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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의 문창극 지키기

입력
2014.06.1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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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선

시사평론가

잘 알려진 ‘읍참마속’(泣斬馬謖) 비극의 발단은 인사의 실패였다. 유비는 임종하면서 “마속은 말이 사실보다 허황되니 중용하지 말라”는 유훈을 제갈량에게 남겼다. 그러나 제갈량은 1차 북벌에 나서 위나라와 전투를 벌일 때 자신이 좋아하던 마속을 다른 장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장수로 기용했다. 하지만 지시를 어긴 마속의 허술한 계책으로 전투는 대패했고 제갈량은 큰 타격을 입은 채 퇴각하게 된다. 마속의 기용은 제갈량이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판단을 과신하여 사람을 과대평가함으로써 일을 그르친 최대의 인사실패로 꼽힌다. 이에 제갈량은 목놓아 울며 마속의 목을 베어 패전의 책임을 묻고 대중에게 사죄한다. 이때 제갈량은 선제 유비의 유훈을 따르지 않고 사람을 잘못 판단한 자신을 자책하며 스스로를 3등급 강등시키는 모습을 보였다.

문창극이라는 인물을 과대평가해 그 흠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총리 후보자의 위치에 올려놓은 박근혜 대통령의 인사도 물론 실패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있었던 다른 총리 후보자들의 낙마가 투기의혹이나 전관예우같은 개인적 신상의 문제에 따른 것이었다면, 문 후보자의 경우는 식민지 시대 역사인식의 근본적 문제를 드러냈다는 점에서 박근혜 정부 인사의 최대 실패작이라 할 만 하다. 그 결과 한국이 아닌 일본의 총리를 임명하려는 것이냐는 야유가 터져 나오고, 보수 진보 할 것 없이 민심이 등을 돌리고 있다. 그럼에도 사람을 잘못 본 자신의 책임을 고백하며 마속과 스스로에게 책임을 물은 제갈량의 모습을 박 대통령에게서는 찾아볼 수가 없다. 평소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자극하는 극단적 보수성향의 글들을 써온 사람을 일국의 총리감으로 내세운 것도 잘못이었지만,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남북분단을 하나님의 뜻이라 하고 다닌 언행이 알려졌음에도 기어이 그를 총리로 임명하겠다고 밀어붙이는 것은 더 큰 잘못이다. 연이은 총리 후보자 낙마 사태가 가져올 정치적 타격을 우려하다가 자칫 박근혜 정부가 루비콘 강을 건너는 결과를 낳을지 모른다.

어째서 이런 인사재앙이 반복되는가. 물론 청와대의 부실검증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문 후보자 뿐 아니라 교육의 투톱이라 할 송광용 교육문화수석과 김명수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내정자는 논문표절 논란에 휩싸여 있다. 그것도 제자의 논문을 표절했다는 의혹이다. 그런가 하면 이병기 국정원장 후보자는 차떼기 스캔들의 주인공이었다는 점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청와대가 이런 논란거리들을 몰랐다면 무능한 것이고, 알고도 지나가려 했다면 국민을 안중에 두지 않은 처사이다.

그러나 부실검증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일관되게 자기 편만 고집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협량 인사이다. 자기 진영에만 갇히지 말고 조금만 더 넓게 보면 민심을 얻을 수 있는 인물도 찾을 수 있겠건만, 박 대통령은 자신의 성 안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만 고집하고 있다. 더 나아가 잘못된 민족관으로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는 문 후보자를 끝내 총리 자리에 올려놓으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문 후보자를 지키려는 박 대통령의 모습은 자신의 정치적 타격을 막기 위해 민족정기를 훼손시키려 한다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문 후보자를 둘러싼 논란이 가열되는 가운데 이번에는 박효종 서울대 교수가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을 맡게 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가 근대화의 발판이 되었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대표하는 학자인 박 교수는 대통령 추천 몫으로 방통심의위원에 임명됐다. 문 후보자가 국민적 비판을 사고 있는 가운데 또 한 명의 식민지 근대화론자가 중용되는 모습을 보노라면 눈 앞의 실패로부터도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하고 있는 정치적 불감증을 확인하게 된다. 대통령의 인사는 국민을 향한 메시지이다. 박 대통령의 문창극 지키기는 국민에게 상상 이상의 메시지를 전달하게 될 것이다. 여기는 대한민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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