치마)를 멀리 하고 셰이프리스룩(무정형의 옷)이나 오버사이즈룩 같은 보다 편안한 옷차림을 하게 됐다.

2차 세계대전은 규모가 훨씬 컸고 많은 나라가 물자 제한을 실시했다. 더 많은 여성이 공장 등에서 일하게 되면서 오버올(상ㆍ하의가 연결된 작업복)이나 사료 포대 자루로 만든 드레스에 익숙해져야 했다. 편한 옷에 익숙해진 여성들은, 전쟁이 끝난 뒤 디올이 다시 코르셋 착용을 강요하자 반대 시위를 열기도 했다.

오버사이즈에 있어 또 다른 중요한 시점은 1980년대다. 여성들이 본격적으로 전문 직업 분야와 고위직으로 발돋움을 하기 시작한 때다. 여성들은 직장에서 결코 ‘여성스럽게’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캘빈 클라인이나 아르마니의 파워 숄더 재킷을 입었다. 또한 꼼 데 가르송이나 요지 야마모토에서 내놓은 아방가르드 패션은 서양식 의복의 성(性) 구분을 지워버린 새로운 모습이라는 점에서 각광받았다.

남성복은 최근 20여년 정도를 빼면 거의 오버사이즈가 주류였다. 때문에 오버사이즈 룩은 여성의 사회 진출과 더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 최근 들어 그 이유는 더 다양해졌다. 예컨대 과장된 모양으로 페미니즘을 강조하거나 젠더ㆍ소수자 편견을 극복하려는 이들이 있다. 또 후줄근한 룩으로 자기 중심적 패션이나 사회에 대한 반항을 표현하려 하기도 한다. 결국 “내 몸과 옷차림을 지금까지 보던 방식으로 보지 말라”는 메시지다.

미우미우의 2018 봄ㆍ여름 컬렉션

하이 패션은 항상 이런 식으로 사회적 이슈를 이야기한다. 물론 상업적이다. 오버사이즈 재킷이나 보디수트, 슬로건이 적힌 티셔츠는 전부 팔려고 만든다. 예전에는 제 손으로 옷을 찢거나 티셔츠에 슬로건을 적었다면, 이제는 일류 디자이너들이 옷을 그렇게 만들어 판다. 슬로건이 남발되는 와중에 프라발 그룽의 패션쇼 맨 앞줄에 미국 여성운동의 대모인 글로리아 스타이넘이 앉아 있던 것이 그나마 상징적으로 보이는 정도다.

상업적이라고 해서 이런 움직임이 다 쓸데없는 일인가 하면 그렇지 않다. 디올의 페미니스트 티셔츠나 셀린느의 오버사이즈 재킷은 자신의 신념을 증명하는 값비싼 티켓 같은 게 아니다. 신념을 증명하는 건 가시성 좋은 공익 광고의 역할로 충분하다. 지금 해야 할 말을 모두 볼 수 있게 드러내는 건 생각보다 쓸모 있는 일이다.

물론 그저 최신의 트렌드라는 이유로 입는 사람들도 있다. 유희는 옷이 아닌 패션이 줄 수 있는 큰 즐거움 중 하나다. 하지만 또한 중요한 건 특정한 의지와 목적을 갖고 오버사이즈를 입는 사람도 생겨난다는 사실이다. 캣워크 위의 모델이든 레드 카펫 위의 배우든, 누군가 입고 있는 걸 보고 누군가 영향을 받는다. 이런 전복적 룩은 핏의 통념을 흔들고 뭐가 문제였는지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든다. 옷을 만드는 건 디자이너의 몫이겠지만, 그 맥락을 가지고 무엇을 하느냐는 결국 입는 이들의 몫인 법이다.

패션칼럼니스트

셀린느의 2018 봄ㆍ여름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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