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시리아군의 ‘전쟁범죄급’ 폭격… “전쟁 아니라 살육”

알림

시리아군의 ‘전쟁범죄급’ 폭격… “전쟁 아니라 살육”

입력
2018.02.22 00:59
0 0

주민들 “비처럼 내리는 미사일… 죽을 순서 기다려”

봉쇄 탓 식품 공급 끊겨 살아남아도 굶어 죽을 판

내전 중 폐허로 뒤바뀐 ‘알레포의 비극’ 재연 우려도

정부, 국제사회 비난에도 “시작일 뿐” 본격공세 예고

시리아 구급대원이 수도 다마스쿠스 동쪽 구타 지역에 있는 임시병원 시설에서 정부군의 무차별 공습에 부상을 당한 어린이를 치료하고 있다. 이 사진은 시리아 반정부 활동가 단체인 ‘구타 미디어 센터’에 의해 21일 배포됐다. AP 연합뉴스
시리아 구급대원이 수도 다마스쿠스 동쪽 구타 지역에 있는 임시병원 시설에서 정부군의 무차별 공습에 부상을 당한 어린이를 치료하고 있다. 이 사진은 시리아 반정부 활동가 단체인 ‘구타 미디어 센터’에 의해 21일 배포됐다. AP 연합뉴스

시리아 정부군이 반군의 마지막 거점인 동(東)구타 지역에 무자비한 폭격을 나흘째 계속 가해 이 기간 동안에만 민간인 희생자가 300명에 육박하는 등 2011년 3월 발발한 내전이 최악의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반군과 민간 시설을 가리지 않는 정부군의 무차별 공격에 해당 지역에선 “죽을 차례만 기다린다”, “이건 전쟁이 아니라 살육”이라는 절망의 목소리가 분출하고 있지만, 시리아 정부 측은 ‘테러리스트 격퇴’라는 명분만 내세우며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다. 일각에선 동구타가 내전 과정에서 완전한 폐허로 변해 버린 알레포시(市)처럼 대재앙을 맞게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온다.

시리아내전 감시단체 ‘시리아인권관측소’는 21일(현지시간)에도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 동쪽에 있는 동구타에서 시리아군의 공습과 포격이 이어져 이날 오전에만 주민 10명이 추가로 숨졌다고 밝혔다. 시리아군의 대대적인 공습이 개시된 18일 밤 이후 나흘 동안 누적 사망자는 최소 274명에 달하며, 이 가운데 어린이들도 58명 이상인 것으로 파악됐다. 무너진 건물 잔해에서 뒤늦게 시신이 수습되는 경우도 많은 데다, 부상자도 1,200명 이상인 것으로 알려져 인명피해 규모는 시시각각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이번 주 숨진 희생자들을 제외한다 해도, 최근 3개월 간 동구타에서만 700명 이상이 정부군 공격에 목숨을 잃었다고 보도했다.

동구타의 구호 활동가들과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시리아군의 공격은 거의 전쟁범죄 수준에 해당할 정도다. 민가와 학교, 재래시장은 물론, 병원 시설도 공습을 피하지 못했는데 현지 병원 6곳 중 3곳의 운영이 중단돼 나머지 병원들은 수용능력을 초과한 환자들로 사투를 벌이고 있다. 유엔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 시리아 지역조정관인 파노스 뭄치스는 “알고도 병원을 공격하는 건 전쟁범죄가 될 수 있다”고 비난했다. 실제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도중 폭격으로 인해 사망한 환자도 속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주민들은 자국민을 겨냥한 정부군의 공격에 그야말로 속수무책이다. 동구타 두마 구역의 주민 아부 살라는 “그저 우리가 죽을 차례를 기다리는 상태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다른 주민도 영국 BBC방송에 “미사일이 비처럼 떨어져 더 이상 숨을 곳도 없다”고 토로했다. 동구타의 한 의사는 “우리는 지금 21세기의 대학살을 목격하고 있다”면서 “온갖 무기로 민간인을 살해하는 것이야말로 테러가 아닌가”라고 반문한 뒤, “이건 전쟁이 아니라 살육일 뿐”이라고 했다. 시리아군은 저비용에 살상효과를 극대화하는 ‘통폭탄’도 투하했다.

시리아 반군 지역의 거점인 구타 지역의 한 건물이 정부군의 무차별 폭격으로 무너져 내린 가운데, 구조대원들과 주민들이 생존자와 희생자 시신에 대한 수색 작업을 벌이고 있다. 이 사진은 21일 시리아 반정부 활동가 단체인 ‘구타 미디어 센터’에 의해 배포됐다. AP 연합뉴스
시리아 반군 지역의 거점인 구타 지역의 한 건물이 정부군의 무차별 폭격으로 무너져 내린 가운데, 구조대원들과 주민들이 생존자와 희생자 시신에 대한 수색 작업을 벌이고 있다. 이 사진은 21일 시리아 반정부 활동가 단체인 ‘구타 미디어 센터’에 의해 배포됐다. AP 연합뉴스

게다가 바샤드 알 아사드 정권이 2013년 이후 동구타 일대를 봉쇄한 탓에 살아남은 주민들도 식량과 연료, 의약품 등의 극심한 부족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 두 자녀를 둔 한 여성은 “(시리아군의) 포위 때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폭격으로 죽지 않는다면 배고픔으로 죽게 될 판”이라고 알자지라에 말했다. 40만명에 달하는 동구타 주민들이 옴짝달싹할 수도 없는 형편이라는 뜻이다. 가디언은 시리아군의 동구타 봉쇄 및 공격과 관련, 1995년 세르비아계 군의 보스니아 동북부의 이슬람교도 마을 봉쇄 및 학살로 8,000명이 숨진 ‘스레브레니차 학살’을 연상시킨다고 분석했다.

이처럼 인도주의적 위기가 갈수록 고조되자 국제사회에선 시리아 정부에 대한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유엔아동기금(유니세프)은 “어떤 말로도 숨진 아이와 그 부모, 그들을 사랑한 사람들에게 정의를 실현해 줄 수 없다”면서 ‘백지 성명’을 냈고, 국제앰네스티도 “시리아 정부가 고의로 자국민을 공격하는 거대한 규모의 노골적인 전쟁범죄가 벌어지고 있다”고 규탄했다. 유엔의 시리아 특사 스테판 데 미스투라는 “동구타가 제2의 알레포가 될 우려가 있다. 우리가 알레포로부터 교훈을 얻었기를 바란다”며 즉각적인 휴전과 공격중단을 촉구했다. 시리아 제2의 도시이자 경제거점이었던 알레포시는 7년째를 맞는 내전 중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으로, 민간인 사망자만 2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기반 시설도 대부분 완전히 파괴됐고 수십만명의 피란민이 발생해 이 지역은 현재 폐허 상태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시리아 정부는 이러한 호소에 귀를 기울이기는커녕, 오히려 공격을 한층 더 강화하겠다는 입장이다. ‘테러리스트들로부터 그 지역을 해방하려 노력하고 있다’는 주장만 펴고 있는 것이다. 시리아군 지휘관은 전날 로이터통신에 “지상군 작전은 시작 전이며, 지금은 사전 공습 단계”라면서 동구타 지역 탈환을 위한 군사작전 확대를 예고했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