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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프란치스코 교황 뵈러 가는 길

입력
2017.09.07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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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칵 찰칵 찰칵. 교황이 성 베드로 광장을 내려다보고 신도들에게 인사하는 곳이라는 설명이 신호탄이었다. 우리 ‘인증샷 공화국’ 주민들은 이리저리 자세를 바꾸어 가며 그저 카메라 셔터 누르기 바빴다. 재미있는 농담을 하고선 “제가 쓸데 없는 소리를 곧잘 합니다”라며 개구쟁이처럼 싱긋 웃던 일흔의 김희중 대주교는 조용히 뒤로 물러났다. 긴장한 듯 했다. 뒤편 의자에 앉아 교황과의 대화를 조용히 준비했다.

곧 이어 문이 열리고 프란치스코 교황과 불교ㆍ개신교ㆍ천주교 등 일곱 종교 지도자들로 구성된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와의 만남이 시작됐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황도 주교 중의 한 사람”이라 말씀할 정도로 소탈한 분이라지만, 엄격한 의전은 그런 교황으로서도 어찌할 수 없는 노릇이었던 모양이다. 해외 유명 인사가 교황을 만날 때 흰 옷을 입으면 현지 언론에서 난리가 난다 했었던가. 정해진 위치, 각도, 순서에 따라 준비해뒀던 말과 행동들이 오고 갔다.

지난 2일 교황과의 만남을 위해 바티칸으로 출장간 기간 내내, 기분은 묘했다. 누군가는 한국에 나가 있는 신부님들께 이탈리아로 돌아오라는 귀국 종용 전화를 했다는 말을 전했다. 또 다른 누군가는 6차 핵실험까지 간 거면 국제사회의 인정 여부를 떠나 북한은 사실상 핵 보유국이 된 것이나 다름 없다는 얘기를 건넸다. 월드컵 예선전에서 이탈리아가 스페인에게 3대 0으로 대패한 걸 두고 열 올리던 호텔 직원조차 갑자기 한국의 안부를 묻더니 이대로 귀국해도 괜찮으냐고 걱정해줬다. 궁금해서 시내로 나가 뒤적여본 현지 언론 국제면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얘기가 가득했다. 화려한 그래픽으로 북한의 핵과 미사일의 성능에 대해 분석해둔 지면을 보고 있노라니, 이게 무슨 좋은 구경거리인 줄 아나 싶은, 괜한 심술이 날 지경이었다.

수없이 많이 얘기됐던 동북아 최악의 시나리오는 이미 꿈틀대고 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은 남한의 중무장과 자체 핵개발 욕망을 불러오고, 이는 바다 건너 일본의 핵무장을, 다시 중국의 군비 증강으로 이어진다. 서로가 서로의 공포를 자극적으로 키워주는 이 시나리오 속에서, 우리가 전술 핵을 들여오고 핵무기를 개발한다면 감정적으로는 시원할 지 몰라도 평화롭게 사는데 얼마나 도움이 될까.

그래서 “세상 모든 국가가 제재와 압박에 찬성하더라도 교회의 임무는 제재와 압박보다는 대화와 평화라는 게 프란치스코 교황과 교황청의 일관된 메시지”라는 김희중 대주교의 설명은 소중하다. 국민 모두가 대북전략가이자 정의의 심판관임을 자임하는 이 시점에서 순진한 얘기, 무력한 얘기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대화와 평화의 목소리에 대해 ‘국론’ ‘애국’ 같은 말 들먹이면서 발길질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전술핵 배치니 핵무장이니 하는 주장을 내놓는 이들이 전쟁광이어서 그런 게 아니듯, 대화와 평화를 얘기한다고 해서 국론을 분열시키는, 비애국적인 사람이어서 그런 게 아니다.

오래 전 일이다. 무슨 해외 진기명기 프로그램이었을 게다. 커다란 전갈이나 도마뱀 같은, 좀 무섭고 흉측한 것들을 잡아다 요리 해먹는 걸 보여줬다. PD가 요리사에게 무섭지 않느냐고 물었다. 아마 딱딱한 갑옷 같은 가죽이며, 몸 속에 있을 독극물 같은 걸 어떻게 처리하나 싶어 물었을 게다. 기대한 대답은 아마 이렇게 저렇게 처리하면 된다는 것이었을 게다.

이 장면을 지금도 기억하는 건 요리사의 대답이 걸작이어서다. 아무렇지도 않게 한마디 툭 던졌다. “내 손 베일까 걱정이에요.” 남의 독극물 못지 않게 위험한 게 제 손 안의 칼이기도 하다. 북한처럼 비도덕적, 비상식적이진 않지만, 우리도 우리 생각만큼이나 현명하지 않을 수 있다. 이 회의적 태도가 남한을 한층 더 우월하게 만들어줄 것이라 믿는다.

조태성 문화부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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