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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노조 할 거냐” 사상 검증 면접…기자 경력 없어도 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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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노조 할 거냐” 사상 검증 면접…기자 경력 없어도 OK

입력
2018.08.27 04:40
수정
2018.08.27 08:51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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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파업 경력 불법 채용]

경력 채용시 ‘노조’ 질문 쏟아져

친노조적 성향이면 최하점 탈락

경력 미달ㆍ아나운서를 기자 채용

인력대체 급급 무더기 합격시켜

지원자 아닌데도 면접 끼워 넣고

계약직 점수 올려 정규직 전환도

[저작권 한국일보]MBC 경력기자 채용 일지. 신동준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MBC 경력기자 채용 일지. 신동준 기자

2012년 MBC 노조가 6개월이라는 최장 파업기록을 향해 달려가는 동안 사측은 ‘MBC 정상화’ 명분을 내세우며 인력 수급에 적극 나섰다. MBC 정상화라는 표현은 2010년 원세훈 원장 당시 국가정보원이 작성한 ‘MBC 정상화 전략 및 추진방안’ 문건에 처음 등장한다. 문건에는 ‘고강도 인적 쇄신’ 등에 초점을 맞춰 ‘MBC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을 추진한다‘는 문구는 담겨있다.

실제 사측은 파업기간에만 4차례에 걸쳐 전문계약직(3명), 계약직(4명), 1차 시용(14명), 2차 시용(5명) 등 경력기자 26명을 뽑았다. ‘시험적으로 고용하고 약속된 기간이 지나면 정식 채용한다’는, 당시 언론계엔 생소했던 시용(試用) 개념까지 적용했다. 반면 파업이 끝나자 파업 참여자들에게 해고(6명), 정직(38명), 대기발령(120명)이라는 중징계를 쏟아냈다. 국정원 문건에 나온 대로 본격 ‘인력 물갈이’에 나선 것이다.

다수의 MBC 관계자는 사측이 계약직ㆍ시용 경력기자를 뽑으면서 자격 미달인 지원자들을 비정상적인 절차로 대거 합격시켰다고 증언한다. 허위로 경력을 부풀려 채용했는가 하면, 노골적인 내부 추천은 물론이고, 지원하지도 않은 사람이 면접에 등장하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전환 조건을 완화하거나 점수를 올려 정규직으로 바꿔주는 ‘무리수’도 뒀다. 공영방송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하기엔 부끄러울 정도, ‘동네 구멍가게’에서도 보기 힘든 채용 관련 비위와 비리들이 난무했다는 뜻이다.

“뽑아주면 노조 할거냐”

당시 경력기자 채용 면접과정에선 노조와 파업에 관한 질문이 쉴 새 없이 나왔다. 현재 다니는 직장에서 노조에 가입했는지 묻는 것은 기본, “(MBC가) 뽑아주면 노조 할 거냐” 등도 노골적으로 질문했다. “MBC 파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노조가 왜 파업을 한다고 생각하느냐” 등 다수 면접관이 돌아가면서 당시 진행 중이던 MBC 파업 관련 질문을 쏟아냈다. 사실상 ‘사상과 성향 검증’에 나선 것이다.

지원자 답변은 면접 평가에 고스란히 반영되면서 합격 여부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끼쳤다. 노조와 파업에 부정적인 답을 한 응시자에게는 높은 점수가, “노조를 할 생각이다” “파업은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다” 등 답변을 한 응시자에게는 낮은 점수가 부여됐다. 실제 지원자 중 한 명은 리포트(실무)와 인성평가에서는 좋은 평가를 얻었으나, 친노조적인 시각을 드러냈다는 이유로 최하점을 받아 불합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노조에 대한 시각이 사측과 유사한 경우에는 ‘사상적으로 명쾌하다’ 등의 판단에 덧붙여지면서 높은 점수로 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경력 모자라도, 근태 불량해도 OK

사측은 모집공고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지원자도 무더기로 합격시켰다. 2012년 경력직 입사자 중 채용공고상 지원조건인 ‘만 2년 기자경력’을 채우지 못한 지원자만 5명에 이르렀다. 한 지원자는 입사지원일 기준 근무 경력이 1년10개월에 불과한데도 무급 인턴으로 2개월 일한 경력을 포함시켜 2년 기자경력을 채웠다. 다른 지원자는 외주업체에서 일한 경력을 기입하면서 방송사에서 일한 것처럼 속였지만 채용에 아무 문제가 안 됐다.

기자 경험이 전무한 지원자가 합격하기도 했다. 한 입사자는 방송 PD, 또 다른 입사자는 아나운서 경력만 있었음에도 ‘경력기자’라는 이름으로 뽑혔다. MBC 관계자는 “1차 시용기자 선발 당시 사상 검증에 통과할 수 있으면서 ‘만 2년 이상 기자경력’까지 충족시킬 수 있는 지원자가 모자라자 2차 시용기자 선발부터는 아예 관련 기준을 빼버렸다”며 “기자로서의 능력을 검증하는 대신 파업에 참여하지 않으면서 파업 중인 인력을 대체할만한 사람을 뽑는 데 급급했다”고 꼬집었다.

사측은 전 직장에서 불량한 근무태도로 문제를 일으킨 적 있는 지원자를 걸러 내지도 않았고, 걸러낼 의지도 없었다. 1차 시용 경력기자로 입사한 A씨는 근무지에서 멀리 떨어진 다른 지역 PC방에서 기사를 쓰다 발각되는 등 문제를 일으켜 이전 직장에서 징계받은 적이 있지만, MBC는 이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합격시켰다. A씨는 채용 이후 법인카드 부정 사용이 발각되기도 했는데, 사용한 만큼 금액을 변제하는 선에서 마무리됐고 아무런 징계 조치도 내려지지 않았다. 그는 현재도 MBC 소속 직원으로 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원하지도 않은 사람이 면접에 등장

당시 사측이 경력지원자 간 공정 경쟁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는 정황은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윤영무 당시 특임국장(사장 직속으로 대외 협력과 정책 보좌)은 지역 방송사에서 일하던 대학 후배에게 경력기자 채용에 지원하길 권한 뒤, 그의 서류전형평가서에 특정 표기를 했다. 일종의 ‘낙점’을 남긴 것이다. 심지어 스스로 해당 후배의 면접에 면접관으로 들어가 최고점을 줘, 최종 합격시켰다. 윤 전 국장은 다른 보도국 간부가 추천한 기자에게도 같은 방식으로 입김을 넣어 합격에 이르게 했다. 윤 전 국장은 “MBC에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추천하는 게 그때 특임국장으로서 해야 할 일이었다”며 “다만 (평가서에) ‘추천’이라는 표기는 직접 안 했을 것 같고, 인사담당자에게 말은 했던 걸로 기억한다”고 해명했다.

지원조차 하지 않은 사람을 면접에 끼워 넣는 황당 사례도 있었다. 이런 방식으로 두 명의 기자가 실무 면접에 들어가 최종 합격했지만, 두 사람은 입사를 결국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먹구구식 대체인력 채용은 전문기자 선발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보건복지 관련 취재를 해 본 적 없는 지원자가 보건복지전문기자로 뽑혔다. 환경전문기자는 채식주의자면서 환경 관련 단체 회원이라는 이유로 전문성을 인정 받았다. 케이블 경제방송에서 주로 경제 관련 앵커로 일했던 경력자는 난데없이 북한전문기자가 됐는데, 북한 관련 대학원 석사 과정 수료가 대북 분야 경력의 전부였다. 이 기자는 지원 당시 수료라는 말을 뺀 채 석사 학위 소지자라고 허위 경력을 내세웠지만 당락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점수 올려 정규직 전환

사측은 ‘묻지마’ 식으로 점수를 올려 계약직을 정규직으로 전환시켜주기도 했다. 전문계약직으로 입사한 B씨는 마사지업체 홍보모델 활동 경력을 숨겨 ‘주의’ 징계를 받았으나 정규직이 됐다. 당시 해당 업체는 공정거래위원회에 적발까지 됐으며, 보도 과정에서 B씨 이름과 얼굴이 노출돼 “공공방송인 MBC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내부 반발이 있었다. 심지어 정규직 평가 과정에서 소속 부장은 ‘역량 및 자질부족, 태도 불량으로 절대 정규직 임용을 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사측은 오히려 B씨 임용 점수를 올리며 정규직 임용을 강행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대다수 시용 및 계약직 기자들은 B씨처럼 소속 부서장들에게 높은 평가 점수를 받지 못했다고 한다. 한 보도국 소속 부장은 1차 시용기자 채용에서 뽑힌 기자에 대해 ‘기사작성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시간이 지나도 기사작성 능력이나 자료해독 능력이 크게 향상될 것 같지 않다고 판단된다’고 밝힐 정도. 2차 시용기자 중 한 명은 뉴스데스크 리포트에서 조작 방송을 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징계를 받기까지 해지만, 이들은 모두 정규직 전환 임용 과정을 무사히 통과했다.

정규직 전환 의무가 없는 계약직 및 전문계약직 기자도 무난히 정규직이 됐다. 이들 중 대다수는 정규직이 된 이후에도 왜곡 및 편파 보도 문제로 큰 비판을 받았다. 그럼에도 김재철 전 사장은 2013년 2월 ‘부족한 사람은 시간 더 주고 지켜보고 우리 식구로 맞아줘야 한다’는 내용의 사내 메일을 배포했다. MBC 관계자는 “이는 김 전 사장이 파업 중 들어온 계약직을 일반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MBC 물갈이’ 대원칙을 내세운 뒤 실행한 조치로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갑작스런 추가 합격, 근거는 없다

2012년 6월 1차 시용기자 합격자 14명 중 2명은 결원에 따라 추가로 붙은 지원자였다. 한 명은 기자 경력이 전무한 아나운서 출신이고, 다른 한 명은 기자 경력이 2년 미만이라 지원요건에 미달됐던 것으로 파악됐다. 심지어 이들보다 더 높은 점수를 받은 차점자는 추가 합격자 명단에 오르지 못했다. 추가 합격자 중 한 명보다 점수가 높았던 한 지원자는 노조에 대한 시각 부문에서 ‘문제가 있다’는 평을 받았다.

전형위원들은 내부 인사들의 문제제기에 ‘점수는 두 사람들을 평가하는데 참고로 하는 것일 뿐’이라는 황당한 이유를 늘어놨다고 한다. 일부는 마감시간이 지난 뒤 지원을 했지만 아무런 문제 없이 접수가 이뤄졌다.

시용으로 뽑힌 경력기자들은 시용계약서상 조건을 충족하면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조건이 붙었다. 문제는 뽑는 과정에서 각종 논란이 철저히 무시된 것은 물론, 전환 조건 또한 대폭 완화했다는 점이다. 당초 사측은 ‘근무태도, 자질, 업무능력, 적응도 등을 종합’해 사원으로서 채용이 적격하다고 판단될 때 정규직으로 임용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해당 내용은 임원회의를 거친 뒤 시용계약서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다. 사내에서는 ‘윗선’에서 채용 조건을 대폭 완화하면서 ‘사규 저촉 행위를 하지 않는 한’ 정식사원으로 임용하는 것으로 시용계약서를 바꾸라 지시했기 때문이라는 뒷말이 돌았다. 실제 당시 임원회의에 참석했던 한 경영진은 “김재철 전 사장도 시용계약서 조건이 완화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털어놨다. 다만 김 전 사장이 이를 적극 지시했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강진구 기자 realn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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