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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 프리즘] 국가가 부담하는 장기적출비의 또 다른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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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 프리즘] 국가가 부담하는 장기적출비의 또 다른 의미

입력
2017.06.1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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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신 서울아산병원 간이식외과 교수(장기이식센터소장)

B형 간염에 의한 간경화로 병원을 찾은 50대 남성과 그 아내가 수심 가득한 얼굴로 상담실을 빠져나왔다. B형 간염과 간경화로 장기간 치료받던 남편이 간암 진단까지 받았다. 간이식을 받지 않으면 희망이 없다는 의사 설명에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았다. 기증자가 부족한 현실에서 대기 시간이 길고, 간이식 비용이 비싸다는 설명까지 듣고 나니 더 막막해졌다. 어떻게 해서라도 환자를 살리는 것이 당연하지만, 고가의 이식비용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남편을 살릴 수 있는 치료법은 있지만 이식비용이 큰 문제였다.

장기이식이 최근 꾸준히 증가하면서 2015년엔 장기이식 수술 4,000건을 넘어섰다. 장기이식 환자가 늘면서 고액의 이식비용 부담이 관심을 받게 됐다. 장기이식 수혜자 부담을 덜기 위한 국민건강보험법 시행령 개정안이 지난 5일 국무회의를 통과해 다음달부터 시행된다.

지금까지 뇌사자의 장기 적출비 일부와 사전 제반 비용 전액을 비급여로 수혜자가 부담해 왔다. 이것은 단순히 수혜자의 비용 부담을 넘어 장기기증자의 고귀한 의미가 존중되는지에 대한 문제까지 포함돼 왔다. 뇌사자 장기이식 수혜자가 적출비와 사전 제반 비용 등을 부담하면서 장기를 구매한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수혜자가 적출비를 대신 내는 과정이 기증자의 순수한 정신을 해친다는 지적도 있다. 개정 시행령이 적용되면 장기 적출비 부담이 줄고, 비급여 항목인 사전 제반 비용도 급여 전환으로 수혜자의 부담은 줄게 된다.

간이식 부담금은 3,000만~5,000만원 정도다. 물론 건강보험 환자가 부담하는 순수 본인부담금이다. 간이식 환자 본인부담금이 상당히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몇 년 전만해도 간이식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살고 있던 집을 팔아야 할 수 밖에 없었던 환자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었다.

국민건강보험법 시행령 개정안으로 수혜자가 장기적출비와 제반 비용을 부담하는 게 덜었지만, 이식수술 후 적지 않은 처방을 받아야 한다. 수술 후 필요한 고가의 약제나 치료 재료대, 비급여 검사 등을 적극적으로 지원하지 않으면 여전히 수혜자는 어려움을 겪게 된다.

건강보험 재정을 장기이식 수혜자가 체감할 정도로 지원하는 것은 쉽지 않다. 여기서 우리는 단순히 수혜자가 얼마나 더 혜택을 받는지 초점을 두기보다 ‘자신의 신체 일부를 아무런 대가 없이 아픈 사람에게 나누어 준다’는 고귀한 장기 기증의 취지를 고려한 결정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장기이식이 늘고 있다는 것은 장기 기증에 대한 인식도 크게 달라진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자신의 장기를 다른 사람에게 기증하겠다는 생의 마지막 순간의 고귀한 선택을 간과하며 장기적출비, 장기관리료, 뇌사판정비 등에 대한 ‘장기적출비용’ 처리에만 급급했던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이번 국민건강보험법 시행령 개정과 함께 ‘장기 기증자 추모의 날’을 만들어 생명 나눔에 대한 인식을 더 높이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황신 서울아산병원 간이식외과 교수
황신 서울아산병원 간이식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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